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소녀, 노벨상에 먹칠하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3.10.2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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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랄라가 평화상 못 받자 세계 곳곳에서 비판 목소리

“말랄라가 누구냐?”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인 10월9일, 중학생들의 귀갓길 버스에 올라탄 괴한들이 물었다. 괴한들 중 소년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운전자의 주의를 끄는 사이,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신원을 확인한 다른 이들은 총을 난사했다. 당시 15세 소녀 말랄라는 그렇게 머리와 목에 총탄을 맞았다. 말랄라는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 교외에 있는 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잃고 중태에 빠지는 등 곧 죽을 것만 같았다.

2009년 이슬람 강경파 성직자인 마우라나 파줄라가 이끄는 과격 단체에 의해 말랄라가 다니던 학교가 점거된 일이 있었다. 당시 열한 살이던 말랄라는 익명으로 BBC 파키스탄어 블로그에 탈레반의 만행을 기록해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말랄라는 이후에도 탈레반의 위협으로 여성의 교육권이 제한받는 자신의 학교생활을 블로그에 차곡차곡 기록했다.

소녀는 열한 살 때 이렇게 썼다. ‘어제 군 헬기와 탈레반이 등장하는 무서운 꿈을 꿨다. 이곳에서 군사 작전이 시작되면서부터 그런 꿈을 꾸게 됐다. 탈레반이 소녀들에게 통학을 금지하는 포고문을 발령했기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이 무섭다. 반 친구 27명 중 11명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 탈레반의 포고 탓에 인원이 줄어든 것이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 남자가 ‘널 죽일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휴대전화로 협박하고 있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9월25일 미국 뉴욕의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CGI) 시민상 행사에서 ‘시민사회 리더십’상을 받은 뒤 연설하고 있다. ⓒAP연합
“말랄라는 노벨상을 타기엔 너무 훌륭하다”

말랄라의 블로그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았고, 언론에 그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2011년 11월,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평화상’ 수상자로 말랄라를 선정했다. 탈레반과 대립하며 유명해진 소녀에게 닥칠 위험도 그만큼 비례해 커졌다. 언론에 이름이 알려지자 탈레반은 말랄라와 가족들을 향해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렇게 벌어진 10월9일의 사건이 미수로 끝나자 ‘파키스탄 탈레반 운동’(TPP)은 “이슬람과 샤리아(이슬람법)에 적대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샤리아에 따라 죽음을 명령할 수 있다”며 “다음에는 말랄라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경고했다.

파키스탄에서 영국의 퀸엘리자베스 병원으로 옮겨진 말랄라는 빠르게 회복했다. 그런 사이에 소녀는 이슬람 과격파의 반대 세력과 여성 교육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상징이 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열린 집회에서 시위 참가자들은 ‘우리는 모두 말랄라다’라고 쓴 포스터를 내걸었다.

병원에서 회복을 꾀하던 소녀는 2013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영국에서 먼저 움직임이 있었다. 말랄라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캠페인에 3만명 이상이 동참했다. 직접적인 추천은 프랑스와 캐나다 국회의원들이 했다. 그들은 노벨상위원회에 말랄라를 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는 역대 최다인 259개의 개인과 단체가 추천되었는데, 그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미국의 유명 배우인 안젤리나 졸리는 “말랄라가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노벨상 수상자 예측으로 유명한 오슬로 국제평화연구소(PRIO)는 말랄라를 가장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했다. 그러나 ‘국제 여자아이의 날’이기도 한 10월11일 발표된 201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화학무기금지기구(OPCW)’로 결정됐다. 말랄라는 노벨평화상 대신 10월10일 유럽의회가 주는 사하로프 인권상을 수상했다. 옛 소련의 핵과학자이며 반체제 인사였던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이름을 딴 이 상은, 인권을 위해 싸운 인물에게 수여된다.

말랄라의 수상 실패 소식을 가장 기뻐했던 이들은 파키스탄 스와트의 민고라 지역 주민들이었을지 모른다. 말랄라의 고향인 이 지역은 소녀가 평화의 상징으로 떠오를수록 “복수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우는 탈레반의 협박 때문에 불안에 떨었던 곳이다.

‘말랄라 탈락’으로 노벨상 권위 추락

올해 가장 유력했던 말랄라가 아니라 OPCW가 노벨평화상을 타자 여기저기서 쓴소리가 쏟아졌다. 역설적으로 올해 시리아에서는 매일 격렬한 전투가 계속됐고, 민간인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다. 시리아는 화학무기가 오랜만에 등장한 전장이었다. 시리아 사람들 사이에 “OPCW가 시리아를 위해 무엇을 했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만한 장면이다. 반면 말랄라에게는 “노벨평화상을 못 받아 축하한다”는 격려가 쏟아졌다. 영국 <가디언>은 말랄라가 노벨상을 못 탄 걸 축하한다며 “말랄라는 노벨상을 타기에는 너무 훌륭하다”고 보도했다. 노벨상 선정위원회도, OPCW도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말랄라에게 쏟아지는 갈채는 노벨상의 권위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노벨평화상 선정에 항의하는 목소리는 말랄라 측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러시아도 크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시리아 내전에서 화학무기 폐기 작업에 착수한 OPCW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러시아에서는 “OPCW가 아니라 푸틴 대통령이 수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통합 러시아당의 코부존 하원의원은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결정을 두고 “세계의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미국의 의사에 따르는 어리석음과 무능력함을 보여주었다”고 비난했다.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법에 신호탄을 쏜 것도,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화학무기 금지 조약에 가입하도록 설득한 것도 (OPCW가 아니라) 푸틴이었다”는 것이다. 정치학자인 마르코프는 러시아 라디오 방송에서 “올해 세계 평화에서 중요한 부분은 시리아 내전의 확대를 막는 화학무기 폐기 프로세스가 시작된 것이다. 그 기본적인 공적이 푸틴의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노벨상은 스웨덴과 노르웨이 양국을 끼고 있는 노벨상 선정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최근에는 미국의 뜻을 강하게 반영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말랄라의 탈락과 OPCW 선정은 지난해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지난 60년간 유럽 대륙의 평화와 화합,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EU가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오히려 남유럽과 북유럽 간 적대감을 키운 게 EU”라며 유럽 언론들이 반발하고 나섰을 정도다.

해마다 문제가 되는 부문이 노벨평화상이다. 노벨상 선정위원회가 수상자 선정을 통해 메시지를 던져왔던 점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논란 많은 노벨상 수상자 톱10’ 중에서 평화상 수상자가 7명에 달했다. 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취임 9개월 만에 평화상을 받았고, 중동 지역에 오히려 갈등을 불러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도 수상자로 선정돼 많은 논란을 불렀다. <워싱턴포스트>는 “말랄라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평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사람에게 주는 상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아라파트나 버락 오바마가 상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오슬로에서 외면받은 말랄라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현실, 노벨상의 권위가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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