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충성
  • 윤길주 편집국장 ()
  • 승인 2013.09.04 09: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저널>(8월27일~9월3일자)에 <위험한 충성>이란 책이 소개됐기에 짬을 내 읽어봤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에릭 펠턴이 쓴 책으로 ‘충성’의 여러 속성을 인문학적으로 파헤친 게 흥미로웠습니다. “히틀러는 충성의 열렬한 옹호자였으며 모든 사람에게 충성 맹세를 요구했다. 그의 친위대 SS의 벨트 버클에는 ‘나의 명예는 충성’이라는 슬로건이 새겨져 있었다.” 저자가 타락한 충성의 예로 든 겁니다.

친구인 카이사르의 등에 칼을 꽂은 브루투스도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자유’와 ‘국가’ 같은 고상한 가치를 들먹입니다. “내가 그를 죽인 것은 카이사르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로마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보면서 두 인물을 떠올렸습니다. 원세훈과 남재준. 한 사람은 전직 국가정보원장이고, 또 다른 이는 현직 국정원장입니다. 원세훈. 검찰은 그가 국정원 대선 개입과 관련해 무차별적으로 ‘종북 딱지’를 붙이는 등 신종 매카시즘 행태를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재임 당시 부서장 회의 내용을 보면 그의 불순한 의도가 읽힙니다. “국민의 의사가 많이 반영된 게 여당이다. 많은 국민이 원하는 쪽으로 일하는 게 맞다” “부서장은 이 정권하고밖에 더 하겠어요? 이 정권 빼고 길게 할 것 같아요?”(2009년 11월20일) 국정원 간부들에게 노골적으로 정권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종북주의자를 색출하는 것은 국정원의 당연한 업무라고 주장합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화록 공개를 독자적으로 결정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국가 정보기관 총책임자가 아니라 조직의 이득을 저울질하는 정치인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둘의 행동은 ‘타락한 충성’의 단면입니다. 국가에 대한 헌신보다는 자신과 조직, 정권을 위한 ‘위험한 충성’입니다.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조지 W. 부시처럼 부하들의 충성에 집착하는 대통령의 업무 수행 능력은 매우 나쁘다. 그런 대통령들은 고립될 뿐 아니라 피해망상에 젖어 조폭과 같은 패거리의 관점에서 정치를 바라보고 결국 권력을 남용하게 된다.” 정치 칼럼니스트 제이콥 와이즈버그는 권력의 탈선을 예리하게 짚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친박이니, 친노니 하는 패거리 정치가 판치고 있습니다. 보스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고 거기서 엇박자를 내는 사람은 가차 없이 내쳐집니다. 그렇다 보니 딸랑거리는 자들이 우글거립니다. 소신을 말하는 진정한 충신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듭니다. 눈치 살살 보며 윗사람 말 받아 적기 바쁜 졸장부라면 그 무거운 관직을 내려놓고 속 편히 사는 게 낫습니다.

<대통령과 권력>을 쓴 리처드 뉴스타트는 리더가 갖춰야 할 최고 자산은 ‘설득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리더가 자연스럽게 충성심을 이끌어냈다는 것은, 곧 의사 결정을 따르도록 부하들을 설득했다는 증거라는 겁니다. 이참에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충성’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봤으면 합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