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이데올로기 뛰어넘는 담론 제시해야”
  • 엄민우 기자·정리│이혜리 인턴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3.10.2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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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분야 2년 연속 1위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

노동 분야 ‘차세대 리더’ 1위에 오른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인터뷰 요청에 다소 당황한 듯했다. 그는 “민주노총 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 1년이 되어가는데…”라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위에 선정된 것을 놀라워했다. <시사저널>은 10월16일 서울 용산에 위치한 철도회관에서 김 전 위원장을 만났다.

 

압도적 지목률로 2년 연속 1위에 오른 소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현직에서 물러난 지 1년이나 됐는데 이런 뜻밖의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 시사저널 임준선
현직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는 다소 미안할 수도 있겠다(웃음).

현직에 신승철 위원장이 있는 상황이라 부담스럽긴 하지만 아마도 민주노총의 지도부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내년에는 신승철 위원장이 1위에 오르길 바라고, 또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선제 문제로 자진해서 위원장직에서 물러난 것에 대한 평가도 작용했던 것 아닐까.

동정표도 있는 것 같다(웃음). 물러나고 나서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최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사태와 우리 민주노총의 직선제 문제를 보며 우리가 착각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한다. 민주노총은 누가 뭐래도 1987년 항쟁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름 자체도 ‘민주’노총이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생각해야 하는 조직이다. 민주주의의 주요 가치는 독재와 반대되는 ‘다양성’이다. 민주주의는 곧 다양한 가치를 어떻게 조화롭게 모을 것인가 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형식적 측면에 치우쳐 그것을 모으는 능력이나 학습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민주노총 같은 경우에도 직선제가 제도로서 매우 중요한 것은 맞지만, 우리가 그런 것들을 하기 위해선 더 많은 책임이 요구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요즘은 무엇을 하며 지내나.

처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복직해서 조합원들이랑 똑같이 근무하고 있다. 지금은 수서발 KTX 민영화 문제 때문에 철도노조 지도위원 일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동 문제를 학생이나 청년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아이들 교과서에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축소시킨다’는 식의 내용이 들어갔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미래의 노동자인 아이들에게 노동 문제가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노동운동 전체의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 현재의 문제들을 단순히 자본의 공세나 국가의 탄압이라고 치부할 것인지, 우리 내부의 문제는 없었는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노동운동이 어떻게 하면 시민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겠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시국 농성을 시작했다. 요즘 노동운동이 위기라는 말이 많다.

노동운동 위기의 원인은 이념과 노선, 상상력 부족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가고자 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고, 그런 세상으로 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도입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다. 민주노총이 1996년 투쟁을 할 때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엄청나게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부상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노동 유연화가 받아들여지면서 조직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7년 이후 노동 시장에 큰 변화가 뒤따랐다. 비정규직이 전면적으로 들어왔고 각 회사별로 도입된 유연화 공세,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잘된다는 성장 담론 등등에 노동의 가치는 항상 두 번째로 밀려났다. 이런 성장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대안적 담론을 제시하지 못한 게 문제다. 곳곳에서 방어적 투쟁은 처절하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는 그런 모순 속에 빠져버렸다.

현재 가장 시급한 노동 현안은 무엇인가.

불평등이다.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지금 밀양 송전탑 문제도 결국 불평등 문제다. ‘왜 도시 사람들이 쓸 전기 때문에 시골 사람들이 희생해야 하느냐’는 거다. 이 시점에서 노동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노동운동은 근본적으로 경쟁이나 개인주의보다는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지향한다. 노동운동이 우리 사회를 좀 더 평등하게 하고 사회 연대성 공동체를 복원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과거의 영광을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 노동운동은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석기 의원 사태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이석기 의원의 발언이 내란죄를 얻을 정도의 것은 아니라고 본다. 통합진보당(통진당)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억울한 점은 법원에서 다투면 되는 것이다. 통진당은 국민의 지지와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당이기에 그에 따른 정치적인 모습도 국민에게 보여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이석기 의원이 내란 음모를 했느냐 안 했느냐는 법원에서 다툴 문제다. 그러나 그의 신분이 국회의원이었다는 점, 그리고 정당에 속한 사람이 많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본다면, 당 차원에서 국민에게 제대로 된 입장 표명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안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탄압이라는 점에 대해선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만, 현직 국회의원이 그런 일들에 연루됐다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많이 실망할 수 있는 것이다. 사법적 판단에만 모든 것을 맡긴다면 정치의 설 자리는 없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정치의 실종’이라고 판단한다. 사법적 판단에 앞서 정당으로서 정치적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자체적으로 자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공안 탄압은 탄압대로 따로 대응했어야 했다.

요즘 수서발 KTX 민영화 문제가 시끄럽다.

국토교통부는 지금 수서발 KTX가 “경쟁 체제 도입일 뿐이지 민영화는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말장난이라고 생각한다. “4대강은 대운하가 아니다”란 말과 똑같은 것이다. 공공 부문 민영화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수서발 KTX를 떼어내면 코레일이 수익 노선인 KTX를 통해 벌었던 게 대폭 줄어들게 되고, 그 이득이 일부 투자자들에게만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전라선 등 지역 주민에 대한 노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민영화냐 아니냐와 같은 언어적 논쟁을 떠나, 수익성이 나는 KTX를 분리해서 그 수익이 철도 내에 재투자되지 않고 투자자의 입으로만 들어간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KTX는 국민 세금으로 건설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의 세금은 전라도 도민들이나 강원도 도민들, 오지에 사는 주민들의 돈도 포함돼서 KTX가 건설됐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그것을 인수한 회사에게만 이득이 돌아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결국 적자생존의 문제다. 진주의료원도 의사의 서비스가 모자라서 적자가 나는 것이 아니었다. 진주는 삼성의료원이 들어와도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이건희 회장이 강원도 정선 역장으로 간다고 해서 그곳이 흑자가 나지 않는다. 의료·철도 같은 공공 서비스는 기업의 수익 논리보다는 사회적 필요에 따라서 있어야 할 것인지 없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적자 노선이라고 해서 지역 노선이 폐지되면, 결과적으로 그 지역은 심각한 공동화에 빠지게 되고 수도권-비수도권 간 불평등 구조는 더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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