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최고 실세는 이정현이다"
  • 이승욱·엄민우 기자 ()
  • 승인 2013.08.0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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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출범을 전후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친정 체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박 대통령이 권력을 나누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직할 통치’ 가운데서도 정권의 핵심 실세는 드러나기 마련이다. <시사저널>은 박근혜정부 출범 6개월째를 맞아 정치 전문가 100인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누가 박근혜 정권의 최고 실세인가’를 물은 것이다. 조사 결과 대한민국 권력 구조에서 직급·직책은 그 사람이 행사하는 권력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정치 전문가들은 박근혜 시대의 최고 실세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을 꼽았다.

 

ⓒ 연합뉴스
숨바꼭질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 언론과 정치권은 박근혜 시대의 숨은 실세를 찾기에 바빴다. 하지만 설만 난무할 뿐 ‘그림자 권력’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이는 제2의 권력자를 용인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 탓이기도 하다. 그림자 권력으로 언론에 언급되는 순간 박 대통령의 외면과 질책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인수위원회와 내각, 청와대 인선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 곡선을 그렸다는 점도 그림자 권력을 용납하지 않은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박근혜정부 출범 6개월로 접어들면서 대통령 지지도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가운데도 선방하고 있다. 출범 초기와는 달리 정권이 안정적인 궤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분위기가 반전하자 그림자 권력의 윤곽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숨죽이고 있던 예비 실세들도 몸을 사리지만은 않고 있다. 본인이 의도하든, 하지 않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권력 2인자를 향한 도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림자 권력을 향한 ‘춘추전국시대’의 막이 서서히 오르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의 ‘박근혜정부 그림자 권력’ 조사는 7월30일부터 31일까지 이틀간 전화 설문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사 대상은 총 100명으로 신문·방송 등 언론사 기자 78명, 나머지(22명)는 정치학 교수·정치평론가 등으로 구성됐다. 조사 방식은 조사 대상자에게 “박근혜정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실세 3명을 꼽아달라”고 물은 후 합계를 내서 순위를 매기는 것이었다.

<시사저널>의 그림자 권력 설문조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의 ‘입’으로 통하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2위)를 제치고 박근혜정부의 그림자 권력 1위로 꼽혔다. 이 수석은 71표를 얻어 최 원내대표보다 4표를 더 받았다. 이 수석은 언론사 기자와 교수·평론가 그룹에서 각각 55표와 16표를 얻어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이정현 수석이 당·정·청 등 여권의 핵심 요직 인사를 제치고 핵심 실세로 꼽힌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박 대통령의 오랜 심복인 데다, 최근 각종 현안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하면서 박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서 위상이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이 수석을 핵심 실세 1순위로 꼽은 한 일간지 정치부 기자는 “이정현 수석은 말을 아끼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 결과가 나왔을 때는 강한 워딩을 내놓으면서 청와대가 존재감이 있다는 걸 인식시켰다”며 “박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몸을 던질 줄 아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정현 수석은 박 대통령의 말을 대신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있다. 실질적인 정치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박 대통령의 의중까지 대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 시사저널 이종현·시사저널 포토
최경환, TK 등에 업은 실세 재확인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총 67표를 얻어 실세 2위로 꼽혔다. 최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친박계 인사 중에서도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10월 대선을 앞두고 ‘2선 퇴진론’이 제기되자 비서실장직을 사퇴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최 원내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자가 발전을 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박 대통령과 관계가 소원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최 원내대표는 지난 5월 중순 당내 원내대표 경선에서 경쟁자인 이주영 의원을 근소한 차이(8표)로 제치고 당선됐다. 당내 비토 그룹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논란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방 등을 진두지휘하면서 당내 실세로 각인되고 있다. 새누리당을 출입하는 한 일간지 정치부 기자는 “최경환 원내대표는 황우여 당 대표보다 강한 발언권을 갖고 150여 석 새누리당의 흐름을 조율하고 있다”며 “친박인 동시에 당 대표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최 원내대표가 실세 중 실세”라고 말했다. 다른 정치부 기자는 “요즘 국회에서는 최 원내대표를 청와대 파견 파출소장이라고 부를 정도로 박근혜정부를 적극적으로 엄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새누리당 친박의 핵심은 바로 TK(대구·경북) 의원들”이라면서 “최 원내대표가 실세로 꼽힌 데는 TK 출신이라는 점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윤상현·김장수 등 ‘신실세’로 주목

이정현 수석과 최경환 원내대표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 그룹과 통하는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25표를 얻어 3위를 차지했다. 허 실장은 정치 현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정부 기관 주요 보직과 청와대 인선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허태열 실장에 이어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21표), 김무성 의원(19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15표) 등도 6위권 내에 포진했다. 윤상현 수석부대표는 최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관련 검찰 고발을 주도하면서 핵심 실세로 급부상했다. 김장수 실장도 현 정부 들어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실세로 꼽힌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남재준 국정원장(이상 7위), 유정복 안전행정부장관(8위),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상 9위)이 실세 톱10에 들었다. 국무총리의 권한 강화 등으로 ‘실세 총리’를 기대했던 정권 초기 분위기와 달리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 정홍원 총리는 공동 10위에 머물렀다.


박근혜 국정 운영 능력 ‘66점’ 


박근혜 정권 출범 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사태부터 국정원 선거 개입 논란 및 개성공단 사태까지 혼돈의 시간이 흘렀다. 정치 전문가들은 지난 5개월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능력에 몇 점을 주고 있을까. <시사저널>이 정치 전문가 100명에게 대통령의 국정 운영 능력을 물었더니 평균 66점(100점 만점)으로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평가는 분야별로 다르게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잘하고 있다’고 꼽은 분야는 공통적으로 ‘외교’였다. 그 이유는 “미국·일본보다 중국을 먼저 방문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미국·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잘하고 있는 것 같다” 등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수사를 꼽은 사람도 있었다.

‘잘못하고 있다’는 분야로는 인사 문제와 더불어 대야(對野) 관계를 지적하는 이가 많았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정권 초기에 너무 대결 국면을 만들어가고 있고, 본인이 해결사보다는 방조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대선 때 이야기했던 국민대통합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개성공단과 관련해 “원칙만 앞세워서 경직된 모습을 보인다” “북한을 잘 다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굴복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보다 보니 합리적인 대북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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