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장인 돈은 마르지 않는 ‘화수분’?
  • 안성모 기자 (ams@sisapress.com)
  • 승인 2013.08.2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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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동 전 대한노인회 회장은 사위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부 내 후견인이자 재산 관리인이었다.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텨온 전두환 일가는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돈이 나올 때마다 이 전 회장의 유산이라고 떠넘겨왔다. 최근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를 전격 구속하면서 그의 아버지인 이 전 회장의 재산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 전 대통령 측 주장대로라면 이 전 회장의 재산은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나 다름없다. 과연 그랬을까. <시사저널>이 전 전 대통령 처가의 재산을 추적했다. 


“외할아버지가 결혼 축의금을 167억원으로 불려서 줬다.”

“연금보험 30억원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돈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인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 회장이 1988년 10월10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재산이 새롭게 드러날 때마다 고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 회장을 거론했다. 둘째 아들 재용씨의 괴자금도, 부인 이순자씨의 거액 연금도 2001년 작고한 이 전 회장이 남긴 유산이라는 것이다. 현재 수천억 원대로 추정되는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이 추징 대상인 불법 재산과 무관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전두환 비자금’의 관리자로 지목된 처남 이창석씨의 재산 역시 아버지인 이 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이 전 회장의 재산은 말 그대로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된다. 정말 그랬을까. <시사저널>은 제5공화국 인사들의 증언과 1960년 이후 각 언론사의 보도 등을 중심으로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그 결과는 전 전 대통령 측이 주장한 내용과는 달랐다. 이 전 회장 일가가 군부 내 유력 집안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맏사위가 최고 권좌에 앉기 전부터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들이 사업 등을 통해 부를 일군 흔적도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가 8월19일 서울중앙지검에서 구치소로 향하던 중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규동·규광 형제가 전씨 후견인 역할

이규동 전 회장은 1911년 경북 고령군에서 태어났다. 슬하에 1남 6녀를 뒀으나 딸 셋이 일찍 세상을 떠나 둘째 딸인 이순자씨가 맏딸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만주군 경리관을 지낸 이 전 회장은 광복 후 1946년 35세의 늦은 나이로 육군사관학교(당시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로 입교했다.

여섯 살 아래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동기다. 육사 2기는 40명에 불과하던 1기에 비해 수적으로 우세한 데다 민간인도 포함된 공개경쟁 시험을 통해 선발됐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총 263명이 입교해 196명이 소위로 임관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희생자 40명을 제외한 156명 중 절반이 넘는 79명이 별을 달았다.

이 전 회장도 무난한 군 생활을 이어갔다. 동생인 이규승씨(육사 7기·대령 예편)와 이규광씨(육사 3기·준장 예편)도 육사 출신이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4·19 혁명 직후인 1960년 4월29일 준장을 끝으로 군복을 벗었다. 이에 앞서 4월11일 당시 자유당 소속 국방위원이던 손도심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육군본부 경리감과 육군 헌병감으로 각각 재직 중이던 이규동·규광 형제가 부정부패를 저질렀다고 폭로했다. 이 전 회장이 장군 진급을 위해 국고금 4000만환을 빼돌렸는데 이를 감시할 위치에 있는 이규광씨가 형의 비리사실을 은폐했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예편 후 1961년 농협중앙회 이사, 1965년 대한주정협회 회장, 1975년 반공연맹 경기도지부장 등 비교적 순탄한 사회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에서 권력의 핵심에 있지는 못했다. 이 전 회장보다는 동생인 이규광씨가 더 권력 지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육사 3기 중 단연 두각을 보였지만 4·19 혁명 다음 날 자신의 비리를 폭로한 손도심 의원에게 보복할 목적으로 부하를 시켜 집에 화염병을 던져 방화케 한 혐의로 1961년 4월 구속됐다. 1963년 3월에는 쿠데타 음모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1심에서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이 전 회장이 1970년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일대 땅을 대거 매입한 것과 관련해 최근 황실 재산이던 국유지를 매매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가로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동생 부부인 이규광·장성희 씨가 비슷한 혐의로 검찰에 입건된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 부부는 1975년 9월 서울지검 동부지청에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고소·고발 사건이 아니라 검찰 인지 사건이었다. 경기도 성남시 부근의 국유지를 불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다고 접근해 그 대가로 몇천만 원을 챙겼다는 정보에 따른 수사였다. 이씨 부부는 청와대와 가깝다며 든든한 배경을 과시했다고 한다. 당시 이씨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장씨는 정식 기소돼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3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규동·규광 형제는 전 전 대통령의 후견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정보를 다룬 경험이 풍부한 처삼촌 이규광씨가 10·26 이후 전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 상당한 힘이 됐다는 얘기가 있다.

2001년 9월13일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 회장의 안장식에서 사위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딸 이순자 여사, 아들 이창석씨가 운구 행렬을 따르고 있다. ⓒ 연합뉴스
이순자씨 돈 있었으면 미용실 차렸겠나”

반면 경제적인 부분은 상황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전 전 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낸 측근 민정기씨는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전 전 대통령 가족은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재산이 많았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전 전 대통령 집안이 가난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10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10대 초반부터 생계와 학업을 병행했다. 소대장 근무 시절 연인이던 이순자씨와 헤어지려고 했던 이유가 맹장 수술을 받은 이씨를 병간호하면서 주스 한 병 살 돈을 구하기도 여의치 않은 형편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결혼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초급 장교 시절에는 박봉에 시달려야 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임지를 따라 여러 차례 생활 근거지를 옮겨 다녔다고 한다. 이씨는 미용사 자격을 따 미용실을 차리는가 하면, 편물(뜨개질)을 배워 낮 동안 부업을 해 살림에 보태기도 했다. 12·12 군사 반란 당시 특전사령부 보안반장으로 전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봐왔던 김충립 한반도 프로세스 포럼 회장은 기자에게 “전 전 대통령이 중령 때 이순자씨가 미용실을 한 것으로 아는데 아버지가 돈이 많았다면 그랬겠느냐”고 반문했다.

전 전 대통령이 권력의 핵심으로 부각되기 전 이순자씨는 남편의 육사 동기 모임 때 핀잔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지켜봤다는 한 군 출신 인사는 “머리 모양이나 화장, 옷차림 등을 갖고 수군대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많이 상해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규동 장군이 그렇게 재산이 많았다면 군 사회 내에서 소문이 다 났을 것”이라며 그가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는 주장에 대해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지적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보안사에는 장성들에 대한 동향 보고서를 요약한 옐로카드가 있었다고 한다. 수백 쪽에 달하는 관련 보고서를 노란 종이 한 장에 정리해 대통령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여기에 기재된 주요 항목 중 하나가 재산 내역이었다. 지나치게 부를 축적했다면 이를 통해 파악이 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 전 대통령은 권력을 잡은 후 정당 창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돈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육사 동기인 정호용 공수특전사령관에게 자금이 필요하다고 털어놨고, 실제 자금을 낼 수 있는 기업인과 가능한 금액을 적은 보고서가 올라갔다고 한다. 이와 별개로 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허화평 비서실장 등도 정당 창당을 위한 자금 마련에 동분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 집안이 재산을 축적했다면 전 전 대통령 집권 이후 특혜를 통해서라는 지적이 많다. 당시 대통령 처가의 위세는 대단했다. 평화농장을 경영하며 노후를 보내던 이 전 회장은 5공화국 출범 직후인 1981년 3월 대한노인회 5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에 앞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이규광씨는 1980년 5월12일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을 맡아 화려하게 부활했다.

대통령의 처가가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르자 각종 비리 의혹에 연루되기 시작했다. 이 전 회장은 명성그룹 사건으로 야당의 공격을 받았다. 당시 김철호 명성그룹 회장은 빚 300만원에 쫓겨 피신하던 신세에서 불과 몇 달 만에 재벌 위치에까지 올랐다. 이규광씨는 장영자·이철희 부부 어음 사기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이는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금융사기 사건인데, 장영자씨는 이규광씨의 처제다.

그 밖에도 제기된 의혹은 부지기수였다. 이는 전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직후인 1988년 7월 각 당에서 제출한 5공 비리 조사 대상 목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장인인 이 전 회장의 오산 평화농장에 대한 특혜 의혹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농장 진입로를 관광도로로 활용한다는 명분으로 경기도가 4.7㎞를 포장해주고, 군 예산으로 묘목 20만 그루를 기증하는가 하면, 서울시는 수의계약으로 잣나무 등을 6년간 7억7000만원어치나 사주었다. 처삼촌인 이규광씨는 신호등 제작업체의 실질적인 사주로 독점 납품 계약을 체결해 불필요한 신호등까지 설치해 폭리를 취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처남 이창석씨는 젊은 나이에 사업가로 변신해 포항제철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아 승승장구했고, 전 전 대통령 퇴임 후에는 모든 계열 기업을 처분해 재산을 은닉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전 전 대통령 집권 후 각종 비리 의혹 연루

주목되는 부분은 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친인척을 동원해 미국·호주 등 해외에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회사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재산을 유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특히 동서인 김상구씨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김씨가 호주 대사로 재직할 당시 전 전 대통령의 해외 재산 도피의 일환으로 호주 내 대규모 목장과 토지를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또 호주의 한 재벌그룹을 통해 맥주회사의 주식 1120만 달러를 취득한 것을 비롯해 호텔 체인업체, TV방송사, 카지노업체 등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재미교포로 미국 시민권자인 김씨는 5공 출범과 함께 귀국해 호주 대사를 거쳐 국회의원을 지냈다. 당시 검찰은 해외 의혹의 경우 검찰권이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88년 10월에 있은 국정감사에서도 이러한 의혹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16년 만에 부활된 국정감사인 데다가 ‘여소야대’ 정국이었다. 국회 행정위에서 이 전 회장의 평화농장 취득 경위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검찰은 이 전 회장의 경우도 특혜가 곧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사법 처리 대상에서 일단 제외시켰다고 한다.

당시 이 전 회장은 재산을 모으게 된 경위에 대해 “군 예편 때 퇴직금 200만원을 받아 집 한 채를 전세 얻고 나머지 절반으로 지금의 하얏트호텔 부근에 있던 군 사격장 땅을 사뒀다. 몇 년 후에 사격장이 폐쇄돼 땅값이 6~7배로 올라 이 돈으로 방배동·역삼동·연희동 등에 부동산을 사뒀다”고 해명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리와 특혜 의혹에 대해 “한마디로 근거가 없거나 억측이 낳은 유언비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툭하면 내 이름이 거론돼 노후에 큰 슬픔을 느낀다”고도 했다.

특히 최근 검찰로부터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유입됐을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경기도 오산의 평화농장에 대해 그는 “1970년쯤에 99만1735.537㎡(30만평) 규모의 농장을 조성했다. 사위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의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이 땅을 물려받은 아들 이창석씨가 ‘전두환 비자금’과 무관함을 강조하며 내놓은 근거이기도 하다.

이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정주교 변호사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1970년도에 누가 그만한 돈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전 전 대통령이 목장을 살 돈이 있었겠나. 그리고 이창석씨가 당시를 기억하고 있더라. 아버지가 땅을 사면 데려가서 보여줬다고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로 문제의 오산 땅이 ‘전두환 비자금’과 관련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장인에게 맡기고 추후 자녀들에게 증여할 때 이 땅으로 대신하도록 약속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전 대통령 측은 “장인이 집안 살림은 자신에게 맡기고 군무에만 전념하라면서 전 전 대통령 내외의 재산을 관리하고 증식시켜줬다”고 밝힌 바 있다. 이창석씨도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을 사실상 관리하고 분배해준 역할을 했다고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누나와 조카들에게 재산을 나눠준 것이다. 이제 관건은 이 돈이 전 전 대통령의 불법 재산으로 추징 대상이 되느냐 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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