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차남 회사가 ‘비자금 저수지’ 노릇 했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8.0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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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압수수색한 웨어밸리에 투자한 회사는 재용씨 ‘가족 기업’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에 나선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가 운영했던 IT업체를 압수수색하면서 ‘전재용의 회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10년부터 ‘전두환 비자금’을 집중적으로 추적해온 <시사저널>은 전 전 대통령의 숨은 재산이 재용씨에게 흘러간 정황을 여러 군데서 포착했다. 그 중심에 재용씨의 회사가 있다.

현재 재용씨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는 ‘비엘에셋’이다. 부동산 개발 및 임대를 주로 하는 회사다. 재용씨가 대표이사이며 부인 박상아씨가 감사로 있다. 장모인 윤 아무개씨와 처제인 박 아무개씨도 2011년 4월까지 이사를 맡았다. 회사 지분은 100% 재용씨 부부와 네 명의 아들딸이 나눠 갖고 있다. 말 그대로 ‘가족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자본금은 5억원에 불과하지만 자산 총계는 425억7000만원에 이른다. ‘전두환 추징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날 매매한 두 채와 재용씨 가족이 현재 살고 있는 한 채 등 빌라 세 채도 이 회사 소유였다.

ⓒ 시사저널 이종현
웨어밸리-비엘에셋의 실체

이번에 검찰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한 회사는 ‘웨어밸리’다. 이 회사는 2001년 업계의 젊은 기술자 10여 명이 모여 만들었다. 당시 재용씨는 경영자라기보다는 투자자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재용씨는 설립 후 2년여 동안 회사 운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2003년 1월 재용씨가 미국 사업 본부장을 맡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사장을 맡고 있던 박 아무개씨가 반대하자 박씨를 몰아내고 아예 대표이사 자리를 꿰찼다. 그런 후 미국 법인 설립에 나선 것이다.

두 회사는 전혀 성격이 다른 회사로, 특별한 관계가 없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2001년 1월 재용씨는 7억원을 투자해 웨어밸리를 만들었다. 그는 이때 ‘밸유매니지먼트’라는 회사 이름으로 투자했다. 이 회사는 곧바로 ‘제이앤더블유홀딩즈’로 이름을 바꿨다가 2006년 10월 현재의 비엘에셋이 된다. 웨어밸리에 투자한 회사가 바로 재용씨의 자금 운용 회사로 주목받고 있는 비엘에셋인 셈이다.

투자할 당시에는 재용씨의 전처인 최정애씨가 대표를 맡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웨어밸리가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2001년 10월부터 재용씨가 비자금 재판을 받아 실형이 선고될 때까지 3년 동안은 류 아무개씨가 대표이사로 있었다. 류씨는 재용씨의 동갑내기 친구인 류창희씨의 아버지다. ‘167억원 괴자금’ 수사 과정에서 재용씨가 류씨의 이름으로 빌라를 구입해 분양 대금을 납부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류창희씨는 두 회사에 모두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류씨는 2003년 8월부터 두 달여 동안 웨어밸리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 과정에서 ‘오알솔류션즈코리아’로 회사명이 바뀌기도 했다. 류씨는 또 비엘에셋의 전신인 제이앤더블유홀딩즈에서도 이사를 맡았다. 류씨는 ‘167억원 괴자금’ 수사 때 무기명 채권 매각 대금 중 일부가 웨어밸리에 투자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가 어려움을 겪을 때 남 모르게 돕는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자산 규모는 수백억 원대에 이르지만 비엘에셋의 경영 상태는 최악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10억6000만원에 불과하다. 부채 총계는 587억4000만원에 이른다. 그런 회사를 꾸려갈 수 있는 데는 외삼촌인 이창석씨의 도움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씨의 단기 차입금은 81억5000만원에 이른다. 미지급 비용도 13억3000만원이 넘는다. 경기도 오산시 땅을 헐값에 넘겨 수백억 원대 이익을 남길 수 있도록 해준 것도 이씨였다.

재용씨가 검찰에 구속돼 수사를 받게 되자 오알솔류션즈코리아는 경영진 공백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때 이 회사를 매입해 다시 웨어밸리로 이름을 바꾼 이는 전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손삼수씨다. 5공 시절 청와대 재무관을 지낸 손씨는 2000년 경매에 나온 전 전 대통령의 벤츠 승용차를 낙찰받아 구설에 오른 바 있다. 공교롭게도 이창석씨와 손삼수씨는 ‘전두환 비자금’의 관리자로 거론되어온 인물이다.

재용씨는 자신의 회사를 통해 해외로 자금을 빼돌리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1995년 9월부터 1997년 1월까지 서울지검장으로 근무하면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총지휘한 최환 변호사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해외 쪽 수사는 할 상황이 아니었다. 국제 수사 공조도 전혀 안 됐고, 한미 간에 범죄인 인도 협정도 체결돼 있지 않을 때다. 문제가 된 것은 2000년 이후다. 그때부터 (해외 자금이)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2003년 2월 웨어밸리 대표이사로 취임한 재용씨는 이후에도 회사 경영보다 해외 법인 설립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해 3월에는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 법인을 설립한다. 재미 언론인 안치용씨가 2012년 공개한 조지아 주 정부 법인등록 서류에 따르면 한국계 미국인 L씨가 대표이사, 재용씨가 이사로 등재돼 있다. 그런데 법인명이 웨어밸리와 관련이 없는 ‘솔로라’였다. 솔로라는 2003년 7월11일 ‘오알솔루션즈’로 이름을 바꾸는데, 두 달 뒤에는 한국에 있는 웨어밸리가 오알솔루션즈코리아로 이름이 바뀐다.

미국 법인에 맞춰 한국 회사 상호 변경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우선 한국 회사의 미국 진출을 노렸다면 이 회사 이름으로 현지 법인을 만드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거꾸로 갔다. 미국 법인에 맞춰 한국 회사의 상호가 바뀐 것이다. 미국 회사가 본사가 되고 한국 회사가 지사가 된 듯한 모양새다.

또 미국 법인을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애틀랜타에 세운 것도 석연치 않다. 웨어밸리는 IT벤처 바람을 타며 승승장구했고, 2002년 말 미국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해 9월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미국 실리콘밸리에 사무소도 개설했다. 당시 사장을 맡았던 박 아무개씨는 “본격적으로 독립 사무소를 개설하고 이를 법인 설립으로까지 이어가겠다는 계획이 있었다”며 “당시 IT 관련 벤처사업가들은 미국 진출 지역으로 단연 실리콘밸리를 선호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정황을 놓고 보면 재용씨가 미국 법인 설립에 집착한 이유는 사업과는 무관했을 가능성이 크다. 웨어밸리 설립 때부터 근무해온 회사 관계자는 미국 법인과 관련해 “당시 회사가 해외 투자를 한 기억이 없다. 전재용씨가 대표이사로 있을 때 설립된 미국 법인은 한국의 본사와 아무 관련이 없었다”고 밝혔다.

2009년 해산된 의료기기업체 ‘뮤앤바이오’의 주요 임원 중 미국 거주 인물이 많다는 점도 주목된다. 재용씨가 대표이사를 맡기도 한 이 회사에서는 한 아무개씨와 류 아무개씨 부부가 이사를 맡았다. 류씨는 재용씨 친구인 류창희씨의 누나다. 미국 법인 대표이사를 맡았던 L씨도 이사로 있었다. 재용씨 전처인 최씨가 감사를 맡기도 했다.

검찰도 재용씨가 미국 법인을 통해 자금을 빼돌렸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법인에 미화 20만 달러 이상이 송금된 사실이 확인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검찰은 2004년 수사에서 드러난 ‘괴자금 167억원’ 중 일부가 미국 법인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재용씨 회사의 자금 흐름을 통해 전 전 대통령의 해외 비자금의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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