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의 횡포’ 남양유업, 우윳값 꼼수 인상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12.0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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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가격은 그대로…가정 배달 우유만 550원 올려

대리점에 주문하지 않은 물량을 강제로 떠넘기는 이른바 ‘밀어내기’ 영업으로 비난을 받았던 남양유업의 우유 가격이 대형마트는 그대로인데 가정으로 배달되는 우유만 오른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원유 가격 인상으로 우윳값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업계의 해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슈퍼 갑’인 대형마트의 가격은 그대로 두고 ‘을’인 대리점 가격만 인상한 것은 또 다른 ‘갑의 횡포’라는 지적이다.

경기도 군포시에 사는 이 아무개씨는 지난 10월 집으로 배달되는 ‘유기농 맛있는 우유 GT’의 가격이 4400원에서 4950원으로 올랐는데, 인근 대형마트의 해당 우유 가격은 4400원 그대로인 것을 알게 됐다. 당초에는 배달 우유와 마트 우유의 가격이 같았는데 갑자기 12%나 차이가 난 것이다. 가정용 우윳값만 오른 것은 부당하다고 여긴 이씨는 우유를 배달하는 대리점으로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처음에는 “그런 일 없다”고 발뺌하던 대리점 측은 이씨가 구체적으로 가격을 따지자 “본사에서 가격을 올려서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11월26일 경기도 군포시의 한 대형마트에 남양유업 유기농 우유가 가격이 오르지 않은 4400원에 판매되고 있다(오른쪽 아래). ⓒ 시사저널 이종현
“두유 한 박스 보내준다 했지만 거절했다”

이씨는 이 대리점에 우유를 공급하는 수원지점으로 전화를 걸어 항의를 했다. 지점 담당자도 처음에는 오리발을 내밀었다고 한다. “다른 업체도 똑같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나는 대리점만 담당하고 있고, 대형마트 담당자는 따로 있다”고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씨는 결국 수원지점으로부터 올린 가격만큼 현금을 돌려받았다. 그는 “두유도 한 박스 보내주겠다고 했는데 그것 받으려고 한 게 아니라고 거절했다. 대신 군포 지역 소비자들에게 올린 가격만큼 돈을 돌려주라고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답변이 없다”고 밝혔다.

이씨는 남양유업의 우유를 결국 끊었다. 그는 “갑을 문제로 한창 논란이 일 때도 우유를 끊으려고 했지만 대리점만 피해를 본다는 생각에 그러지 않았다. 대리점은 을이고 소비자는 병이나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대리점 측에서 오른 가격의 절반을 부담하겠다고 하길래 그럴 필요 없다고 하고 거래를 끊었다”고 설명했다.

남양유업은 7월8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부터 123억원에 이르는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2007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전국 1849개 대리점에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나 대리점이 주문하지 않은 제품을 강제 할당하는 것은 물론 대리점 취급 대상이 아닌 제품까지 강제 할당해 ‘밀어내기’ 판매의 전형을 보여줬다. 특히 대리점의 전산 주문이 끝나면 본사 영업사원이 판매 목표 물량에 맞춰 대리점 주문량을 마음대로 수정하기도 했다.

2012년 10월부터는 본사 측이 주문량 조작을 손쉽게 하기 위해 전산 시스템을 변경해 대리점이 최종 주문량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대리점의 제품 대금 결제를 신용카드로 하도록 해 대금 납부를 연체해도 본사는 손해 보지 않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갑을 관계에서의 불공정 관행이 이슈화된 상황에서 신속한 조사를 통해 엄중한 법 집행이 이뤄지도록 했다. 이번 조치를 통해 일방적인 부담 전가 행위 등 이른바 갑의 횡포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남양유업과 대리점협의회는 7월18일 ‘남양유업 공정 거래 및 상생안’을 발표했다. 양측은 △피해 보상 기구 공동 설치를 통한 실질적 피해액 산정 및 보상 △불공정 거래 행위 원천 차단, 상생위원회 설치 △대리점 영업권 회복 등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상생안에 따라 대리점에 대한 본사의 부당한 사업 활동 방해나 판매 목표 강제, 이익 제공 강요, 일방적 대리점 해임 요구 등 부당한 경영 간섭 및 하자 제품 공급 행위는 모두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공정거래법 위반과 업무 방해, 무고 등의 혐의로 임직원 5명과 함께 기소된 김웅 남양유업 대표는 8월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심리로 열린 첫 공판 준비 기일에 참석해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죄송하다. 제품 특성상 신제품의 경우 일부 밀어내기를 한 것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 등 잘못에 대해 시인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철저히 반성해서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11월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서 김 대표에게 징역 1년6월을 구형했고 김 대표 측은 “사회적 비판을 수용해 반성했다”며 법원의 선처를 호소했다. 재판부는 내년 1월10일 선고하기로 했다.

눈물을 흘리며 대국민 사과를 한 김웅 남양유업 대표. ⓒ 연합뉴스
배달 우유 마시는 소비자만 계속 손해

최근에는 훈훈한 소식도 전해졌다. 김 대표를 비롯한 남양유업 임직원 50여 명과 남양유업 전국대리점협의회 회원 20여 명이 11월20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일대 독거노인들을 위해 ‘사랑과 상생의 연탄 배달’ 활동을 펼친 것이다. 남양유업이 잘못된 관행을 청산하기로 하고 대리점주들과 대타협을 이룬 뒤 처음으로 힘을 모은 자리였다. 양측은 앞으로도 사랑의 우유 배달, 지역 문화제 가꾸기, 1사1촌 결연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정기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양유업 전국대리점협의회 관계자는 “과거와 같은 불공정 행위는 없어졌다. 다만 추석 이후 유제품 가격이 올라 장사가 너무 안 돼 판매 활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격 차등 인상에 대해서는 “가격 조정 기간을 거쳐 지금은 정상적인 가격이 형성돼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가격 얘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임의 발주가 없어진 지 꽤 됐다. 예전처럼 이미 생산해놓은 물품에 대해 떠넘기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대리점에서 발주하지 않으면 물품이 안 온다. 그리고 대리점의 유기농 우유 취급률은 10%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경우 11월26일 현재 해당 우유를 오르지 않은 가격인 4400원에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의 경우 가격 인상에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배달 우유를 마시는 소비자만 손해를 보는 일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씨는 한국소비자원 산하 소비자상담센터와 이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소비자상담센터는 민원이 제기되면 업체와 소비자 간에 중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제품 가격의 경우 업체의 고유 권한으로 상담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소비자상담센터 관계자는 “남양유업 측 담당자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유통 구조가 달라서 가격 차이가 날 수도 있다고 했다. 가격 결정은 업체 권한이기 때문에 이번 소비자 민원의 경우 종결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남양유업 측은 “대형마트의 가격은 대형마트에서 책정하는 것이다. 대형마트에서 싸게 파는 것을 비싸게 팔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소비자 가격은 업체에서 손을 쓸 수 없는 부분이며 만약 업체가 강제를 하면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설명이다. 이씨의 경우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항의하니까 돈을 지급한 것이다. 배달 우유가 조금씩 더 비싼 게 정상”이라고 해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출고가는 동일하다. 다만 계약에 의해서 혜택이 갈 수 있는데 영업적인 부분이라서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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