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공작 담긴 녹취 파일 더 있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07.09 15: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NLL 정국의 ‘대여 공세’ 막후 지휘관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

7월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은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예전과 사뭇 달랐다.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표정은 시종일관 굳어 있었고, 목소리는 신중했다. “민주당이 갖고 있다는 100여 개의 ‘권영세 녹취록’을 언제 모두 공개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내가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별 내용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돌직구를 날리자 “그건 아니다”라며 장고를 하더니 “민주당은 ‘권영세 녹취록’ 외에 다른 이의 녹취 파일을 추가로 더 갖고 있다”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정치 공작이 담긴, 국민이 알게 되면 천인공노할 만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그는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밝히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뭔가 결심한 듯 보였다. 그의 이러한 발언이 사실이라면, 7월 정국에 큰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 시사저널 이종현
7월2일 국회 본회의 ‘2007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찬성 쪽의 당론을 거스른 것은 무슨 이유에선가.

나는 원래 초지일관 반대 입장이었다. 이 자리에서 처음 밝히는 것이지만,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대북 송금 특검 때도 역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나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지켜왔다. 실제 박정희 정권 시절 이뤄진 한일 수교 때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30년간 비밀 문건으로 분류했다가, 또 30년을 더 연장해서 현재 무려 60년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대화록 공개는 정상 외교의 신뢰성을 상실하고 남북 관계를 파탄 내는 길이다.

민주당이 대화록 원문 공개를 반대하면 국민이 보기에는 “민주당이 뭔가 켕겨서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었을까.

그건 초등학교 3학년 대의원 발상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국정원 직원의 명예를 위해서 공개한다고 했다는데,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명예와 국익은 어떻게 하나. 민주당은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당이 되어야 한다.

그래도 전 원내대표로서 당론을 거스르기가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최고회의 의결로 당에서 원내대표 명의의 서면 경고장이 왔더라.(웃음) 웃고 말았다.

국정원이 공개한 녹취록 전문을 보면 민주당의 주장대로 ‘(NLL) 포기’라는 용어는 없다. 하지만 해석하기에 따라서 그렇게 비칠 소지도 있다는 게 새누리당 주장인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0년대 김일성 주석에게 보낸 친서가 있다. 여기에는 ‘주석님께서 광복 후 오늘까지 40년에 걸쳐 조국과 민족 통일을 위하여 모든 충정을 바쳐 이 땅의 평화 정착을 위해 애쓰신 데 대해 이념과 체제를 떠나 한 민족의 동지적 차원에서 경의를 표해 마지않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김일성이 이 나라 평화를 위해서 애썼나? 경의를 표할 수 있는 존재인가? 이건 외교적 수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02년 5월 당시 미래연합 대표 자격으로 김정일의 초청을 받아서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김정일이 중국까지 비행기를 보내서 극진히 모셔 갔다. 김정일이 누군가. 집권 2년 만인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문세광을 보내서, 결국 그 총탄에 육영수 여사가 비명에 가지 않았나. 개인적으로는 어머니를 죽인 원수인 셈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당시 그를 만나서 “7·4 공동성명을 발표한 남북 지도자 2세로서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자”고 얘기했다. 그리고 남북 축구 경기와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했다. 실제 그해 6월 2002 한일월드컵 직후 8월에 남북 축구 경기를 했다. 그런데 붉은악마 응원단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하니까 박 대통령이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에게 화를 내면서 “왜 (김정일과 내가) 합의한 대로 한반도기를 흔들고 ‘조국통일’이라고 외치지 않느냐”고 따졌다. 자, 박 대통령이 당시 그랬다고 해서 우리 국민은, 또 국민의 정부나 민주당은 박 대통령이 태극기를, 또 대한민국을 부인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통일에 대한, 평화에 대한 그의 진정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외교적 수사로 김정일에게 덕담한 내용을 가지고, 본말은 뒤집어버리고 해석을 해서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렇다면 전두환·박근혜 두 분의 이런 것도 종북이고 국보법 위반이고 규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똑같이 봐야지. 나도 대화록 읽어봤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한반도 평화를 지키자는, 전쟁을 억제하자는, 그래서 구체적으로 평화수역·공동어로구역을 만들자 하는 것인데 그때는 말이 없다가 지금에 와서 이게 뭔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던 김장수 국방부장관과 윤병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수석이 공교롭게도 지금 박근혜정부의 청와대 안보실장과 외교부장관이라는 핵심적 위치에 있다. 얼마 전 박 전 대표께서 이들에게 “왜 침묵하느냐”며 공개적으로 일침을 가했는데.

그렇다.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을 사실상 주도한 분은 윤병세·김장수, 이들이다. 당시 김장수 장관은 정상회담 후 서울에 와서 일성으로 “NLL을 지켰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이후 남북 장관급회담을 하러 북한에 가면서 “노 대통령이 ‘NLL을 지켜라’ 하는 지시를 했다”고 했다. 또 장관급회담 후에도 한국에 와서 성과가 뭐냐고 하니까 “NLL을 지켰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김장수 실장과 윤병세 장관이 누구보다 (당시 상황을) 제일 잘 알 것 아닌가. 왜 이들은 이 중요한 국론 분열 정국에서, 또 한중 정상회담을 앞둔 중차대한 시국에서 침묵하는가. 사실 그분들만 입을 열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었다.

대통령 기록물 원문을 열람·공개하면 ‘NLL 논란’은 수그러들까.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 내가 반대한 이유도 그것이다. 결국 여야는 열람 후에 또 아전인수식 해석을 계속하면서 싸울 것이다.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결국은 군사·외교·국방 등 모든 비밀 문건이 다 공개되는 최악의 사태로 인해 국익만 막대한 손해를 볼 뿐이다.

이른바 ‘권영세 녹취록’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박 전 대표가 “파일 내용이 치명적이다”라고 했지만 막상 추가 공개는 하지 않고 있다. 실제 별 내용이 없는 것 아닌가.

그건 있다. 다만 그것은, 우리 (민주당의 국회) 법사위원들이 합의하에서 그만큼 공개했기 때문에…. 이제 국정조사 특위가 구성됐기 때문에 공개 여부에 대한 결정은 특위 구성원들에게 넘어간 상태다. 단, 내가 알고 있기로는 많은 녹음테이프가 존재하고, 또 칩으로 보관돼 있다. 거기에는 개헌을 해서 민주당을 어떻게 한다, 문재인에 대한 어떤 것, 안철수에 대한 이런 것들이 많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런 터무니없는 공작 정치를 국민들이 알게 되면 천인공노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밝힌 것이다.

그것은 권영세 당시 상황실장의 개인적인 발언을 말하는 것인가.

그분 것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의 것도 많다.

권영세 녹취 파일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녹취 파일도 더 갖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이 내용은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밝히는 것이다.

그건 언제 어떻게 공개할 예정인가?

그것은 지금 내가 얘기할 입장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건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의 박영선·박범계·신경민 의원 뒤에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정보력이 있다는 설이 있다. 앞서 말한 권영세 녹취록 외에 추가로 더 있다는 얘기도 그런 맥락으로 들린다.

나를 과대평가해줘서 감사할 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특위와 법사위원들이 매일 한두 번씩 연석회의를 가져서 상호 간에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해서 내린 결론들이다. 때문에 내가 관계가 없다고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주체적으로 혼자 다 하는 건 또 아니다.

국정원 국정조사가 시작된다. 국정원 개혁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이 강경한 듯하다.

국정원 개혁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인적·제도적·법적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국정원은 미국 CIA(중앙정보국)처럼 해야 한다. 국내 정보는 경찰이 있기 때문에 국정원이 개입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정치 개입·언론 개입 이런 월권들이 개혁될 것이다.

박 전 대표께서 ‘권력 실세’ 소리를 들었던 김대중 정부 때도 국정원 비리는 터지지 않았나.

당시 ‘삼성 X파일’ 문제로,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장을 지냈던 임동원씨 등을 구속한 적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김영삼 정부 때 도청한 것을 김대중 정부에서 잡아가지고 그러한 도청 기계들을 다 파기시켰다. 그러니까 도둑 잡은 사람을 잡아넣은 셈이다. 국정원이란 게 보니까 속성과 관성이 남아 있더라. 김대중 정부 때 도청은 제도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안 했다. 합법적 감청은 법원 영장에 의해서 한다. 이 감청 요원들이 타성과 관성이 남아서 개인한테도 한번 찔러보는 거다. 실제 이들이 내 것도 도청을 했더라. 그리고 한나라당에 보고를 했다. 당시 권력의 2인자 소리까지 듣던 나를 할 정도였다. 그게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그냥 타성에 젖은 그런 직원들이 간헐적으로 한 번씩 해보고 또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그러는 거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이른바 ‘줄서기’를 했다는 뜻인데, 실제 새누리당은 지난해 대선 때도 국정원 직원이 민주당에 줄서기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 일은 결단코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매체에서 지난해 대선 때 민주당에 줄서기 한 인물이라며 전직 국정원 직원 김 아무개씨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고, 그가 박 전 대표의 지인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사실인가.

내가 그분을 잘 안다. 오래전부터. 하지만 지난해 3월경인가, 그때 한 번 만나고 그 후로 만난 적이 없다. 내가 잘 아는 사람인 것은 맞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의 한나라당 줄서기가 있었다면, 같은 논리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민주당 줄서기가 있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건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그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왜 대응하지 않나.

그 후로 그냥 논란이 없어지더라. 의혹은 제기했지만, 이후 검찰 수사에서 내가 일절 거명되지 않고 있지 않나.

얼마 전 국회 남북관계발전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아침 뉴스를 보니까 북한이 개성공단 기업인의 방북을 허용했더라.

내가 수차례 언급했지만 김정은은 지금 김정일의 유훈 통치를 하고 있다. 김정일의 작품인 개성공단을 폐쇄한 것에 대해서 지금 김정은은 굉장한 부담을 갖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개성공단 기업인과 당국자의 방북을 허용했다고 본다. 이제 우리 정부도 화답을 해줘야 맞다. MB 정부에서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방북 허가도 해주고 당국자도 올라가서 제한된 대화라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점수로는 빵점이다. MB랑 똑같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말하면서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면 그게 신뢰가 되나. 불신 프로세스가 되지. 아무런 진전이 없잖은가. 정말 많은 기대를 했는데.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전남도지사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

내가 직접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주위에서, 언론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데…. 특히 안철수 신당에 대한 호남 지역의 기대가 높다 보니 “안철수 신당에서 후보자를 내면 거기 맞서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박지원이다” 이런 얘기를 정치권에서 하고 있나 보더라.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단,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위해 역할이 주어지면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대학생 기사 공모전, '시사저널 대학언론상'에 참가하세요. 등록금을 드립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