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 본능 따라 ‘쾌감’도 달린다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10.2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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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스포츠카에 미치는 건 도파민이 주는 성적 흥분 때문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품 중 하나가 바로 자동차다. 자동차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상을 대변하며, 등장인물의 신분과 재력은 물론 성격까지 짐작케 해준다. ‘007 시리즈’의 10번째 영화인 <나를 사랑한 스파이>(1977년)에는 물에서 잠수함으로 변신하는 수륙양용차인 로터스의 ‘에스프리(Esprit)’가 등장한다. 에스프리는 1976년부터 영국에서 생산된 대표적인 스포츠카다.

엄청난 출력과 속도, 멋있는 자태를 뽐내는 스포츠카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다. 외관상 매끈하고 부드럽게 디자인된 세련된 이미지가 사람의 마음을 더욱 끌어들이는지 모른다. 어쩌면 영화의 멋있는 장면을 내가 직접 주인공이 된 것처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스포츠카는 일반인들의 실생활과는 동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스포츠카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좋아하지만, 워낙 가격이 비싸 일단 ‘너무나 먼 당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진화를 거듭한 차체, 엔진이 내뿜는 가공할 속도는 많은 남성 운전자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며, 한 번쯤 스포츠카를 몰고 싶은 욕망을 갖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물론 꼭 스포츠카가 아니더라도 남자들은 차를 좋아한다. 남자들이 차에 미치는 것은 그들이 태생적으로 역동적인 사물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포츠카가 남자들에게 매혹과 찬탄의 대상이 되는 데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스포츠카를 즐기는 남성들은 성관계를 할 때의 스릴과 만족감을 스포츠카에서 간접적으로 느끼기도 한다. ⓒ EPA연합
성관계 때 스릴과 만족감 간접적으로 느껴

스포츠카를 타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몸이 붕 뜨는 기분’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종의 극한 상황에서 느끼는 무아지경 내지는 황홀경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내가 내 몸 밖으로 빠져나간 기분’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미국 카레이서 중엔 “코카인을 마신 것과 흡사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가속도가 붙은 스포츠카를 타는 남성들은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벅찬 환희나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희열로 가득 찬다고 한다.

대다수 신경학자는 그러한 기분의 원인으로 ‘도파민’을 꼽는다. 남성이 스포츠카를 몰면 모르핀과 비슷한 호르몬인 도파민이 인체에 생성되는데, 이것이 뇌에 가득 차면 쾌감을 느끼게 된다. 도파민은 성적 욕구에 관여하는 가장 중요한 신경전달물질로 성관계를 할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운동을 할 때 많이 분비된다.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는 섹시한 분위기도 기억한다. 따라서 스포츠카를 즐기는 사람들은 성관계를 할 때의 스릴과 만족감 같은 것을 스포츠카에서 간접적으로 느끼는 셈이다.

그 짜릿한 맛을 한번 느껴본 사람은 또다시 그런 상태를 느끼고 싶어서 미친다. 그래서 더욱더 스포츠카에 빠져들게 되고, 그것은 곧 중독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도파민은 일종의 마약 성분과 같은 것이다. 도파민 역시 반복되면 중독 현상이 생긴다. 뇌가 스포츠카의 중독을 부르는 것이다.

남자들에게 다양한 자동차 사진을 보여주고 뇌의 반응을 관찰하는 한 실험이 이뤄졌다. 이 실험에서 일반 자동차와 멋진 스포츠카를 보여주었을 때 뇌의 활동 영역이 다르다는 점이 밝혀졌다. 스포츠카를 본 남성들은 사회적 지위 및 보상과 관련된 뇌의 영역이 가장 활발하게 작동했다. 또 쾌감 중추의 움직임도 왕성해져 도파민 분비량이 현저하게 많아졌다. 결국 남성은 스포츠카에서 사회적 지위와 보상을 연상하고, 아름다운 여자와 성관계를 즐길 때와 같은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뇌의 작용이 남자들로 하여금 스포츠카에 사족을 못 쓰게 만드는 셈이다.

위기의 중년 남성들, 스포츠카 선호

정신의학자들에 따르면 위기의 중년 남성들도 스포츠카를 선호한다고 한다. 이는 성공을 향해 달리던 20~30대의 외향적인 성향이 점점 멀어지면서, 더는 사회의 주인공 역을 유지할 수 없다는 불안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인생의 정오’에서 겪는 ‘상승 정지 증후군(Rising Stop Syndrome)’이라고 설명했다. 남자들은 보통 40대부터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지만 정확히 말하면 노화가 시작되는 35세가 출발점이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이 줄어들면서 신체 변화와 함께 심리적 위축으로 생활 전반에서 활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테스토스테론 분비는 20대 초반에 정점에 이르지만 35세 이후 매년 1%씩 감소하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남성 갱년기의 첫 번째 신호는 주로 성생활에서 나타난다. 80% 이상의 남성이 성욕 감퇴를 경험한다. 성관계 횟수뿐만 아니라 성적인 상상력이나 환상 또한 시들해진다. 성욕 감퇴와 함께 발기부전 내지 발기불능도 자주 나타난다. 발기가 돼도 발기 상태를 유지하지 못해 성관계를 맺을 수 없어 ‘진짜 남성’이란 자긍심에 상처를 받는다. 또 갱년기 남성은 직장에서도 활력이 부족함을 느낀다. 갱년기 남성의 80%가 만성 피로감에 시달린다. 피로감을 이기기 위해 진한 커피를 자주 마시고 술에도 의지하지만 그럴수록 상태는 악화된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자신감도 줄어든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갱년기 남성의 70%는 우울증을 경험한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거나 피부가 건조해지는 것도 갱년기가 다가옴을 알려주는 징조다.

사회적으로도 오를 만큼 올라 그곳 이상을 꿈꾸기조차 어려운 상황을 접하게 되면서 10대 못지않은 중년의 위기를 겪게 된다. 그 사회적 보상 심리로 중년 남성들 또한 스포츠카를 격렬하게 몰며 도파민이 주는 심장의 성적 흥분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마누라 속 썩일 남자군”

남자에게 자동차는 물질적인 성공과 아이덴티티 증거(눈에 보이고 움직이는 증거)다. 스포츠카는 더욱 그렇다. 비싼 것을 소유한 데 따른 사회적 위상과 남성성의 심벌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은 더욱 아름다워 보이고,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호기심이 발동하는 남자들의 보편적인 심리가 스포츠카에 욕심을 갖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남자들이 스포츠카를 꿈꾸는 이유는 시선을 사로잡는 매끈한 몸체와 남성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엔진의 굉음 그리고 질주 본능을 일깨워주는 성능이다. 생계 유지와 가족 부양에 찌들어 시간이 갈수록 왜소해지는 남자가 많아지는 시대에 담배 꼬나물고, 근육질 몸매를 뽐내며, 와글거리는 엔진 소리를 휘날리며, 남들이 뭐라 하건 내 마음대로 내달리는 스포츠카는 대리 만족을 느끼기에 딱이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멋지다’며 눈길을 보낸 남성을 보면 현저한 차이가 난다. 남자들이 남성성의 상징으로 여기는 스포츠카, 근육질 몸매, 자유분방하고 거친 마초적 성향에 대해 정작 여자들은 그다지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보다는 고급스런 세단을 몰며 적당한 체격에 양복을 갖춰 입은 남자를 봤을 때 심장이 콩닥거린다. 특히 “남자는 의리”를 외치며 강한 동지애를 과시하는 이들을 보면 ‘마누라 속 썩일 사람’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남성들이여, 스포츠카에 너무 목숨 걸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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