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군대 안 가는 게 성차별?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3.08.2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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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여성 병역 의무화…다른 유럽 국가들은 시큰둥

한국은 병역 문제로 논란이 한창이다. 연예병사 제도는 폐지됐다. 가수 세븐·상추 등 일부 연예병사가 근무지를 이탈해 마사지업소에 출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진 탓이다.

한국의 병역 문제에는 예민한 뇌관이 달려 있다. 병역 형평성이다. 국민의 절반 가까운 남성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병역 의무 수행에 바치기 때문에 열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연예병사와 정치인 병역 문제는 반짝 특수를 누리는 베스트셀러이지만 남성과 여성, 즉 양성 간의 병역 형평성 문제는 10여 년 넘게 논의돼오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우리 오빠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여성 팬의 항변에 “여성도 병역 의무를 져야 한다”는 대꾸가 되풀이돼 나온다.

이번에 불씨는 저 멀리 노르웨이에서 날아왔다. 지난 6월 중순 노르웨이 국회가 2015년부터 여성에게도 병역 의무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럽 국가로는 처음으로 여성의 병역을 의무화했다. 노르웨이 국회의원 라일라 구스타브센은 “권리와 의무는 누구에게나 같아야 한다. 군대는 성별과 관계없이 우수한 인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결정은 여러 보도와 소셜 미디어 서비스를 통해 급속히 퍼졌는데 특히 남성들을 중심으로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뿐 아니라 유럽 및 미주 언론도 이 소식을 관심 있게 다뤘다.

노르웨이 군인들이 오슬로의 정부 빌딩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여성 병사들도 눈에 뛴다. ⓒ REUTERS
여성 징병제, 유럽 국가들 지지 못 얻어

지구 반대편 한국 남성들이 보내는 뜨거운 반응을 노르웨이는 알고 있을까. 정작 노르웨이는 자신들의 결정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슬로 출신의 비요르나 스베르드룹-티게손(30)은 “나나 다른 노르웨이인들이나 여성 병역 의무화에 대해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원칙적으로 양성이 모두 같은 의무를 지는 게 평등하지만, 이미 군대에 가지 않는 남성도 많다”며 “여성 병역 의무 도입도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닐 뿐”이라고 설명했다. 노르웨이에서는 병역 형평성이 한국처럼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는 뜻이다.

왜 그럴까. 실제 노르웨이의 병역 형평성은 한국보다도 떨어진다. 징병 대상 남성 6만여 명 중 실제로 병역을 수행하는 사람은 1만여 명에 불과하다. 징병 대상 인원 중 심사를 거쳐 선발한다. 게다가 노르웨이는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지우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여성인 안네그레테 스트룀에리크센이 국방장관직에 오르고, 공기업과 상장 기업 임원의 40%를 무조건 여성으로 뽑는 ‘여성할당제’가 시행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여성 군복무제가 우리 생각처럼 여성에게 군역을 지우기 위한 게 아니다. 유럽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성차별 해소 정책의 일환으로 여성 징병이 도입된 것이다.

여성 병역 의무제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선 공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7월23일 핀란드의 일간지 ‘아물레티(Aamulehti)’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핀란드인의 40%만이 ‘여성도 의무적으로 시민 복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도 병역 의무를 져야 한다’는 사람의 비율은 13%에 불과했다. 아물레티는 “남성이 육아 휴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이상, 여성에게 병역이나 시민 복무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여성의 커리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설문조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시민 복무다. 최근 사회봉사 활동을 병역의 대안으로 여기는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흐름은 독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독일은 통일 이후 공산권 몰락으로 자국의 군사 분쟁 위험이 줄어들자 현역병을 감축했다. 급기야 지난 2011년에는 징병제를 아예 폐지했다. 병역이 사실상 사회복지 요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징병제가 폐지되면서 사회복지 요원도 사라졌는데, 문제가 생겼다. 당장 전국 사회복지 시설에서 8만여 명의 일손이 부족해진 것. 대안으로 생긴 것이 연방 자원 복무 제도(BUFDI)다. 징병제의 대안이지만 여기에는 여성도 참여할 수 있다. 가족·시민사회부의 안체 매더 대변인은 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자유 의지로 사회 참여 활동을 하기 때문에 성별이나 나이에 제한을 둘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레나 브룬스(19·여)는 7월1일부터 쾰른의 한 탁아소에서 ‘사회자원봉사의 해(FSJ)’ 근무를 시작했다. 대학에서 아동 교육을 전공할 계획인 그는 “실무 경험을 쌓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밝혔다. 그가 주 39시간 일하고 받는 돈은 식비를 포함해 월 380유로(약 57만원)다. 정부에서 저소득층에게 주는 지원금보다도 적은 액수다. 그나마 같은 일을 해도 월급 상한선이 336유로로 정해져 있는 BUFDI보다는 사정이 낫다. 쾰른 시가 브룬스에게 지급하는 돈의 명목은 ‘월급’이 아닌 ‘용돈’이다. 근무처의 재량에 따라 돈을 더 줄 수도 있지만 의무는 아니다. 탁아소 원장인  제니 프리드리히는 “탁아소의 경영 주체가 내가 아니라 부모회(Elterninitiative)여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BUFDI와 FSJ는 사회 복무 제도의 대안이지만 동시에 선의를 악용한 ‘임금 후려치기’라는 비난도 받고 있다. ‘슈피겔 온라인’은 “과거 사회복지 요원은 매월 기본급 630유로(약 94만원)에 교통비와 숙소까지 받았다”며 “정부가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을 희생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처럼 분단국가가 아닌 노르웨이에서는 징집 대상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명예’로 통한다. 분단 이후 통일이 된 독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자원 복무 제도는 여성들도 참여하지만 사회봉사적 성격이 강하다. 한국 남성들이 열광했던 제도들은 막상 한국의 병역 형평성과는 거리가 있는 정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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