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밀어낸 ‘무상급식 폭탄’ 터진다
  • 정락인 기자·조혜지 인턴기자 ()
  • 승인 2013.08.27 14: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역 단체장 8명만 적극 찬성…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쟁점화

‘무상급식’은 세금을 재원으로 해서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급식이다. 2011년부터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부분적으로 시행됐다. 지난 3월을 기준으로 전국 1만1448개 초·중·고교 중 무상급식을 하는 학교는 전체의 72.6%인 8315곳이다.

올해로 3년째를 맞이했지만 지방자치단체마다 속앓이를 해왔다.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을 두고, 지자체와 교육청 사이에 갈등도 적지 않았다. 지자체는 가뜩이나 예산이 부족한데 무상급식 예산을 추가 편성해야 하니 달가울 리 없다. 그렇다 보니 대다수 교육감은 ‘찬성’, 시·도지사는 ‘반대’ 또는 ‘신중’하자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자치단체장이 대놓고 ‘반대’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입장에서 ‘무상급식 반대’는 단체장 출마를 포기하게 만들지도 모를 도박이다. 실제 무상급식과 관련한 국민 여론조사를 보면 10명 중 8명은 찬성하는 입장이다. 여기에 맞서 ‘반대’를 표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기 과천 관문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무상급식으로 나온 점심을 먹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본보기다. 오 전 시장은 무상급식을 놓고 서울시의회와 갈등을 빚었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제안했다. 33.3% 이상의 투표율이 나오지 않을 경우 자진 사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2011년 8월 실시된 찬반투표에서 투표율은 그에 미치지 못했고, 오 시장은 사퇴한 후 해외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자치단체장들에게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것은 ‘금기’처럼 여겨졌다.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했던 자치단체장도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8월15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올해 편성된 무상급식 예산 860억원(학생 급식 지원 460억원, 친환경 농산물 학교 급식 지원 400억원) 전액을 삭감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무상급식은 정치나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예산의 문제다. 빚을 내면서까지 무상급식을 할 수는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김 지사가 왜 갑자기 ‘무상급식 예산 삭감’ 카드를 꺼냈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정치적인 것을 떠나서 보면 ‘예산’ 문제가 걸린다.

경기 침체·지방세 감소로 ‘돈 가뭄’에 허덕

겉으로 드러난 지표를 보면 경기도는 ‘부자’ 자치단체에 속한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재정자립도 2위(71.6%)다. ‘재정자립도’는 정부 지원 없이 자치단체 스스로 예산을 운영할 수 있는 척도다. 전국 평균 자립도가 51.1%인 것을 감안하면 경기도는 잘사는 편이다. 다른 시·도에 비해 재정적인 여유도 있어 보인다. 이런 경기도가 ‘무상급식’ 예산 때문에 재정 운영이 힘들다면 다른 시·도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고 봐야 한다.

경기도 경영기획실 관계자는 “경기도는 세입의 절반 이상을 부동산 취득세로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부동산 거래가 침체 상태인 데다 지난 7월 국토부가 취득세 영구 인하 방침을 밝혀 여건은 더 나빠졌다. 여기에 지방소비세와 레저세까지 줄어 전체적으로 9400억원의 세수가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기에는 무리라는 주장이다. 물론 올해 경기도가 지원한 무상급식 관련 예산은 도교육청 무상급식 총 예산의 12%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액 삭감되면 기초단체에 지원되는 금액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김 지사의 뜻이 100% 관철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예산을 심의하는 도의회는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김 지사의 발언이 나온 이후 경기도의회와 도교육청이 반발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들은 김 지사가 도정을 잘못 운영한 책임은 회피한 채 애먼 무상급식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아이들 밥상을 재정 위기 극복의 첫 표적으로 삼은 듯하여 안타깝고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김 지사의 ‘예산 삭감’은 무상급식 논란에 불을 지폈다. 당장은 김 지사의 ‘삭감 발언’에 동조하는 자치단체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눈치 보기로 여겨진다. 때문에 곧바로 ‘무상급식 대란’이 표면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내년 지방선거 이후다. 이때가 되면 자치단체장들은 무상급식 예산 삭감을 공론화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 내년 선거가 변수 될 듯

<시사저널>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전국 17개 시·도를 대상으로 ‘전면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 조사를 해봤다. 그랬더니 ‘전면 찬성’은 서울·광주·강원·충북·전북·경남·제주·세종 등 8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9곳 중 7곳(부산·인천·대전·울산·충남·전남·경북)은 ‘조건부 찬성’이었다. ‘국비 지원’ 등이 선행되지 않으면 전면 확대는 어렵다는 뜻이다. 경기와 대구는 확실한 반대 입장이다.

서울은 어떨까. 재정자립도 88.8%로 전국 1위이지만 속사정은 경기도와 다를 바 없다. 서울시는 올해 무상급식 지원 대상은 늘어난 반면,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지방세가 당초 계획보다 7500억원 적게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박원순 시장은 무상급식을 주요 정책으로 삼고 ‘하늘이 두 쪽 나도 서울시는 무상급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에 반해 문용린 교육감의 생각은 다르다. 교육감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문용린 교육감은 지난해 12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도 무상급식 전면 시행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무상급식은 단계적으로 지자체와 예산 상황도 살펴가면서 시행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전면 시행함으로써 시설비가 대폭 삭감되고 2013년 이후 지자체의 예산 지원 부족으로 인해 서울시교육청의 학생 교육활동비까지 줄여야 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의 올해 무상급식 예산은 3953억원이다. 이 중 50%는 서울시교육청이, 30%는 서울시, 나머지 20%는 자치구에서 분담한다. 올해는 중학교 2학년까지, 내년에는 3학년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그 후에 고교까지 완전 무상급식을 하겠다는 것이 박원순 시장의 생각이다. 하지만 ‘예산 확보’가 걸림돌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초·중·고교 전면 확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급식기획과 관계자는 “(무상급식) 예산 분담을 놓고 서울시와 협의 중이다. 교육청 입장은 전체 금액을 포함해서 30%를 서울시에 지원해달라고 했는데, 이견이 있어 조율이 안 됐다. 금액으로는 411억원 정도인데, 서울시에서 못 내놓겠다고 한다”며 난감해했다.

서울시의 경우에도 영구적인 무상급식은 장담할 수 없다. 내년 지방선거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선거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 박원순 시장-문용린 교육감 체제가 계속된다고 해도 ‘고교 무상급식’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이 예상된다.

부산시도 허남식 시장과 임혜경 교육감의 입장이 갈린다. 부산시 관계자는 “전면 무상급식은 지방 재정을 고려할 시기에 이른 것 같다. 소득 하위부터 점차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부산시는) 시간을 길게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임혜경 교육감은 무상급식에 적극 찬성한다. 그는 2014년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무상급식을 하려던 것을 올해 앞당겨 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부산시의회 교육위원회가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1년 앞당기면 학교 증·개축비와 학교 프로그램 개선 등에 필요한 재원이 부족해진다는 이유다.

부산은 현재 초등학교 5학년까지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 예산 584억원 전액을 시교육청에서 부담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보편적 복지’ vs ‘선별적 복지’ 한판 대결

지난해 말 보궐선거로 당선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진주의료원 폐업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그렇다 보니 ‘반(反)복지’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전면 무상급식에는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도 관계자는 “현재 초등학교는 전면 무상급식이 진행 중이다. 읍면 지역은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이 이뤄지고 있다. 당초 목표대로 2014년에는 중학교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하려고 한다. 단, 국비가 지원돼야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재정자립도 16위인 전라북도는 무상급식 비율이 지난 3월 기준으로 전라남도에 이어 2위(89.7%)다. 재정 형편에 비해 무상급식 비율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대해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 중이다. 고등학교의 경우 농어촌 지역은 100%, 도시 지역은 50%까지 확대했다. 전북도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도 관계자는 “지방세를 자꾸 낮추다 보니 세수 확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무상급식 비율(16.6%)이 전국 최하위다. 김범일 시장은 소득 분위 범위에서 지원한다는 방침 아래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해왔다. 그래서인지 대구시는 무상급식을 획일적으로 하지 않고 초·중·고교 학생 중 최저생계비 기준으로 확대해왔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도 대구시와 보조를 맞춰왔다.

김신호 대전시교육감도 무상급식을 원칙적으로 반대했다. 지금도 저소득층에 한해 무상급식을 하되, 형편이 괜찮은 학생들은 급식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에 반해 염홍철 대전시장은 초등학교 6학년까지는 전면 무상급식을 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해왔다. 중·고등학교 확대는 ‘국비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상급식을 반대하고 있는 시교육청과는 엇박자가 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무상급식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년도보다는 지속적으로 예산이 확대된다. 그래서 국가 지원이 없으면 중학교까지 지원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전면 무상급식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문제는 ‘예산’이다. 오랜 경기 침체와 부동산 시장 폭락 등으로 세수는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자치단체장들에게 ‘무상급식’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아직은 잠잠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내년 6월 지방 선거를 전후해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한판 대결이 점쳐지는 이유다.

 

민주당 3인방, 전면 무상급식 글쎄? 


민주당은 ‘무상급식’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 소속 자치단체장들 중 인천 송영길 시장, 충남 안희정 지사, 전남 박준영 지사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 이들은 ‘조건부 찬성’ 입장이다. 초등·중학교는 전면 무상급식을 해야 하지만, 고등학교까지 확대하기에는 예산 운영에 무리수가 따른다고 보고 있다. ‘예산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면 시행은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재정자립도 4위인 인천시의 경우 현재 초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이 진행 중이다. 인천시도 재정 지원을 선행 조건으로 내걸었다. 시 관계자는 “기존 방향대로 가는데, 재정 지원에 달렸다. 중학교는 전면은 아니지만 학년별로 점차 (무상급식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정자립도 11위인 충남도는 현재 초등학교는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 중이고, 중학교는 읍면까지 확대했다. 2014년까지는 전체 중학교로 늘릴 계획이다. 역시 고등학교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하는 데는 부담을 갖고 있다. 전남도는 전국 자치단체 중 재정자립도가 최하위다. 반면 전체 무상급식 비율은 95%로 1위다. 전남도도 고등학교 전체로 무상급식을 확대하는 데에 최대 걸림돌은 예산이다. 현재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시행하고 있다. 무상급식에 적극 찬성했던 자치단체들 모두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