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여왕’, 경영 전면에 나서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7.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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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회장 구속되면서 이미경 부회장 역할 주목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검찰에 구속된 지 하루 만이었다. CJ그룹은 7월2일 손경식 회장, 이미경 부회장, 이채욱 CJ대한통운 부회장, 이관훈 CJ㈜ 사장, 김철하 CJ제일제당 사장 등이 이끄는 ‘그룹경영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회는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영어의 몸이 된 이재현 회장을 대신해 당분간 그룹을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수장은 손경식 회장이 맡았다. 손 회장은 CJ그룹의 숨은 실세이자, 이 회장 어머니인 손복남 고문의 동생이다. CJ가 1993년 삼성에서 분가했을 때도 손 회장이 이 회장을 대리해 경영했다. 총수 부재로 위기를 맞고 있는 현재 상황을 타개할 적임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이미 최후의 상황(이재현 회장 구속)을 대비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회장이 구속되자마자 그룹경영위원회를 발족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준비의 결과”라고 말했다.

이미경 CJ 부회장 ⓒ 뉴스뱅크이미지
실질적인 경영, 이 부회장 체제로 전환

하지만 실질적인 경영은 이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부회장이 맡을 가능성이 크다. 손경식 회장은 2005년부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세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과거처럼 CJ그룹 일만 할 수 없는 처지다. 때문에 손 회장은 대외적으로 얼굴 역할을 하고, 실질적인 경영은 이 부회장이 맡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미 일부 업무는 이 부회장 체제로의 전환이 마무리됐다. 앞서 언급한 관계자는 “그룹경영위원회 멤버 구성은 (이 회장의 어머니) 손 고문의 의중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부회장 체제로 가면서 중요한 의사결정은 이 회장에게 자문하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이 부회장의 리더십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이 부회장은 CJ그룹의 ‘체질 개선’을 주도한 인물이다. CJ그룹이 식품기업에서 영화·음악·미디어·게임 등을 아우르는 ‘미디테인먼트(미디어+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데도 이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

CJ그룹은 1993년 삼성에서 분가한 후 새로운 사업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할리우드 드림팀인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이 드림웍스를 설립해 해외 파트너를 찾는다는 얘기를 접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할리우드 영화 시장은 일본 일색이었다. 세계적인 스튜디오인 컬럼비아와 유니버셜을 소니와 마쓰시타가 각각 인수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동생 이재현 회장과 함께 스필버그 등을 만나 투자 협상을 진행했다. 정장이 아닌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이 부회장은 “일본 기업은 정장을 입고 딱딱한 공식적 미팅을 통해 협상을 했다”며 “우리는 통역도 없이 영어로 영화와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권위적인 동양의 경영자에 익숙해 있던 스필버그 등은 한국의 두 젊은 경영자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 드림웍스 지분의 30%인 3억 달러를 투자하는 대주주로도 받아들였다.

이후 CJ그룹은 미디테인먼트 사업을 본격화했다. 제일제당 내에 멀티미디어 사업부가 신설됐다. 1997년에는 영화 제작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슈퍼스타K’ 시리즈로 공중파 못지않은 시청률을 기록한 음악 채널 엠넷도 이때 인수했다. 이듬해에는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인 CGV를 오픈했다. 2009년에는 오리온 계열 PP(프로그램 공급업자) 온미디어와 게임업체 넷마블(현 CJ인터넷)까지 손에 넣었다. 이 부회장은 2011년 3월 영화·방송·음악·게임 기업을 하나로 묶어 CJ E&M을 설립했다.

이 부회장이 문화 사업에 집착한 데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동양방송과 동양라디오를 자주 방문했다. 학교가 끝나면 방송국에서 현장을 구경하곤 했다. 이런 환경 탓에 콘텐츠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힐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화가 없으면 나라가 없다’고 말씀하셨다”며 “오늘날 CJ그룹의 경영 철학 역시 당시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고 밝혔다.

미디테인먼트 분야에서 CJ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영화 부문에선 ‘투자+제작+배급+상영’을 아우르는 업계 공룡으로 성장했다. 국내 영화계에서 CJ는 알파이자 오메가다. 영화업계 한 관계자는 “충무로에서 CJ는 일종의 보증수표로 통한다”며 “투자에서 제작, 배급, 상영까지 모든 루트를 쥐고 있기 때문에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독과점 논란까지 벌어졌다. 방송업계 관계자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면 CJ의 매출 상한선이 33%에서 49%로 확대된다”며 “CJ 계열 MPP(대형 프로그램 공급자)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의 역할이 그동안 미디어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CJ그룹은 최근 이재현 회장 구속 전후로 ‘오너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CJ헬로비전, 대한통운, CJ E&M 등은 6월 중에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장의 외면을 받으면서 조용히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신용등급 AA 이상 기업이 회사채 조달에 실패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CJ그룹의 오너 리스크가 계열사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경 경영 리더십’ 시험대 올라

이와 관련해 그룹 관계자는 “사정을 몰라서 하는 얘기”라고 말했다. CJ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은 그동안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돼왔기 때문이다. 2010년 말 김홍창 대표가 취임 6개월 만에 경질되면서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김철하 사장 체제로 재편되면서 순항 중이다. 2011년 3월 출범한 CJ E&M 역시 이 부회장의 최측근인 하대중 대표가 초대 사장을 맡았다. 하 대표 시절 CJ E&M의 매출은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출범 첫해인 2011년 1조1431억원에서 이듬해 1조3946억원으로 매출이 늘어났다. 강석희 대표로 교체된 올해는 매출이 1조6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영업이익 역시 2011년 697억원에서 2012년 389억원으로 감소했지만, 올해는 700억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증권가는 추정하고 있다. 올 1분기와 2분기 실적은 전년에 비해 각각 15%, 20% 늘어났다.

물류 부문은 이채욱 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공채 출신으로 GE 아시아 총괄 사장, 인천공항공사 사장 등을 지냈다. 이재현 회장이 삼고초려 끝에 지난 4월 영입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들이 이미경 부회장을 뒷받침해준다면 총수 부재의 공백을 충분히 메울 수 있다”며 “그룹 안팎에서 조만간 CEO와 임원들 역량 재평가 작업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다. 경영 시험대에 오른 이미경 부회장의 CJ가 어디로 향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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