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리더 100] 조국·나승철 함께 날았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10.2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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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1위 올라…“법조계 차세대 리더 없다” 답변 절반 육박

‘차세대 리더’ 법조 분야에서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나승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이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정치인에서 방송인으로 변신한 강용석 넥스트로 대표변호사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염형국 변호사는 3, 4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상위권자의 지목률조차 한 자릿수를 넘지 못했고, ‘없다’는 답변이 절반에 가까운 45%를 차지했다. 보수적인 법조계 풍토상 특정 인물을 차세대 리더로 지목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었겠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법조계의 차세대 인재 풀이 다른 분야에 비해 매우 협소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법조계 차세대 리더의 ‘단골손님’인 조국 교수는 올해 마침내 1위에 올랐다. 조 교수의 영향력은 비단 법조계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에 가교 역할을 자임한 이도 조 교수였다. 국정원 대선·정치 개입 사건이 터졌을 때는 서울대 교수 128명과 함께 국정원 규탄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 시사저널 유장훈, ⓒ 뉴스뱅크이미지
조 교수가 진보 진영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면서 그를 향한 정치권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19대 총선과 서울시교육감 재선거 당시, 조 교수는 야권이 영입해야 할 후보 1순위로 지목됐다. 조 교수가 출마 요청을 고사하고는 있지만, 내년에 있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강력한 야권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 중이다.

30대 나승철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돌풍’

지난 1월 제92대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에 선출된 나승철 변호사는 경직된 법조계에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전국 지방변호사회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수장에 30대 변호사가 선출된 것은 나 회장이 처음이다. 2009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4년여 만에 9000여 명의 변호사를 대표하게 됐다. 나 회장을 얘기할 때 ‘돌풍’이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 이유다. ‘개혁’ 역시 그를 대표하는 수식어다. 나 회장은 지난해 10월 법조 경력 10년 미만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청년변호사협회’를 만들어, 임신한 여성 변호사에게 부당하게 휴직을 통보한 로펌 대표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나 회장은 임기 2년 동안 ‘사법시험 존치’ ‘변호사업계의 근로기준법 준수’ ‘서울지방변호사회 회계 투명성 제고’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방송인’ 강용석, 공익 변호사 염형국 3, 4위

강용석 변호사는 방송의 덕을 톡톡히 봤다. 18대 국회의원 시절 강 변호사는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출당 조치를 당했고, 지난해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했다. 19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서울 마포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지금은 정치 방학 중”이라고 말하며 여전히 정치에 뜻을 품고 있는 강 변호사가 재기를 위한 발판으로 선택한 것이 방송이다. 종편과 케이블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인 그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엉뚱한 매력’으로 의원 시절 만들어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색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염형국 변호사는 공익 변호사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염 변호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창립 멤버로 10년째 공익 전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공감은 지난 2004년 아름다운재단 내 공익 변호사 그룹으로 출발한 후, 지난해 12월 공익인권법재단으로 독립해 나왔다. 공감은 장애인·이주민·난민·여성·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익 소송 기획, 법제 개선 활동, 법률 교육 및 법률 매뉴얼 제작, 연구·조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비영리 단체이기 때문에 변호사의 임금은 기부금으로 충당한다. 2004년 40여 명에 불과했던 후원자는 현재 1100명을 넘어설 정도로 늘어났다. 사법연수원 시절, 박원순 당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의 강의를 듣고 공익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는 염 변호사는 올해 제정된 제1회 변호사공익대상 개인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낮은 곳에 임하는 용기로 소외된 희망을 되살린다’라는 공감의 구호처럼 염 변호사는 지금도 공익과 인권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최영익 넥서스 대표변호사가 25%의 지목률로 법조계 전문가들이 꼽은 가장 만나고 싶은 인물 1위에 올랐다. 최 변호사는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10년 가까이 재직한 뒤 법무법인 우일 대표변호사와 리인터내셔널 법률사무소 공동 대표변호사를 거쳤다. 헌법재판소 소장 출신의 김용준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의 사위이기도 하다.

인권 변호사로 유명한 고 조영래 변호사는 2위에 올랐다. <전태일 평전>의 저자이기도 한 조 변호사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가 1990년 폐암으로 별세했다. 1965년 서울대 전체 수석으로 법대에 입학한 후 한일회담 반대, 3선 개헌 반대 등 학생운동에 진력했다. 197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서울대생 내란 음모 사건으로 구속돼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다시 수배돼 사시에 합격한 지 10여 년 만인 1982년에야 연수원을 수료할 수 있었다. 그가 맡았던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1986년 권인숙 성고문 사건을 들 수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최근 ‘혼외 아들’ 논란으로 자진 사퇴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3위를 차지한 것이 눈에 띈다. 10월14일부터 시작한 국정감사에서도 채 전 총장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모든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검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내연녀로 지목된 임 아무개 여인은 여전히 묵묵부답이고, 채 전 총장은 지방에서 칩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선호하는 매체 
<법률신문>

<법률신문>이 지난해에 이어 법조계 전문가들이 꼽은 가장 읽고 싶은 매체 1위에 선정됐다. 77%의 지목률로 2위권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올해로 창간 63주년을 맞이한 <법률신문>에는 1950년 최대용 변호사를 시작으로 현재 이영두 사장까지 10명의 사장이 거쳐 갔다. 뉴미디어 시대에 발맞춰 인터넷을 통해 법조계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가깝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85년 9월3일자에 실린 서태영 판사의 ‘일주일언’ 칼럼은 당시 대법원장 탄핵 소추 논의까지 몰고 갔다. 1988년 6월16일자 이재훈 부장판사의 ‘사법부는 변모하여야 한다’는 글 등은 법조계를 넘어 일반 사회에까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법률저널> <대한변협신문>이 공동 2위를 차지했고, <월간법조> <검찰뉴스> <로이슈> 등이 그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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