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클릭’ 역사 교과서 후폭풍 거세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9.1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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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발행본 검정 통과 후 진보 쪽에서 강력 반발

교학사가 발행한 한국사 교과서가 8월30일 검정을 통과했다. 이 교과서는 지난 5월 보수 성향의 학술단체인 한국현대사학회 소속 회원들이 주도해 집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 편향’ 논란을 낳은 바 있다. 당시 검정 중이던 교과서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하면서 그간 베일에 가려져 있던 내용이 알려졌다.

후폭풍이 거세다. 학계와 시민사회가 반발하고 있다. 당초 우려한 대로 편향된 서술이 많다는 것이다. 문제의 교과서를 집필한 당사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교육부에서 제시한 집필 기준을 충실하게 반영했기에 편향된 서술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의 논란은 오히려 기존의 교과서가 좌 편향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과서 내용이 공개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역사 교과서의 편향성 문제를 두고 좌우가 ‘치킨 게임’(서로 마주보고 돌진하다 먼저 피하는 쪽이 패배하는 게임) 양상으로 치닫는다. 양측의 입장이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9월2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위원들의 기자회견에서 유기홍 민주당 의원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틀린 것’은 바로잡고 ‘다른 것’은 인정했다

원론부터 짚어보자. 현행 역사 교과서 검인정 제도는 서술상의 편향과 왜곡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정부 기관인 교육부가 집필 기준을 제시한다.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는 이들은 모두 그 기준에 따라야 한다. 집필을 끝낸 교과서가 검정 심의를 신청한다. 그러면 외부에서 위촉·선정된 검정위원들이 교과서를 심의한다.

현재 논란의 중심에 선 교학사 교과서는 검정 심의를 통과했다. 당초 시스템을 설계한 취지대로라면, 심의를 통과했기 때문에 역사 서술의 공정성을 확보한 것으로 인정받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 검정 절차를 거친 교과서가 편향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이들이 있다. 교과서의 내용을 확인했던 인물들이다. 심의를 진행했던 당사자인 검정위원이다. 지난 5월 이후 지속된 ‘뉴라이트 교과서’ 논란의 한가운데서 이들은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을 통과시켰다.

한국사 교과서 검정심의회는 15명의 현직 교수 및 연구자, 일선 고교 교사로 구성됐다. 7명이 검정위원, 8명이 연구위원이다. 연구위원이 교과서의 내용을 검토하고 수정 권고 사항을 작성하면, 검정위원이 최종적으로 평가해 검정 통과 여부를 결정했다. 검정 심의 통과를 결정하는 최종 권한은 7명의 검정위원에게 있다.

<시사저널>은 검정위원들과 다방면으로 접촉했다. 이들은 언론 대응에 지극히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인터뷰를 정중히 사양하는 위원들도 상당수였다. 검정 과정에 대해 외부에 공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자의 질문이 예민한 부분을 건드릴수록 위원들의 말수는 줄어들었다. 결국 그들이 제한적으로나마 드러낸 정보들을 종합해 검정 과정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검정위원들은 교과서가 (집필) 기준을 충족시켰는지 아닌지를 본다. 서술 철학이나 사관을 검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정위원인 ㄱ교수의 말이다. 교과서 검정의 제1원칙은 당초 교육부가 제시한 집필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라는 것이다.

복수의 검정위원은 내부 검토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념상으로도 약간의 대립이 있었으나, 대화를 통해 조정하지 못할 정도로 첨예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기자가 최종적으로 도출된 검정 심의 결과에 대한 의견을 물었을 때 이의를 제기하는 검정위원은 없었다. 이상을 종합해서 볼 때, 검정위원회의 이념적 구성이나 내부 논의 과정에서 결과를 왜곡(일부 검정위원의 견해 무시·묵살 등)할 만한 변수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만 교학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서술에 대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문제 제기가 있었던 듯하다. 검정위원인 ㄴ교사는 “근현대사 부분에서 지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우 클릭’으로 가니까 검정위원들이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고 수정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ㄷ교사도 “안에서 얘기는 많았다. 교학사 교과서가 제일 지적을 많이 받고 수정도 많이 했다. 하지만 다양한 역사 서술을 수용하자는 검정 제도의 취지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사 교과서 검정 심의는 교육부가 제시한 집필 기준을 충족했는지가 핵심이었다. 교학사 교과서가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지나치게 ‘우 클릭’되었다는 내부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교과서 검인정 제도의 취지를 감안해 사실관계가 어긋난 부분을 바로잡는 데 주력했다.

검정위원들의 입장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틀린 것’은 바로잡고 ‘다른 것’은 인정했다. 한 검정위원은 “최종 검정 통과 여부는 각 검정위원이 매긴 점수를 합산해서 결정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커트라인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큰 방향’보다는 ‘디테일’이 논란

검정위원들의 말을 ‘검정’해야 했다. 9월4일 국사편찬위원회를 방문했다. 검정을 통과한 역사 교과서 견본을 직접 열람했다. 현재 문제가 되는 교학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서술을 교육부의 집필 기준, 그리고 다른 교과서의 서술과 비교해봤다.

뉴라이트 역사 서술에 대해 당초 학계에서 우려했던 부분이 있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바탕으로 일제의 식민 지배를 옹호하는 것,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독재를 미화하는 것 등이 핵심이다.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들이다.

실제로 열어본 교학사 교과서는 대부분 집필 기준을 따르고 있었다. 교과서 서술의 큰 방향을 놓고 보면 그렇다. 일제의 식민 지배 과정에서 나타난 수탈상을 자세히 기술했다. 독재 정권이 민주주의를 유린한 내용에 대해서도 왜곡하지 않고 서술했다. “기본적인 검정 기준을 충족했다”는 검정위원회의 입장은 타당해 보인다. 그럼에도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반발 기류는 상당하다. 왜일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우선 검정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발견되지 못한 ‘사실관계 오류’가 지적된다. 교학사 교과서는 1937년부터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이 1944년 ‘여자정신근로령’이 내려지며 시작된 것으로 서술했다. 위안부 문제를 축소해서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서는 관련 내용을 집필한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가 오류를 인정했다.

그러나 ‘디테일’은 교묘할수록 치명적이다. 실제로 확인한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선 명백히 드러나는 오류의 문제보다, 다른 교과서와 비교할 때 애매한 서술이나 의도적으로 확대·축소된 내용들이 더욱 눈길을 끈다.

현재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5·16 군사정변 관련 대목을 보자. 처음 서술이 검정위원회에서 ‘서술 내용 재검토’ 권고를 받아 수정을 끝낸 후의 내용이다. ‘5·16 군사정변은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였다. 하지만 반공과 함께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하였다. 대통령 윤보선은 쿠데타를 인정하였다. 육사 생도도 지지 시위를 하였다. 미국은 곧바로 정권을 인정하였다.’ ‘하지만’이라는 접속사를 제외하면 사실들의 나열로 구성됐다. 그러나 이 서술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행간에서 쿠데타의 불가피성을 암시하려는 의도가 읽힌다고 주장한다.

교과서에서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등재된 김성수에 대해 ‘김성수의 광복 직전 동향’이라는 꼭지를 할애한다. 여기서는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 ‘논란이 있다’고 처리하는 등 사실관계를 애매하게 드러내고 있다. 검정위원회로부터 수정 권고를 받기 전까지는 김성수의 이름 앞에 ‘민족주의자’라는 문구가 있었다. 친일 인사 김성수를 미화하려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흥미로운 것은 검정위원회의 대응이다. ‘민족주의자’라는 문구에 대해서는 삭제를 권고했지만 내용 자체의 수정이나 삭제를 권고하지는 않았다. 김성수가 민족주의자라는 것을 ‘틀린 것’으로 봤다면, 친일 행적에 논란이 있다는 서술은 ‘다른 것’으로 규정한 셈이다.

교과서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미국에 있던 이승만의 활동이 유독 확대·강조돼 있다. 이승만이 임시정부에 대해 미국 정부 승인을 얻으려 노력했던 것에 한 페이지 분량을 할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승만의 단파 방송 내용을 인용하며 이를 통해 ‘광복 후 국민적 영웅이 될 수 있었다’며 그를 영웅시했다.

반면 우파 사관에 들어맞지 않는 내용은 축소하거나 누락했다. 한 예로 제주 4·3 사건은 당초 심사본에서 ‘남로당 주도로 총선거에 반대하는 폭동을 일으켜 경찰서와 공공기관을 습격하였다. 이때 많은 경찰과 우익 인사들이 살해당하였다’고 적었다. 군·경의 진압 과정에서 수만 여 무고한 양민이 학살된 사실은 누락했다.

검정위원회가 수정을 권고하자 ‘폭동’을 ‘봉기’로 바꾸고, 말미에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는 무고한 양민의 희생도 초래되었다’고 짧게 삽입했다. 그러나 교과서의 대표 저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9월6일 “(4·3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하기 위해 남로당이 벌인 폭동”이라고 재차 발언했다.

9월4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090차 정기 수요집회’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가 교학사 교과서를 비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구성된 ‘해석’ 문제 삼기 어려웠다”

‘역사적 진실은 발견되기보다는 구성된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의 말이다. 임 교수는 동아시아의 역사 논쟁을 언급하면서 이것이 ‘진실과 거짓’ 게임이기보다는 인식론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말은 현재 한국 근현대사를 둘러싼 교과서 서술 논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역사적 사실들을 취사선택해 특정한 해석을 구성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이다.

검정위원 ㄹ교수는 최근 논란에 대해 “사실관계보다는 해석의 문제와 관련된다. 해석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검정 과정에서 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웠다”고 말했다. 사실 논쟁이 아닌 해석 논쟁이 될 때, 무엇이 진실인지를 합의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상식으로 굳어졌던 역사관에 반발하는 또 다른 ‘해석’이 등장했다. ‘사실’을 기준으로 교과서를 검정해야 했던 검정위원들은 이를 민간이 판단해야 할 몫으로 남겨뒀다. 교학사 교과서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면 “일선에서 채택을 하지 않으면 된다”(ㄱ교수)는 것이다. 이제 공은 교육 현장으로 넘어왔다. 학계와 일선 학교, 시민사회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거기 담긴 ‘해석’의 생명력을 결정할 것이다. 지금 역사 교과서 논란은 우리 사회의 정치 갈등을 압축해 드러내는 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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