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칼끝 무뎌져선 안 돼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9.16 14:47
  • 호수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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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일가 남은 추징금 1672억 납부 발표…끝까지 추적해 다 받아내야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사과를 받았는데도 씁쓸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문제가 해결됐다고 통쾌해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여전히 머릿속에 맴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미납한 추징금 1672억원을 납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지켜본 국민 상당수가 이러한 찜찜함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다.

<시사저널>은 그동안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을 끈질기게 추적 보도했다. 다른 언론에서 시도하지 못하던 전두환 일가의 재산 규모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한편, 비자금이 유입됐을 것으로 의심되는 재산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했다. 검찰에도 좀 더 철저하게 추징금 환수에 나설 것을 여러 차례 주문했다.

결국 전 전 대통령 측이 머리를 숙였다. 1997년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지 16년 만이다. 장남 재국씨는 9월10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추징금 완납 계획을 밝혔다. 재국씨는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가족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9월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미납 추징금 1672억원을 납부하겠다고 밝힌 후 머리를 숙이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항의’는 직접 하더니 ‘사죄’는 아들이 대신

하지만 재국씨의 이날 발표를 전 전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로 봐야 할지는 의문이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해 보인다. 우선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가 아들을 앞세운 채 뒷전에 숨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995년 겨울 이른바 ‘골목 성명’을 통해 검찰의 소환 요구에 “협조하지 않겠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던 전 전 대통령이 이번 기자회견에는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항의’는 직접 하더니 ‘사죄’는 아들이 대신한 셈이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도 되짚어볼 대목이다. 재국씨를 통해 발표된 대국민 사과문을 살펴보면 ‘추징금 환수 문제’와 관련해서만 사죄했다. 12·12 쿠데타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전두환 군사 정권이 자행한 인권 탄압은 물론 부정부패에 대한 반성도 마찬가지다. 단지 추징금 문제로 걱정거리를 안겨줘 죄송하다는 식이다.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혀 해결이 늦어졌다는 변명까지 달았다.

전두환 일가가 추징금 납부를 선언한 배경에는 검찰의 수사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수사 대상이 자녀들에게로 확대되자 일단 이 상황을 모면하고 보자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국민 여론이 ‘추징금 전액 환수’ 쪽으로 급격히 쏠린 데 대한 부담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론을 등에 업은 검찰의 압박에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던 전 전 대통령이 ‘백기’를 든 셈인데, 혹여나 안 내도 될 돈을 마지못해 내놓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된다. 납부 재산으로 경남 합천군 선산을 포함시킨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추징금 문제에 대한 부정적인 국민 정서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전 전 대통령 일가가 납부하기로 한 재산만으로 1672억원에 이르는 미납 추징금을 모두 환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검찰이 이미 압류했거나 압류를 고려하던 재산이 대부분이다. 가족별로 나눠보면 전두환·이순자 부부 90억원, 재국씨 558억원, 차남 재용씨 560억원, 장녀 효선씨 20억원, 삼남 재만씨 200억원, 재만씨 장인인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 275억원으로 모두 합치면 1703억원이다.

계산상으로는 미납 추징금을 내고도 몇십억 원이 남는다. 하지만 이들 재산 대부분은 현금성 자산이 아니다. 덩치가 큰 재산은 부동산이다. 어떤 형태가 되든 매각 절차를 통해 현금화해야 국고에 귀속시킬 수 있다. 검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압류한 재산은 공매 처분하고, 압류하지 않은 재산은 TF가 위탁받아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보니 해당 부동산 역시 제값을 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특히 공매는 감정가의 절반까지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부동산 매매 시 내야 할 세금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 이에 따라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적은 액수의 금액이 환수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결국 부족한 만큼 추가로 추징에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불법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 계속돼야

전 전 대통령은 2003년 4월 재산 명시 심리 재판에서 ‘측근과 자식들이 추징금은 왜 안 내주나’라는 질문에 “그 사람들도 겨우 생활하는 정도라 추징금 낼 돈은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 추징 시효를 늘리고 추징 대상을 확대한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이 국회를 통과해 검찰이 전면 수사에 들어가자 없다던 재산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 납부하겠다고 밝힌 재산은 이들이 지닌 재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국씨의 재산은 1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설립 당시부터 공격적인 경영으로 출판업계의 ‘큰손’이 된 시공사를 비롯한 회사 재산은 납부 대상에서 빠졌다. 시공사는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통로로 의심받아왔다. 납부하겠다고 밝힌 서울 서초동 시공사 사옥은 재국씨 개인 명의로 돼 있다.

재용씨도 이미 압류된 경기 오산시 땅과 서울 이태원 빌라 그리고 형과 공동 지분을 갖고 있는 시공사 사옥만 납부 목록에 올렸다. 처가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온 해외 재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재만씨도 아버지 유산으로 의심받아온 서울 한남동 빌딩 이외에는 부인 이윤혜씨가 얼마 전 명의를 이전받은 서울 연희동 사저 별채뿐이다. 재만씨 실소유 의혹을 받아온 1000억원대의 미국 캘리포니아 와이너리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법원이 16년 전에 확정한 추징금을 액면가만 받고 끝내는 데 대한 문제 제기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국세나 과태료의 경우 납부하지 않으면 가산금이 붙지만 추징금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처음에 확정된 금액만 내면 된다.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민사소송의 법정 이자인 연 5%만 적용해도 두 배로 불어난다. 그 돈으로 부동산 매매를 하거나 사업에 활용해 훨씬 더 큰 이익을 남겼을 수도 있다.

야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에서도 “비자금으로 불린 재산은 독의 과실이므로 몰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추징금에 대한 16년간의 이자도 반드시 추징해야 한다” 등 이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서 ‘전두환 추징법’을 심의할 때도 추징금 납부가 지연되는 경우 이자를 붙이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에 대한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시효 연장 부분이 중점적으로 논의되면서 관련 조항이 뒤로 밀려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추징금을 내지 않으면 노역장에 유치시키는 방안도 추징금을 강제하는 방법 중 하나로 거론된다. 벌금의 경우 납부하지 않으면 노역형에 처해진다. 이와 관련한 법안도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추징금 납부가 향후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지 여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검찰에서는 원칙대로 수사한다는 입장이지만 수사를 시작한 계기가 추징금 환수였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하지만 추징금과 불법행위는 별개 사안으로 편법 증여와 역외 탈세 등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검찰의 칼끝이 무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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