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으름장 놔봐야 우리는 겁먹지 않아
  • 최현석│이집트 통신원 ()
  • 승인 2013.08.27 16: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부 압박하는 미국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불편한 시선

2011년 2월 필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초이, 어서 뉴스를 확인해봐. 무바라크가 사임했어.”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나다니, 엄청난 충격이었다. 무바라크 사임 여파는 사막을 넘어 리비아, 시리아 그리고 아랍 전체로 퍼져나갔다. 무바라크가 물러난 후 이집트 정세는 급격하게 더 불안정해졌다. 실업률은 무바라크 재임 시절보다 높아졌고 물가는 급등했다.

1년 뒤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집트는 대통령 선거를 치렀고 ‘무슬림형제단’ 출신 자유정의당 후보인 무함마드 무르시가 새 대통령이 됐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대통령 선거 조기 실시 운동과 하야 운동이 펼쳐졌고, 시위가 시작된 지 사흘 만에 무르시는 이집트 군부에 의해 축출됐다. 그리고 지금 이집트는 혼돈을 넘어 아비규환으로 치닫고 있다.

이집트 군부에 대해 많은 서방 국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독일과 영국은 이집트와의 무기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무슬림형제단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터키의 에르도안 총리는 쉴 새 없이 이집트 군부와 이집트 국민들에게 악담을 퍼부으며 이집트와의 무역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무슬림형제단 정권이 들어선 튀니지에서는 무르시 지지 운동이 펼쳐졌다. 이런 가운데 이집트 문제에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국가가 미국이다.

이집트와 미국은 한국과 미국보다 더 복잡하면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이집트 군부다. 대다수 국민이 군부에게 쿠데타를 요구하는 유례없는 일이 왜 벌어졌을까. 어떻게 이집트 군부는 국민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을까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미국 영화에 분노한 이집트 시위대가 카이로 주재 미국대사관 앞에서 성조기를 찢고 있다. ⓒEPA연합
‘오바마 빈라덴’ 전단 뿌려지는 타흐리르 광장

이집트 군부는 다른 국가와 조직 체계가 다르다. 전시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단지 명목상의 통수권자일 뿐, 모든 명령은 군부 최고위자인 원수가 하달한다. 전시 상황에서 대통령이 오판을 내릴 경우 원수는 대통령을 몰아낼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 그동안 대다수 군부는 대통령에게 충성해왔다. 2011년 탄타위가 무바라크에게 그랬고, 지금 압델 파타 엘 시시가 무르시에게 그랬듯이 충성은 하지만 복속되지는 않는다. 이처럼 군부의 독특한 위상은 많은 국민으로 하여금 군부가 정의의 사도이자 국민의 보호자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

8월6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당)은 이집트를 방문해 군부와 불편한 면담을 가졌고, 귀국해서는 이집트에 매년 제공해오던 군사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방문 기간 중 이집트 국방장관과 군부 원수를 겸하고 있는 압델 파타 엘 시시와 면담했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부통령도 함께했다. 면담 내내 무르시 대통령 즉각 석방, 무슬림형제단 간부 즉각 석방을 요구한 매케인에 화가 난 시시 장관이 테이블을 걷어차고 회의장을 나갔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시시는 기자회견에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무지에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다.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카이로 시민 파룩 씨는 미국의 이런 내정 간섭이 불쾌하다고 했다. 그는 “뭐가 이집트와 자기 나라에 도움이 되는지 알고 간섭을 해야지, 참수를 당하는 등 하루 만에 29명의 군인이 죽어나가는데 뭐가 군부 독재고 무르시 복귀는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파룩 씨는 지난 대선 때 무슬림형제단과 무르시를 지지했지만 지금은 정권 퇴출 시위에 나서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미국을 ‘승냥이’로 생각 

전통적으로 미국과 이집트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집트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미국의 원조를 많이 받는 국가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은 중동 민주화 구상 아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서 이집트의 정치적 개혁을 강력히 촉구했는데 이때 양국 관계가 경색된 적은 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두 나라 관계가 호전됐다. 이집트는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6월 중동 정책을 발표하는 장소로 카이로를 선택한 것에 고무되었다. 오바마 정부가 이집트를 아랍권의 주요 지도국으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했다. 부시 시절, 미국에 발길을 끊었던 무바라크는 2009년 8월 미국을 방문해 전임 정부 때 있었던 긴장을 해소하고 상호 신뢰를 회복했다.

대다수 이집트 국민은 이런 흐름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느끼는 ‘미국’은 ‘이익만 좇는 승냥이’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집트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다른 국가들이 대개 그렇듯 이집트 국민들도 외세의 참견을 무엇보다 싫어한다. 이번 유혈 진압에 대해 백악관이 우려를 표시하자 타흐리르 광장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오바마를 무슬림형제단을 지원하는 ‘오바마 빈라덴’으로 비꼰 사진들이 뿌려졌다.

이집트 국민들의 자존심은 그 누구보다 강하다. 카이로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는 오마르 씨는 “이라크 문제부터 리비아, 시리아까지 미국이 손대는 곳마다 문제가 생기고 있다. 미국은 자신들이 저질러놓은 문제를 수수방관하고만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집트 국민과 군부는 이라크처럼 멍청하지도 않고 리비아처럼 약하지도 않다. 만약 미국이 무슬림형제단 편을 들겠다면 이집트 국민은 무장을 하고 수에즈운하와 이스라엘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미국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사실 이집트 국민과 정부는 어떤 국가든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이 배고프고 힘들어도 ‘이웃 국가는 돕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말 가난했던 나세르 정부 시절에도 그랬고 무바라크 시절에도, 그리고 지금처럼 국가가 혼란한 상황에서도 이집트 국민들은 수단에 대한 원조를 중단하지 말라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결국 얼마 전 이집트 정부는 수단에 원조를 했다. 올해 들어 이집트와 수단은 에티오피아 나일강 댐 사업으로 인해 전례가 없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미국 정부에 대한 반대 시위가 있는 날도 “여러분! 우리는 미국 정부가 싫은 것이지 미국 국민들은 우리의 형제입니다”라는 구호가 심심치 않게 터져 나왔다.

이집트인들은 다른 유럽 국가들이 원조나 사업 중단을 선언해도 “국민들이 딱히 손해 볼 것도 없는데 왜 그 국가들을 싫어해야 하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유럽 국가와 미국은 다르다. 계속 원조를 중단한다고 윽박지르고 있는 미국의 협박이 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불신만 키우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이집트 국민과 군부는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6월30일 무르시 하야 시위가 시작된 날, 미국 정부는 ‘원조를 재고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미국의 발표가 나온 지 3시간 뒤, 이집트 가수와 영화배우 등 유명 인사들을 중심으로 국민적 모금 운동이 벌어져 순식간에 3000억원가량이 모였다. 이집트 국민들의 애국심이 미국에게 커다란 짐으로 등장한 순간이다.

미국 아니면 러시아와 중국도 있다

정치적으로 이집트는 미국 외에도 많은 우방국을 가지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이집트의 ‘빅브라더’인 러시아와 중국이다. 만약 미국이 이집트에게 등을 돌린다면 러시아와 중국은 이집트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려고 할 것이다. 이들 나라는 이집트 국민들에게 미국이 이집트에게 해준 그 이상도 해줄 수 있는 국가들로 평가되고 있다. 이 두 나라에게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미국을 견제하며 중동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최고의 전략적 요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이집트 국민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미국이 아니면 러시아와 중국도 있다’는 공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미국에 연연하지 않는다. 39년간 무슬림형제단원으로 살다 최근 반대편으로 돌아선 무스타파 새미 씨는 “39년이 지나서야 그들이 진정한 무슬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이 진정으로 아랍과 중동 평화를 원한다면 단지 거리에서 흘리는 피를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왜 군부가 나오게 되었는지, 왜 그들이 죽어가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집트를 두고 줄타기를 하는 것일까, 이집트 국민들이 미국을 두고 줄타기를 하는 것일까.

 

미국이 이집트를 못 버리는 이유 

이집트 국민들이 너무 잘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미국이 지금은 이집트 군부를 비판하고 있지만, 절대 버릴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이집트 군부와의 긴밀한 정보 공유가 필요해서다. 이집트는 중동을 급진적 이슬람 테러리즘에서 지켜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다. 1981년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된 후 취임한 무바라크는 재임 기간 동안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전쟁을 벌였는데 이는 미국이 무바라크의 독재를 암묵적으로 승인해준 이유이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나이반도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부족이 정부와 시민, 외국인에 대한 테러를 벌이고 있는데 이런 현실에서 미국이 이집트 군부와 결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에즈운하도 하나의 이유다. 수에즈운하는 단순한 운송 통로를 넘어 홍해 그리고 지중해 안보에 중요한 관문이다. 수에즈운하가 이집트 군부가 아닌 다른 세력에게 넘어갈 경우 미국의 중동 영향력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도 이집트가 필요하다. 여러 차례 중동 전쟁을 겪으며 아랍 세력과 이스라엘 사이의 골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 상황이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젊은 무슬림, 심지어는 아랍 기독교 신자들조차 이스라엘에 대해 잠재적 적개심을 갖고 있다. 아랍인들의 마음은 하마스나 헤즈볼라와 같은 팔레스타인 정치 세력에게 큰 지원군 구실을 하는 반면, 미국에게는 커다란 근심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 같은 존재다. 특히 무슬림형제단은 하마스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비록 군부가 무르시를 축출했지만 군부에 대한 지지마저 철회하기 어려운 정세다. 여전히 아랍권 컨트롤타워로서 이집트 군부의 역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