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혈세 아끼는 노력부터 해라
  • 김우철 |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
  • 승인 2013.08.2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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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늘리는 데 급급하다 역풍…세액공제, 단계적으로 추진했어야

새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첫 세법 개정안은 발표 즉시 언론으로부터 ‘월급쟁이 증세’란 뜨거운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여론이 들끓자 근로자의 세 부담 증가 기준선을 상향하는 수정안을 발표하면서 일주일간에 걸친 세법 개정 드라마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마무리된 듯하지만, 일련의 사태가 남긴 후유증은 간단치 않다. 논란의 핵심인 근로소득세제 개편 부분은 잠시 뒤로하고 전체 개정안을 찬찬히 살펴보자. 이번 세법 개정안의 정책 기조는 박근혜정부의 대선 공약 실현을 나름으로 충실히 뒷받침하기 위한 재원 마련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성장 기반 강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 활성화 기조를 저해하지 않으면서, 취약 계층 지원과 복지 정책 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에 중점을 뒀다. 개정안에 나타난 복지 비용의 계층 간 귀착을 보면, 기업 과세는 부분적으로 강화됐으나 제한적인 조치에 머물러 기업의 세 부담 증가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뚜렷하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8월13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정책 의원총회에 참석, 세제개편 수정안을 보고하기 앞서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세법 개정안 사태가 주는 교훈

반면, 개인 과세 측면에서는 근로소득세를 중심으로 상당한 정도의 과세 기반 강화 노력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것이 소득공제의 세액공제 전환과 같은 조치이다. 또 종교인이나 고소득 농민 그리고 공무원 직급보조비 및 재외근무수당에 대한 과세 도입 등도 눈여겨봐야 할 사항이다. 그 외에 개정안에서 근로 장려 세제를 확대하고 자녀 장려 세제를 도입한 것은 복지 확대 측면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개정안 가운데서 가장 특징적이고 논쟁적인 요소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한 부분이다. 이에 대한 평가에서 조세정책 전문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면, 근로자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세액공제로의 전환이 어떤 배경에서 이뤄진 것인지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부담은 국제적인 수준에 비해 낮은데, 이는 중간 과표 이하에 적용되는 세율이 낮고 광범위한 소득공제 허용으로 과세 기반이 매우 좁다는 점에 기인한다. 특히 소득공제의 총계가 전체 근로자 소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어 소득세 기반을 크게 축소시킬 뿐만 아니라, 소득공제의 혜택이 고소득층에 집중돼 소득세의 재분배 기능이 적절히 작동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정치권이나 시민단체는 소득세의 재분배 기능 강화를 위한 방법으로 쉽게 눈에 띄는 최고 세율 인상을 통한 세율의 누진성 강화에 집착해왔다. 그러나 전체 소득세 기반이 취약한 가운데서 최고 세율을 인상하는 것은 기대만큼 재분배 효과를 낼 수 없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반면 복잡한 공제 제도의 성격상 일반인의 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소득공제의 합리적 개선은 소득세제의 원활한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효력을 낼 수 있다. 먼저 소득세 기반 확장을 통해 세수가 확대되면, 소득세제의 기본 체력이 강화돼 재분배 기능의 기본적인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제 혜택 자체의 역진적인 구조를 바꾸는 데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대부분의 소득공제가 소득에 비례해 늘어나고 있고, 여기에 납세자의 소득에 누진적으로 적용되는 한계 세율 효과를 곱하게 되면, 소득공제가 주는 소득세 절감의 실질적인 효과는 고소득층에 집중되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게 되면 소득세 절감 혜택이 공제 규모에 비례해 나타난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소득세 세원이 확대되고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는 이중의 긍정적인 효과가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세액공제 방식의 장점에 대한 정부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하지만 근로자의 조세 저항에 밀려 급기야 정책을 수정하게 된 참혹한 결말을 맞았다. 이번 사태를 관찰하면서 필자가 느꼈던 문제는 세액공제 방식으로의 전환 자체보다는 조세정책 수립의 원칙과 과정에 있다.

먼저, 조세정책 수립의 기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공평 과세가 근로자층 내부에서만 유독 강조된 문제점이 있다. 국민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대기업 부문이 복지 비용 분담에 참여한 정도는 크지 않다. 중급 규모의 투자 지원 세제 축소로 인한 대기업의 세수 증대 기여는 국민 입장에서 볼 때 상징성이 거의 없다. 투명한 유리 지갑에 비용 분담을 요구한 것과 달리 고소득 전문직·자영업자에 대한 명시적인 조치가 개정안에서 누락된 것도 불만의 큰 원인이다. 우리 세제가 안고 있는 미비점 중의 하나인 금융소득 과세를 강화해 자산가 계층의 동참이 이뤄져야 함에도 가시적인 조치는 없다는 것이 근로자의 조세 저항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세 부담을 늘리기 이전에 정부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국민의 혈세인 세출을 절감하고 효율화하는 노력인데, 그동안 세출 구조조정의 의지만을 밝히고 구체적 실행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불신을 키운 이유다.

설득 통한 컨센서스 도출 안 돼

두 번째 문제는 조세정책의 수립과 추진 과정에서 반성해야 할 점이다. 지난 40년간 유지돼온 현재의 소득공제 제도는 근로자들이 연말정산 환급을 ‘13월의 급여’라고 부를 정도로 국민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를 합리적으로 개선한다는 명분이 정책 당국에 있었다 해도, 법 개정 준비 과정에서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충분한 사전 협의와 설득을 통해 컨센서스를 도출했어야 했다.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제대로 개최하지 않고 40년 만의 개편을 정부 내 소수 담당자가 다소 비밀스럽게 추진한 것이 화근을 불러왔다.

공약 가계부에 규정된 재원 대책이라는 숙제를 풀어야 하는 정부의 한계가 내년 중으로 무리하게 개편을 완료하게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방식에 의해 세액공제 전환을 추진했다면, 납세자의 저항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예컨대 시행 첫해에는 소득 1억원 이상 계층에게 먼저 세액공제 전환을 적용하고, 2년 차에는 7000만원 이상, 마지막 3년째에 4000만원 이상 계층까지 적용 범위를 순차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표현상의 문제이지만 법 개정에 대해 강한 의지가 작용한 청와대와 세제실이 3450만원의 소득 계층을 다소 일방적으로 ‘중산층’ 범위에 포함시키고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세금 분담에 강제 편입시키는 모습으로 언론에 비친 것이 근로자의 심리적인 저항을 키웠다는 점도 아쉬움을 남긴다. 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인식 속에 중산층은 4인 가구의 경우 적어도 연 소득 6000만~7000만원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 사전 협의와 설득이 배제된 상황에서 정부의 밀어붙이기가 가져온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발이었다.

궁극적으로 복지 비용 마련을 위해 전체 근로자 1400만명의 상위 28% 소득 수준에 위치하는 3450만원 계층에게 연 16만원 수준의 세 부담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복지 비용 분담 계층의 범위 확대가 더욱 요원한 과제가 돼버린 것은 복지국가의 기틀을 다져가야 하는 현 시점에서 뼈아픈 실책으로 남는다. 추후 복지 정책의 확대는 정권에 관계없이 추진되어야 할 국가적 과제다. 이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은 계속해서 뜨거운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곱씹어보아야 한다. 증세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황 판단부터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까지의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한다. 세출을 충분히 절감하고 효율화했는지, 대규모로 탈루되는 음성적 소득이 아직도 있는지, 세제 미비로 인해 예외적으로 비과세되는 소득이 존재하는지, 방만한 조세 감면을 충분히 정비했는지를 국민과 함께 투명하게 점검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 조건 아래에서만 법인세든 소득세든 또는 부가세든 증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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