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들도 다 뒤져라
  • 박주민 |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 ()
  • 승인 2013.07.2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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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추징금 징수 위한 다섯 가지 조건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무려 1672억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미납한 상태이지만 누가 봐도 호화스러운 생활을 해왔다. 골프장 9곳 정도를 정해놓고 지인들과 자주 라운딩을 하는 그의 모습은 “단돈 29만원밖에 없다”던 하소연과는 동떨어진다. 전 전 대통령의 자식들은 정확히 추정되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부를 지니고 있다. 서울 강남 일대에 번듯한 건물들과 미국의 포도주 양조장 등 일반 서민들은 꿈에도 가져볼 수 없는 재산들을 보유하고 고생 한번 없이 인생을 꾸려나가고 있다.

전 전 대통령 자녀 일가들 또한 자신들의 수천억대 재산을 그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도 떵떵거리는 전직 대통령 일가를 지켜본 국민의 심정은 어땠을까. 적어도 필자는 걸어 다니는 ‘부정의’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법이 무력해지는, 그래서 법을 지키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듯한 행태를 보는 것 같았다.

올해 들어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 시효가 완료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일부 극우 사이트 등을 중심으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개념 없는 비하 행동이 빚어지면서 국민들은 회초리를 들었다. 시효가 다가오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국회와 검찰을 향해 매서운 회초리질이 있었다. 결국 국회는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이라는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검찰은 본격적인 압류와 압수수색에 나섰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기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역시 우리나라 국민은 무섭고도 현명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끊임없는 생명력으로 살아 있는 5·18 민주화운동이 성숙시켜놓은 국민의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높은 인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찜찜함이 계속 가슴에 남아 있다. 검찰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압류나 압수수색을 했는데 성과가 미미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혹시 ‘전두환 일가를 그렇게도 이 잡듯 뒤졌는데 나오는 것이 없더라’는 식이 되면 면죄부만 주는 꼴 아닌가. 두려움이 느껴지는 건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보여줬던 검찰의 무기력한 추징금 집행 행태를 보면 누구나 이런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이 앞으로 어떠했으면 좋을지, 검찰과 국민에게 바라는 개인적인 고언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밝히고자 한다.

7월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에서 압류 절차를 마친 검찰 관계자들이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조세 회피처 유출 가능성도 조사해야

첫째, 검찰은 좀 더 넓은 범위의 전직 대통령 주변 사람들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 2000년 검찰이 미납 추징금 징수를 위해 전 전 대통령 소유의 검은색 벤츠 승용차를 압류해 경매에 들어갔을 당시, 이 자동차를 낙찰받은 사람은 10·26 사태 때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전속 부관을 지낸 손 아무개씨였다. 그는 5공 시절 청와대 3급 비서관을 지낸 인물이다. 손씨는 이 자동차 낙찰 대금 9900만원을 무슨 돈으로 냈을까. 참고로 손씨는 1996년 전 전 대통령의 내란 및 뇌물죄 재판 당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을 돕기 위해 자신 명의의 계좌를 제공한 적이 있다. 또 손씨는 2003년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가 운영하던 회사를 매입해 현재까지 대표로 재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전 전 대통령이 손씨 등과 같은 측근들을 이용해 비자금을 숨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재는 전 전 대통령의 친인척까지 조사 범위가 확대된 상태이나, 이를 넘어서 전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사람들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전직 대통령들이 보유한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재산에 초점을 맞추고 조사를 벌여야 한다. 이미 많은 사람이 추측하고 있는 것과 같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은 차명 부동산이나 무기명 채권 등으로 보관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현재 고가의 미술품이나 골동품에 집중된 조사를 부동산이나 무기명 채권 등에 대해서까지 확대해야 한다.

셋째, 해외로 유출됐을 부분에 대해 좀 더 치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는 차남 재용씨에 대한 조세 포탈 혐의 수사가 진행되던 2004년 해외 조세 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바 있다. 이 회사를 설립하면서 싱가포르의 한 법무법인의 도움을 받았고, 이후 회사의 업무를 싱가포르에 있는 은행이 맡고 있는데, 싱가포르의 경우 우리나라와 조세협약이 체결돼 있어 금융 정보 제공 요청이 가능하다. 따라서 검찰은 국내의 자금 흐름뿐만 아니라 해외로의 자산 유출에 대해서도 더 철저히, 그리고 신속하게 조사해야 한다.

넷째, 현재 추징금 집행 차원의 조사에서 언제든지 ‘수사’로 전환할 수 있다는 원칙적인 태도가 고수돼야 한다. 이미 채동욱 검찰총장도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언제든지 수사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04년 차남 재용씨가 조세 포탈 혐의로 구속 기소됐을 때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가 어디서 구한 돈인지 알 수 없으나 ‘자신의 알토란같은 돈’이라며 200억원을 대납한 경험이 있다. 이는 수사로의 전환 혹은 그러한 원칙적 태도의 고수가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해 뜻하지 않은 성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이 끝까지 감시해야 정의가 선다

마지막으로 국민들에 대한 바람이다. 검찰이 현재 열심히 추징금 집행에 나선 것도 국민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진행하고 있는 추징금 집행과 비자금 찾기가 좀 더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그래야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검찰의 추징금 집행이 아닌, 정말로 정의를 세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만에 하나 검찰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추징이 가능하도록 다시 한번 법 개정을 할 수 있게 독려하는 것까지도 감안해야 한다. 상당히 피곤한 일일 것이다. 이렇게 당연한 일에도 국민이 피곤하게 나서야 하는 것이 한탄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국민이 그냥 놔둔 채로 정의가 바로서는 일이 얼마나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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