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 전차, 한국 도로 점령하다
  • 김지영 기자·권용주 <오토타임즈> 기자 ()
  • 승인 2013.11.1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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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 10대 중 7대 독일제 BMW·폭스바겐·벤츠가 주도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기계공업을 발전시킨 독일이 이른바 현대전으로 불리는 자동차 전쟁에서 한반도의 새로운 점령군으로 다가오는 중이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는 11만6085대다. 지난해 같은 기간 9만5706대와 비교해 21.3% 늘어났다. 브랜드별 격차는 있겠지만 단순 계산하면 24개 수입 브랜드 모두 전년 대비 평균 21% 성장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돋보기를 갖다 대면 사정은 제각각이다.

먼저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국가별 점유율이 평균 21% 이상 상승한 나라는 독일·영국·프랑스뿐이다. 일본·이탈리아·미국·스웨덴 브랜드는 평균을 넘어서지 못했다. 전통적인 서유럽 3대 강국이 선전할 때 기타 국가는 맥을 추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 차는 올해 1~9월 판매량이 7만8394대로, 지난해에 비해 26.6% 늘어났다. 하지만 BMW가 인수해 독일 유전자를 심은 영국산 미니(MINI)를 독일 차에 포함시키면 점유율은 71%까지 치솟는다. 그야말로 독일 차의 한반도 점령이 아닐 수 없다. 점유율 71%는 현대·기아차가 국내 시장에서 확보한 승용 점유율과 같다. 비록 숫자로 표시되는 판매량은 다르지만 그만큼 시장 지배력이 월등한 셈이다.

전체 24개 수입차 브랜드 중 5개에 불과한 독일 차의 수입차 시장점유율도 지난해 64.7%였는데 올해 1~9월은 67.5%로 2.8%포인트 상승했다. 수입차 전체 성장률보다 웃도는 기록이다. 국내에서 독일 차 강세가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 디젤차들의 무한질주

독일 차 강세의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꼽힌다. 먼저 디젤이다. 과거 디젤 엔진은 고급차에서 외면받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고효율·저탄소 등이 주목받으며 독일 디젤차가 대거 상륙했다. 실제 지난 2010년 국내에서 판매된 수입차 가운데 디젤차 비중은 25%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듬해 35%로 높아지더니 지난해는 50%를 훌쩍 넘어섰다. 나아가 올해는 무려 61%에 육박했을 만큼 디젤차가 빠르게 확산되는 중이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수입차 10대 가운데 디젤이 6대 이상 팔린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브랜드 경쟁력이다. 사람들의 뇌리에 독일 차는 고급차로 강하게 인식돼 있다. 따라서 지갑이 넉넉해질수록 독일 차 선호 현상이 뚜렷해진다. 이 점에 비춰 강력한 브랜드가 디젤차 수요를 견인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닭과 달걀의 순서를 따지기에 앞서 현실 세계에서 독일 차의 부상이 확고해졌다는 건 확실하다.

세 번째는 ‘독일(Germany)’이란 나라의 이미지다. 최근 자동차는 생산지나 경영권이 아니라 혈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따라서 모든 자동차 회사도 각자의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하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독일 기업들은 유독 ‘국가’를 앞세운다. 세계 어디에서 만들어도 우수한 게르만 혈통의 제품이니 독일식 라이프스타일을 마음껏 즐기라는 식이다. 이를 두고 자동차 칼럼니스트 황순하씨는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가 아닌 메이드 바이 저먼(Made by German)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국내에서 폭스바겐은 독일에서 생산되지 않은 차종을 광고할 때 ‘디 오리지널 저먼(the Original German)’을 붙이지 않는다. 같은 폭스바겐 제품이라도 ‘독일 생산’이 아니면 오리지널을 배제해 국가 브랜드의 손상을 방지하는 식이다.

독일 차 강세 당분간 지속될 듯

네 번째는 브랜드 정체성 확립의 여러 요소 중 하나인 전통, 즉 해리티지(Heritage)와 무관치 않다. 자동차 문화사에서 독일은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 최초의 승용 디젤차 등 다양한 역사적 유물을 갖고 있다. 또한 100년 전 자동차 설계도가 지금도 재현 가능할 만큼 생생하게 보존돼 소비자에게 끊임없는 역사성을 강조한다. 이처럼 4가지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한국은 물론 세계 시장을 평정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엔 “일본 렉서스가 휩쓴 지역은 3년 후 독일 차가 차지한다”는 말이 있다. 고급차로 갈수록 사람들이 제품보다 브랜드에서 구매에 대한 자극을 더 많이 받는다는 의미다. 똑같은 가죽을 사용한 가방이라도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명품 여부가 결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독일 차의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아우디·BMW·메르세데스 벤츠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형성할 때 폭스바겐은 그들과 같은 ‘독일’ 그리고 동일한 디젤 엔진임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활보한다. 일본과 한국이 가솔린 하이브리드로 고효율을 추구하지만 독일은 디젤의 진동 소음을 줄이고, 하이브리드를 탑재하지 않아도 가솔린 하이브리드와 경쟁이 가능한 수준의 디젤 고효율을 완성했다.

사실 지금의 자동차는 기술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일반적이다. 대형 부품사가 여러 완성차 회사에 공동으로 부품을 공급하면서 재질과 소재 차이도 크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완성차 회사의 향방은 브랜드 인지도로 결정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 중이다. 국가와 기업 브랜드의 힘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 소비자에게 ‘독일’과 ‘독일 차’는 오랜 기간 ‘좋은 차, 남들이 부러워하는 차’로 자리 잡아왔다. 그게 바로 독일 차 강세의 근본 이유인 셈이다.

서울 시내의 한 독일산 수입차 대리점 지점장은 “올해 들어 지난해보다 20~30% 판매가 늘어났다”며 “연봉 5000만~6000만원대 샐러리맨이 구입할 정도로 수입차가 예전보다 대중화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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