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축구’로 ‘뻥 축구’ 날린다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7.0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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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이 구상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2014년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고전한 위기의 태극호가 새로운 선장을 맞았다. 한국 축구가 배출한 걸작 홍명보가 브라질로 향하는 키를 잡았다. 선수로서 뿐만 아니라 지도자로 변신해서도 승승장구한 홍명보는 2015년 아시안컵까지 2년 계약을 맺었다. 1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안기며 다시 영웅이 된 그의 새로운 도전이다. 홍명보 감독이 밝힌 목표는 월드컵 16강이 아니었다. 그는 “목표는 국민이 원하는 것이다. 한국형 축구로 브라질월드컵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이전 감독과 달리 성과가 아닌 한국 축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다.

“우리 선수는 독일 선수나 스페인 선수가 아니다.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한국형 축구를 준비해서 월드컵에 나갈 것이다.” 홍명보 신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6월25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던진 화두는 흥미로웠다. 그는 ‘한국형 축구’를 강조했다. 한국 선수와 한국 지도자로 이뤄진 축구대표팀이 한국형 축구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그 한국형 축구는 실체화된 적이 거의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국인 지도자는 대부분 외국 축구를 모델로 삼았다. 10여 년 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전원 압박 축구로 월드컵 4강을 이끌자 네덜란드식 토털 사커를 쫓았다. 최근에는 스페인 대표팀과 FC 바르셀로나의 패스 축구인 티키타카가 목표였다. 그러다가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가 진출하자 독일 축구로 관심이 몰렸다. 강세를 보이는 축구에 유행처럼 붙었지만 실제로 그 축구의 정수를 뽑아내지는 못했다. 홍명보 감독의 말처럼, 우리가 스페인의 축구를 하기엔 스페인 선수처럼 완벽한 기본기와 센스를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 시사저널 이상민

한국 축구의 변화와 혁신 선언

홍명보 감독은 역대 대표팀 감독 중 처음으로 ‘한국형 축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전의 감독들은 성과에 초점을 맞췄다. 월드컵 첫 승, 혹은 16강 진출이었다. 자신들의 축구 철학을 언급하긴 했지만 패러다임을 제시하진 못했다. 홍명보 감독이 말한 ‘한국형 축구’의 핵심은 무엇일까. 공간과 압박이라는 현대 축구의 흐름과 기본을 놓치지 않되 그 뼈대는 한국인 그리고 한국 축구가 갖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제 국민도, 선수도 축구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졌다. 얼마만큼 좋은 축구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 우리는 세계를 겨냥해서 나가는 팀이다. 무엇이 필요한지 잘 생각해야 한다. 어떤 경기를 할지는 우리 책임이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축구를 하려고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놓은 대안이 한국형 축구다. 홍명보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진출 이후 한국 축구가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도 그만큼 성장했는지는 의문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변화와 혁신을 통해 탈(脫)아시아를 이루고 세계의 어떤 팀을 상대하든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투혼이나 멀티플레이, 양발 사용 등 작은 개념으로 흐트러져 있던 한국 축구의 특징을 한데 모아 실체가 있는 모델로 내세우는 것이 앞으로 2년간 대표팀 감독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임무라고 스스로 과제를 부여한 것이다. 전임 최강희 감독이 이끈 최종예선 과정 동안 불거진 ‘뻥 축구 논란’을 해소하고 좀 더 수준 높은 축구에 접근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렇다면 홍명보 감독이 꿈꾸는 한국형 축구의 명제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한국적 특징의 파악이다. 홍명보 감독은 한국형 축구를 위해선 실제로 경기장 위에서 뛰는 선수들, 즉 한국인의 대표적인 기질을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축구라는 게 어딜 가나 큰 차이는 없다. 얼마나 공간을 잘 활용하고, 수비를 잘하고, 골을 넣느냐가 관건이다. 나는 좀 더 콤팩트한 축구를 원한다. 우리 선수들의 근면성, 성실성, 팀을 위한 희생정신만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전술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이 만들어낸 축구에서도 잘 드러난다. 히딩크 감독은 포기하지 않는 한국 선수의 정신력과 팀플레이, 근면함을 파악하고 파워 넘치는 압박 축구를 만들었다.

세계적인 강팀들은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에 고전했다. 이전까지 무조건적으로 포백을 도입해야 한다는 함정에 빠져 있던 한국 축구에 일자 스리백을 제시하기도 했다. 스위퍼 전략에 익숙한 한국 선수의 특성을 이용해 포백의 장점을 입힌 일자 스리백으로 강력한 수비를 펼쳤다. 공수 밸런스를 강조하고 강력한 압박과 정교하며 빠른 역습. 이것이 홍명보 감독이 원하는 한국형 축구의 근간이다.

다음은 현대 축구의 주요한 흐름을 쫓는다. 현대 축구의 명제는 공간과 압박이다. 우리의 공간을 확보하고, 압박을 통해 상대의 공간을 줄이는 것이 전술의 시작이다. 그 사이에는 공의 소유가 존재한다. 홍명보 감독은 기본적으로 이 명제를 놓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월드컵에 나가면 우리보다 수준이 낮은 팀은 없다”고 전제한 그는 “우리 선수는 굉장히 공을 잘 뺏는다. 그러나 동시에 잘 뺏긴다. 그것이 특징이다. 그 사이의 시간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며 과제를 내놓았다. 즉 공을 뺏고, 뺏기기 전까지의 소유 시간을 늘려 우리가 주도하는 경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탈 사커·카테나치오 등과 맞설 한국형 축구

그는 “공격이 곧 수비인 움직임이어야 한다. 공격 시에는 최대한 공을 유지해야 한다. 조직적인 움직임과 개인 기량이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감독의 이러한 철학은 런던올림픽에서 잘 드러났다. 한국은 멕시코·스위스·영국·브라질 등을 상대로 볼 점유율에서 밀리지 않았다. 단단한 수비는 브라질전(0-3 패)을 제외하고는 1실점으로 막았다. 박종우·기성용·구자철 등 미드필더는 강력한 압박 후 안정적인 공 소유로 경기를 만들어 갔다. “1년이 짧다고 하지만 그건 일반적 논리이고 우리는 주어진 시간 안에 무조건 한국형 축구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의 강팀과 경기해도 뚫리지 않는 조직력을 만들겠다”는 게 홍명보 감독의 다짐이다.

마지막 숙제는 득점력이다. 대표팀은 월드컵 최종예선 마지막 4경기에서 2골을 넣는 데 그쳤다. 그중 1골은 상대의 자책골이었다. 손흥민·지동원처럼 유럽 무대에서도 인정받은 공격수가 있었지만 골문을 좀처럼 열지 못했다. 한일월드컵·런던올림픽에서 성공을 거둘 때도 대표팀은 만족할 만한 골 결정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홍명보 감독은 “수비 조직력은 시간만 주어지면 만들 수 있지만 골은 다르다. 개인 능력에 좌우된다. 원 찬스 원 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월드컵은 상대의 압박이 강하고 선수 개인의 수준이 높은 대회다. 한국이 2골 이상을 넣는 경우는 많지 않다. 찬스 대비 득점력을 높이는 게 과제다. 홍명보 감독은 “개인 능력과 팀으로서의 콤비네이션 모두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존의 이동국·김신욱·지동원·손흥민·이근호 그리고 한동안 대표팀에서 제외된 박주영까지 총망라해 득점력을 살리는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다.

세계적인 축구 강호는 자신만의 축구 철학이 집대성된 모델을 갖고 있다. 브라질의 ‘조가 보니또(공격적인 아름다운 축구)’,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빗장 수비)’, 스페인의 ‘티키타카(탁구에서 공을 주고받는 것처럼 빠른 숏패스 축구)’, 네덜란드의 ‘토탈 사커(전원 공격, 전원 수비)’가 그것이다. 홍명보 감독은 임기를 마치는 그 순간 한국 축구에 월드컵과 아시안컵에서의 성공은 물론 세계적 강호처럼 한국형 축구를 대표할 모델을 선사하고 싶어 한다. 2년 후 우리는 홍명보 감독이 만든 한국형 축구를 무엇이라 부르게 될까. 그 시간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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