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사고 치는 남자들
  • 서상현│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8.2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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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현오석·조원동·양건 등…여권에서도 부글부글

“걸었던 기대가 커 실망도 크다”는 한숨 소리가 정치권 여기저기서 새어나오고 있다. 출범 6개월을 맞은 박근혜정부에 대한 평가다. 아직은 임기 초반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남아서인지, 아니면 평가가 다소 성급해 보이는 탓인지 몰라도, 현 정국 난맥상에 대한 비판의 화살은 모두 ‘박근혜정부의 사고 치는 남자들’을 향하고 있다. 요즘 그 전면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이가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내에서도 “두 사람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확산되고 있다.

“총리가 있긴 한 건가? 총리라 볼 수 있나?” 새누리당 친박계 한 중진 의원은 정홍원 국무총리의 존재감을 되물었다. 정 총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기자의 물음에 대한 답이다. 정 총리가 국민 대통합을 이룰 ‘화합형’도, 내각 주도권을 쥐고 흔들 ‘전문가형’도, 국민 지지도를 이끌 참신한 ‘대중 선동형’도 아닌 ‘무늬만 총리’라는 비판은 다른 곳에서도 수차례 들어온 터였다. 그의 지적은 이랬다. “‘유리 지갑을 털려 하고 있다’는 국민적 ‘조세 저항’은 현오석·조원동 경제팀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때쯤 실무형 총리의 개입과 혜안이 나와야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역할이 없는지, 역할을 해낼 능력이 없는지…. 아무튼 그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존재감 없는 정 총리에 여권 불만 증폭

정 총리는 박 대통령의 첫 ‘책임 총리’다. 행정적 권한을 과거보다 확대해 국무위원 제청권, 부처 인사권을 쥐게 된 정 총리는 ‘내치’에서만큼은 박 대통령의 대역을 충실히 소화해내야 한다. 그런데 전국 각 지역 행사장만 찾는다고 해서 붙여진 ‘의전 총리’ ‘행사 총리’라는 비아냥이 곳곳에서 들린다. 대통령에게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할 말을 하는’ 총리를 그렸던 인사들도 꽤 있다. 그러나 정 총리의 경우 사고를 너무 치지 않는 자체가 사고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정 총리에 대한 색다른 평가도 있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새누리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정 총리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100점 만점’ 아닐까? 실수하지 않고, 나서지 않고, 일을 벌이거나 키우지 않는, 주인공(박 대통령)을 도드라지게 하는 조연으로는 ‘딱’인 그런 총리 말이다. 만기친람(萬機親覽, 임금이 온갖 정사를 친히 보살핌) 스타일의 박 대통령으로선 맡은 배역을 기대보다 잘해내는 총리는 필요가 없다.” 이런 이야기는 다른 정치권 인사들로부터도 쉽게 들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어 신(新)실세로 떠오른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해서도 “사고를 친다기보다는, 너무 잘하려다 잦은 실수를 반복해 품격을 잃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한 정치권 인사가 있다. 그는 “홍익표 전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글을 인용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귀태(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라고 표현한 사건이 있었다. 다음 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한 이 수석은 마치 제국주의 국가의 홍위병, 친위대와 같은 인상을 줬다. 그런 발언은 국민이 속으로 판단하도록 청와대가 격(格)을 지킬 필요가 있었다. 대통령 가족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을 잃는 모습에서 ‘다른 정책에 대해서도 저렇게 민감하고 발 빠르게 움직일 것이지’ 하는 씁쓸한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앞서의 고위 당직자는 “이 수석으로선 박 대통령 덕에 벼락출세한 것이 아니냐? 초선 한 번 하고 청와대 수석이 됐으니 본인으로선 ‘충성 맹세’를 몇 번 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벌어지는 실수”라고 평했다.

이명박 정부 때(2011년 3월) 기용됐지만 박근혜정부가 존속시킨 양건 감사원장 이야기도 꾸준히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프로젝트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한반도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시공됐다”고 발표한 것이 지나치게 생뚱맞다는 것인데, 정치권에선 “지나치게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같은 감사원, 같은 감사원장의 감사 내용이 전 정부 땐 ‘옳은 일’이었다가 현 정부 땐 ‘잘못된 일’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친박 “일단 올해만 넘기고 보자” 별러

한 여권 관계자는 양 원장을 두고 “너무 뜬금없는 발표가 아니었나? 정부가 바뀌자마자 4대강을 들고 나오는 것 자체가 독립성을 포기한 정신없는 집단이 하는 짓이 아니냐는 날 선 비판이 크게 회자됐다”며 “서해 북방한계선(NLL) 정국에서 느닷없이 터지니 마치 ‘물 타기’처럼 비쳤고, 혹여 박 대통령이 저런 사람인 줄 알고 살려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들었다”고 했다. 가뜩이나 직언하는 충신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박 대통령이 자기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쓸 사람만을 편애해선 안 된다는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오죽하면 좀처럼 상처 주는 소리를 하지 않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까지 지난 7월 감사원 결과를 두고 “양건 감사원장 체제에선 그동안 간직해온 전형적인 감사원의 모습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겠냐는 것이다.

월급쟁이의 공분을 산 세제 개편안 논란이 촉발돼 한숨을 돌린 인물로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꼽힌다. 여야를 막론해 “국가 기록을 제멋대로 공개하느냐”는 비판에 시달린 그였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일반 문서로 바꿔 공개한 것을 두고 “독자적으로 판단했다”며 박 대통령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했지만, 청와대 보고설 내지는 교감설은 이미 정치권에 기정사실로 돼 있다. 하지만 남 원장이 NLL 정국 속 국지전에서는 이겼을지 몰라도 “국정원이 박 대통령 경호원 구실을 하는 한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은 여야 할 것 없이 공통되게 나온다. 국내 정보기관 수장이 정치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고, 정상 간 대화록을 공개해 해외 토픽이 되는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는 점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뒤 재지 않고 ‘진격의 충성’을 맹세하다간 박 대통령 마음은 살지 몰라도 국민적 공감대는 얻지 못할 것이란 말이었다.

내각은 물론이고 사고 치는 사정기관·정보기관 때문에 ‘추석 후 개각설’이 회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청와대 인사들과 자주 연락하는 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은 다른 말을 했다. “임기 초반, 청문회 때문에 내부 정비와 전열을 제대로 가다듬지 못한 박 대통령으로선 같은 해 또 한 번의 청문회를 최대한 피하려 할 것이다. ‘청문회 트라우마’다. 현 부총리와 조 수석 경질에 대해 청와대에서 발끈한 것도 ‘개각은 말도 안 된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을 담은 게 아니겠나? 박 대통령 비전의 핵심은 ‘창조경제’와 ‘복지’다. 이번에 청와대 미래전략수석과 고용복지수석을 교체한 것은 일종의 경고다. 잘못하면 국물도 없다는.”

‘사고 치는 남자들’은 청와대와 정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집권 여당 지도부를 향한 당내 목소리도 곱지 않다. 친박이지만 임기 첫해여서 끓어오르는 속을 참고 있다는 국회의원들이 최근 사석에서 “일단 올해만 넘기고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여차하면 ‘내부 총질’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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