‘은둔형 괴짜’에게 미국이 당했다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7.0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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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영화보다 흥미로운 ‘스노든 폭로’의 내막 치밀한 계획 세워 위장 취업 후 기밀 빼내

3월 어느 날,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외주 컨설팅업체인 ‘부즈앨런해밀턴’은 에드워드 스노든(29)이라는 한 젊은 남성의 채용에 관해 심사했다. 고등학교를 낙제해 졸업하지 못하고 미국의 고졸 검정고시(GED)에 합격한 점, 존스홉킨스 대학을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 안에 정보 보안 관련 석사 학위를 받을 것이라는 점 등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지만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다른 방산 업체에서 일한 경력 때문에 채용을 결정했다. 연봉은 20만 달러(약 2억2000만원)로 고액의 스카우트였다.

결과적으로 부즈앨런해밀턴의 스노든 채용은 세계를 뒤흔드는 시발점이 되고 말았다. 입사한 지 불과 2~3개월 만에 스노든은 “미국의 위선을 밝힌다”며 미국 국가안보국이 자국민은 물론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도·감청을 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부즈앨런해밀턴에 입사한 이유로 “미국 정보기관의 기밀 취급권을 획득해 이런 폭로를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말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6월13일 홍콩의 한 가판대에 놓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에드워드 스노든의 얼굴이 1면을 장식하고 있다. ⓒ AP연합
스노든이 빼낸 미국 기밀문서는 200개

기밀을 폭로하고 홍콩으로 도피하기 전까지 약 8년간 스노든과 사귀며 하와이에서 동거하기도 했던 여자친구 린지 밀스(28)마저도 스노든에 대해 “미스터리한 남자였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은둔형 괴짜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등학교를 낙제했지만 당시 어린 나이에 일본계 애니메이션회사의 웹사이트 편집자로 일할 정도로 적극적인 삶을 산 스노든이었다. 그의 변화는 미군 특수부대 훈련 중에 입은 부상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일각에서는 꿈을 이루지 못하면서 받은 좌절감이 미국에 대해 반감으로 이어졌고 폭로에 이르게 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 세계의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스노든의 폭로전은 이것으로 끝일까. 스노든은 NSA의 무차별적인 도·감청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폭로한 모든 자료는 공공의 이익에 합법성을 보장하기 위해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검토한 것”이라며 “엄청난 영향을 미칠, 아직 폭로하지 않은 여러 종류의 문서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은 영국의 가디언이 증명하고 있다. 스노든이 전달한 일부 기밀문서를 입수한 후 2009년 주요 8개국 정상회의를 도청했다는 사실부터 미국이 중국의 통신회사와 대학 등을 해킹했다는 메가톤급 특종을 잇달아 터뜨리고 있다.

4주 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워 위장 취업까지 해 미국 국가 기관 정보망에 접근한 스노든이 빼낸 자료는 얼마나 될까. 자료의 수는 폭로의 수와 비례한다. 미국 의회 상원 정보위원장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민주당 의원은 “미국 관리로부터 들은 말에 따르면 스노든이 약 200개의 중요한 기밀문서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스노든이 가지고 있는 국가 기밀 정보량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방법의 다양화도 거론된다.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 관계자가 이번 스노든의 정치적 망명 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언론 보도나 인터뷰 방식이 아니라 그 자료를 그대로 위키리크스를 통해 추가 폭로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미국이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스노든의 폭로 사태가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든 이유는 막대한 국가 일급비밀이 누출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보스턴 마라톤대회 테러 사건의 경우 미국에서 성장한 자생적 테러리스트의 소행이었는데 미국을 공격하고 치명타를 입혔던 세력이 ‘외부의 적’이 아니라 미국에 거주하는 시민이라는 점에서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스노든처럼 비교적 높은 연봉을 받으며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미국 시민까지 국가에 등을 돌리고 난처하게 만드는 문제에 전혀 해답을 갖지 못하고 있다. 딕 체니 전 부통령 등 보수파들은 스노든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스파이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스노든은 “내가 스파이였다면 폭로할 이유도 없고 자료를 가지고 베이징이나 모스크바로 날아갔을 것”이라며 이들의 주장을 비웃었다. 

미국 정보기관의 내부 데이터에 접속할 수 있는 외주 직원은 48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갑자기 제2, 제3의 스노든으로 돌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스노든은 이미 부즈앨런해밀턴에 입사할 때부터 폭로를 염두에 두고 가디언의 저널리스트를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보기관 내부망에 접속해 자료를 인출하고 홍콩으로 날아가 그것을 폭로할 때까지 정보기관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만큼 재발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스노든 현상 때문에 정보기관은 당혹스럽다. 기밀을 다루는 직원 채용 과정과 관리 부실을 지적하며 인적 검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설혹 그런 지적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내부 관계자들이 서로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지켜봐야 하는 피곤한 상황이 염려된다. 그런 눈초리가 아무리 지속된들 정보를 기록하고 분석하며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내부 관계자가 폭로를 시도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가장 곤혹스런 일이다.

중·러 “이번엔 미국이 당할 차례”

스노든은 이제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중국 등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사찰했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그가 제3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맞물리면서 국제 관계의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스노든이 홍콩을 벗어나는 데 중국이 방조했다”고 비난했지만 중국 정부는 “홍콩 당국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미국과 대립각을 세웠다. 오히려 이번 폭로에서 드러난 미국의 중국 해킹 문제를 정식으로 따지겠다며 벼르고 있다. 스노든이 1차로 도착했던 러시아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범죄인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미국에 스노든을 송환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선을 그었다. 그동안 미국의 ‘인권 외교’에 상처받았던 중국과 러시아에게는 공수가 바뀐 이번이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스노든이 망명을 원하고 있는 나라로 알려진 에콰도르는 위키리크스의 줄리안 어샌지에게 안식처를 제공했다. 에콰도르 정부는 스노든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아직까지 망명 수용 여부를 확실히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는 틈을 타 베네수엘라도 망명지가 되겠다고 나섰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직접 “스노든이 신청할 경우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망명을 막으려는 미국 정부가 스노든에게 취한 조치는 ‘여권 말소’라는 소극적 조치다. 어쨌든 그것이 효과를 본 덕에 스노든은 지금 신원을 증명할 문서가 없는 탓에 모스크바 공항에 갇힌 상태다. 물론 망명지가 나서 난민 증명서를 발급해준다면 그는 모스크바를 떠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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