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체 영향력 / '절대 권력’ 박근혜 부동의 1위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09.16 13:49
  • 호수 12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헌법에 의해 ‘행정 수반’인 동시에 국가 대표기관으로서의 ‘국가원수’의 지위를 갖는다. 일찍이 독일 태생 미국의 정치학자 뢰벤슈타인이 주창했던 ‘신대통령제’(대통령에 의한 사실상의 권력 독점에 다른 국가기관이 대항하거나 견제할 수 없는 정부 형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갈 만큼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입법부·사법부와 동등한 지위를 갖는 ‘3권 분립’ 원칙은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얘기일 뿐이다. 그나마 대한민국은 1987년 개헌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는 대통령의 임기를 5년 단임으로 못 박았다. 따라서 대통령의 절대적 권한에 따른 영향력도 5년을 주기로 일정한 패턴을 반복한다. 집권 첫해 절정에 올랐던 영향력이 후반기로 갈수록 점차 하향 곡선을 그리는 것이다. 이는 <시사저널>이 1989년 창간 이후 매년 실시해오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지목률이다. 역대 조사를 살펴보면, 대개 1위(대통령)의 경우 지목률은 평균 60~70%대를 유지해왔다. 즉, 1000명의 조사 대상 가운데 700명 안팎이 현직 대통령을 꼽았다는 얘기다. 지목률은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즉 4년 차, 5년 차가 되면서 점점 떨어진다. 이른바 ‘레임덕’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집권 첫해(2003년) 70.9%로 시작했으나, 마지막 해(2007년)에는 57.3%로 밀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첫해(2008년) 72.7%로 시작했다가 마지막 해인 지난해에는 26.1%로 떨어지며 현직 대통령임에도 3위에 그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박 대통령 집권 첫해 84.2%, 순조로운 출발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첫해인 올해 ‘201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는 어떨까. 물론 전체 영향력 1위 주인공은 박 대통령이다. 지목률은 84.2%로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두 전직 대통령에 비해서는 첫해에 약 10%포인트 이상 높게 출발한 셈이다. 지난 2월 말 취임 전후의 잇단 인사 실패와 ‘윤창중 사태’ 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국민들의 기대치를 반영하는 결과다. 일반 국민 여론조사 역시 최근 57.4%의 높은 국정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리서치뷰, 9월9일 조사). 최근 ‘이석기 사태’ 여파로 일부 진보 정치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과 우려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지금의 높은 지지율과 영향력을 임기 말까지 유지할 것으로 보긴 어렵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본지 조사에서 임기 첫해(1993년)에 무려 96.2%라는 경이적인 지목률을 나타냈지만, 임기 마지막 해(1997년)에는 46.9%로 간신히 1위 자리를 지킨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조사에서 여당 대선 후보 신분으로 현직 대통령을 밀어내고 처음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뒤, 올해까지 2년 연속 1위 자리에 올랐다. 집권 2년 차인 내년의 영향력 지목률에서 어떤 변화를 보일지 벌써부터 주목된다. 전문가 집단별로 박 대통령의 지목률을 살펴보면 언론인(92.0%)과 교수(91.0%) 그룹에서 높았고, 정치인(78.0%)과 문화예술인(76.0%) 그룹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임기 없는 권력’으로 통하는 이건희 삼성 회장은 2위로 복귀했다. 지목률은 23.7%로 나타났다. 지난 2004년 처음 2위에 오른 이래 2011년까지,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던 2009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현직 대통령에 이어 2위 자리를 지켰다. 지난해에는 대선 열풍에 밀려 4위(18.4%)로 주춤했으나 올해 2위 자리를 되찾았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건강 이상설에도 불구하고 현직 대통령을 제외한 최고의 권력자라는 점을 재확인시킨 것이다. 금융인(39.0%)과 언론인(32.0%)·사회단체인(30.0%) 그룹에서 지목률이 비교적 높게 나왔다.

지난해 2위로 깜짝 돌풍을 일으켰던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올해도 3위 자리에 오르며 영향력이 일회성이 아님을 입증했다. 그러나 지목률(11.3%)은 대선 열풍이 불었던 지난해(46.0%)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안 의원 측은 전문가들에 의해 ‘가장 잠재력 있는 차기 대권 주자’ 1위로 자신이 꼽힌 것에 대해 더 고무적인 분위기다. 역대 조사 결과를 보면 항상 여야의 유력 대권 주자로 꼽히는 ‘잠룡’들이 상위권을 차지해왔다. 이른바 ‘미래 권력’이 한국을 움직이는 데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최근 5년간(2008~12년)의 조사 결과만 봐도 이는 잘 드러난다.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줄곧 2~3위를 오가다가 지난해에는 아예 조기에 1위를 꿰찼고, 야권에서는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2008~10년)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2011년)가 연이어 4~5위 자리를 지키다 지난해에는 안 의원과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2위와 5위에 등장했다. 문 의원은 올해도 역시 5위 자리를 지켰다. 그는 최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과 ‘이석기 사태’에 따른 야권연대 공조 책임 등으로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올해 지목률은 4.8%로 지난해(13.8%)에 비해 많이 떨어졌지만, 어쨌든 그는 여전히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대권 도전설’ 나도는 반기문 총장 수직 상승 눈길

그런 면에서 주목되는 두 명의 인물이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반 총장은 올해 영향력 순위에서 가장 두드러진 상승세를 나타냈다. 7.8%의 지목률로 4위에 올랐다. 지난해 공동 9위(2.9%)에서 무려 5계단이나 수직 상승했다. 지난 2008년 4위(6.4%)로 한 차례 정점을 찍은 이후 6~10위권에 머물렀으나 올해 재도약했다. 특히 반 총장이 주목되는 것은 최근 그를 둘러싸고 차기 대권 도전설이 물밑에서 거론된다는 점 때문이다. 반 총장의 임기는 2016년 12월로 끝난다. 시기도 적절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그는 박 대통령의 환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고향인 충청을 방문해 지역 모임에 참석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 자리에서도 대권 도전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많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반 총장이 딱 부러지게 부인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박원순 시장 역시 지난해 반 총장과 더불어 공동 9위(2.9%)였다가 올해에는 7위(2.6%)로 두 계단 상승했다. 본인은 차기 대권 도전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야권에서는 여전히 그를 유력한 차기 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번 조사 중 ‘차기 대권 잠재력’을 묻는 질문에서도 박 시장은 안 의원, 문 의원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특히 ‘가장 영향력 있는 NGO 지도자’에서 해마다 1위에 뽑혔던 박 시장은 올해 그 자리를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에게 넘겨주면서 이제는 NGO 인사에서 정치인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3.6%의 지목률로 6위에 오른 것은 일종의 야당 대표 프리미엄이다. 해마다 제1야당 대표는 상위권에 랭크됐다. 지난 5년 이명박 정권 때만 해도 정세균·손학규 등 민주당 대표는 4~5위를 유지했다. 노무현 정권 때의 최병렬·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2~3위의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김 대표의 6위는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최근 민주당의 위기와 고민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의 투수 류현진과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가 공동 8위(1.9%)에 오른 것도 눈에 띈다. 올해 메이저리그 무대에 뛰어들어 10승을 훌쩍 넘긴 류현진은 ‘가장 영향력 있는 스포츠 스타’ 부문에서도 1위에 올라 올해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이에 비해 김연아는 2009년 처음 10위(2.2%)에 오른 이후 2010년 7위(3.9%)에 이어, 2011년에는 5위(8.3%)까지 치고 올라간 바 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피겨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후광 효과였다. 은퇴설이 나돌았던 지난해에는 공동 15위(1.4%)로 주춤했으나 최근 선수로 복귀하면서 다시 10위권 내에 진입했다. 역대 스포츠 스타 가운데 전체 영향력 10위 안에 진입한 이는 1997년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박찬호 투수(9위, 4.6%)가 처음이다. 이후 김연아에 이어 2010년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8위, 3.7%)도 이름을 올렸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공동 8위로 10위권 내에 재진입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2004년 8위(4.2%)로 처음 등장한 이후 2007년에는 6위(3.1%)까지 상승했으나 2009년부터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4년 만에 다시 10위 안에 재진입한 것이다.

박정희·노무현·김대중·김구·김수환 등 고인들 ‘동반 하락’

연예 스타 가운데는 아직 누구도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 없었다. 월드 스타로 부각되며 ‘코리아’의 위상을 알릴 기회가 스포츠에 비해 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K팝’ 붐과 한국 영화의 세계 시장 진출 등으로 10위권 밖에서 여러 후보가 계속 꿈틀거렸다. 올해 드디어 싸이가 그 가능성에 가장 근접했다. 지난해 <강남스타일>로 세계 대중음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는 올해 전체 영향력 순위에서 11위(1.6%)에 올랐다.

최근 조사에서 두드러진 또 하나의 경향은 고인이 된 인물들이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만 해도 박정희·노무현·김대중 세 전직 대통령은 나란히 6~8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 존재감을 과시했다. 특히 주목되는 인물은 박 대통령의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올해 그 순위는 12위(1.5%)로 많이 하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공동 14위, 1.2%)과 김대중 전 대통령(공동 16위, 1.1%) 역시 동반 하락했다. 11~20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던 김구 선생과 김수환 추기경 역시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10위권 밖에서 주목되는 인물로는 당·정·청에서 박근혜정부를 떠받치는 핵심 요직에 있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13위, 1.3%)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공동 14위, 1.2%), 정홍원 국무총리(공동 16위, 1.1%), 남재준 국정원장(20위, 1.0%) 등이 있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공동 1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입법부 수장으로서는 순위가 다소 낮은 편이다. 사법부 수장인 양승태 대법원장은 공동 30위(0.4%)에 머물렀다.

 최근 국가 내란 음모 혐의로 정국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공동 16위에 오른 것도 이채롭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여당의 숨은 실세로 일컬어지는 김무성 의원(21위, 0.9%)과 ‘혼외 아들’ 보도와 관련해 조선일보와 싸우고 있는 채동욱 검찰총장(22위, 0.7%),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김정은 북한 조선로동당 제1비서(이하 공동 23위, 0.6%) 등의 이름도 20위권 밖에서 눈에 띈다.  


새누리당의 전신은 한나라당이다.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 혹은 세력’ 조사에서 한나라당은 2002년 처음 1위에 올랐다. 물론 그 전에도 1위 몫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이거나, 여야를 통칭하는 의미의 ‘정치권’이었기에 사실상 한나라당은 줄곧 1위 자리를 지켜온 셈이다. 2002년 당시 한나라당은 야당이었음에도 여당인 민주당을 압도했다. 물론 원내 1당도 한나라당이었다. 야당으로서 한나라당의 위세는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권 때에도 이어진다. ‘탄핵 역풍’이 불었던 2004~05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1위 자리를 지켰다. 그러다가 지난해 대선 정국에서 새누리당은 잠시 언론계(17.8%)에 1위 자리를 내주고 2위(16.7%)로 내려갔다.

집권 여당 새누리당은 올해 다시 1위를 탈환했다. 지목률은 31.6%로 무려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재계 부동의 1위 삼성그룹도 동반 상승했다. 26.7%로 2위였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4위로 체면 유지는 했으나 지목률은 10.5%에 그쳤다. 지난해 1위였던 언론계는 올해 5위(7.4%)로 밀려났다.

양대 권력 사정기관인 검찰과 국정원이 나란히 공동 6위에 오른 점이 눈길을 끈다. 최근의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와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 보도 논란으로 정면충돌 양상을 빚고 있는 두 권력기관의 힘겨루기가 오버랩된다.

새누리당을 비롯해 국회(3위, 13.4%), 민주당, 정당(공동 8위, 5.1%), 정치권(10위, 5.0%) 등 정치 집단 및 세력이 역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삼성그룹, 대기업(공동 8위, 5.1%), 경제계(11위, 3.9%), 전경련(공동 12위, 3.8%), 범현대가(家) 그룹(14위, 3.6%) 등 재계 집단 및 세력이 그 뒤를 잇는다.

이에 비해 민주노총(17위, 2.3%), 국민(22위, 1.3%), 한국노총(공동 25위, 1.0%) 등 시민단체 세력은 영향력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