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주의자 똘똘 뭉쳐 “EU를 타도하라!”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3.12.0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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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네덜란드 극우 정당 손잡고 ‘유럽자유연맹’ 창설 ‘정치적 해프닝’ 그칠 가능성 커

11월13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네덜란드 의회로 전 유럽의 시선이 쏠렸다. 이날 네덜란드 의회는 특별한 손님을 맞았다. 프랑스의 극우 정당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마리 르펜 총재가 이곳을 찾은 것이다. 르펜의 방문 목적은 하나였다. 네덜란드의 극우 정당인 ‘자유당(PVV)’의 헤르트 빌더스 대표를 만나기 위해서다.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5월에 치러질 유럽의회 선거를 위해 정당 연합체인 ‘유럽자유연맹’을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마리 르펜은 최근 실시된 프랑스 여론조사에서 43%라는 기록적인 지지율을 기록하며 프랑스 정치의 중심에 섰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치주의자로 알려진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다. 그래서인지 표면상으로는 아버지와 거리를 두며 대중적 지지 기반을 넓혔다. 반면 헤르트 빌더스는 이슬람에 대한 혐오를 대놓고 드러낸다. 자신이 극우파라는 점을 굳이 감추지 않는 정치인이다. 두 사람이 발족한 유럽자유연맹의 목표는 하나다. 유럽연합(EU)의 해체다. 그렇다고 해서 공격의 목표가 외국인에서 유럽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이들은 EU가 루마니아 등 동유럽에서 새로 가입한 회원국 시민들에게 이주와 취업 기회를 주는 것을 반대한다.

11월13일 헤이그에 위치한 네덜란드 의회에서 만난 마리 르펜(왼쪽)과 헤르트 빌더스. ⓒ EPA 연합
유럽 각국에서 약진하고 있는 극우파

르펜과 빌더스가 EU에 반대하는 다른 이유는 국가주의로의 복귀를 원해서다. 이들은 과격한 수사를 동원해 EU를 맹비난했다. 빌더스는 유럽자유연맹 발족을 두고 “(EU가 위치한) 브뤼셀의 괴물로부터 해방이 시작되었다”고 선언했고, 르펜은 “EU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각 회원국이 노예 상태에 빠졌으며 프랑스는 EU 탈퇴를 통해 민주주의로 회귀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물론 이들의 말에는 어폐가 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EU 회원국이며, EU의 의사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노예와는 거리가 멀다. 유럽의회에서 프랑스는 74명, 네덜란드는 26명의 의원이 활동하고 있다.

올해 유럽 각국에서 치러진 선거를 보면 하나의 공통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EU 반대’를 외친 우파 성향 정당들이 대거 약진했다. 올해 3월 실시된 이탈리아 총선에서 코미디언 베포 그릴로가 이끄는 ‘오성운동’이 제3당이 되는 기염을 토했고, 9월의 독일 총선에서는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오스트리아 총선에서는 반(反)EU를 기치로 내건 ‘자민당’과 억만장자 프랑크 슈트로나흐가 이끈 ‘팀 슈트로나흐’가 합쳐 3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10월 프랑스 남부의 브리뇰에서 치러진 지방 보궐선거에서는 ‘국민전선’의 무명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무려 53.9%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노르웨이는 9월 총선에서 보수 정당과 극우 정당이 이끄는 연합정부를 탄생시켰다.

마리 르펜과 헤르트 빌더스는 각국의 이런 흐름을 타고 반EU 우파 포퓰리즘 정책이 전 유럽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물꼬를 텄다. 물살이 향하는 곳은 유럽의회다. 의회에 진출한 오성운동이 기존 정당과의 타협을 거부하면서 이탈리아 정치를 마비시켰듯이 유럽의회에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 EU의 기능을 안에서부터 정지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미 스웨덴·벨기에·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반EU 정당들이 유럽자유연맹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유럽자유연맹이 EU에 얼마나 큰 위협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정치인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이탈리아의 엔리코 레타 총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포퓰리즘의 유행은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회·정치적 현상이다. 이에 맞서려면 내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친(親)유럽파가 적어도 전체 의석의 70% 이상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친기업 성향인 독일 ‘자유민주연합(FDP)’의 알렉산더 그라프 람스도르프는 “EU 반대자들이 광적인 국가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저마다 국적이 다른 이들이) 장기적으로 서로 협력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 위기도, 무너진 정체성도 다 EU 탓”

영국 런던에 소재한 정책 싱크탱크인 ‘폴리시 네트워크(Policy Network)’의 르노 티예 선임연구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자유연맹이 유럽의회에 진출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EU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티예 연구원은 “유럽의회 내에서 EU 회의론이 대두될 경우 이를 견제하기 위해 친유럽 성향의 보수 정당과 사회민주 계열이 좀 더 긴밀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반EU파의 능력을 약점이라고 봤다. “지금까지 유럽의회에서 반EU를 내세우는 정당들은 전혀 체계적이지 못했다. 이들은 논쟁적인 연설을 하고 EU 관리직을 공격하는 정도의 ‘정치적 해프닝’을 벌이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이들이 의회에서 능력을 증명해 보이지 못할 경우 ‘선거의 반짝 스타’ 정도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그는 EU 해체에 대해서도 “선동적인 수사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유럽의회는 유로화, 무역 협상 등 주요 현안에서 유럽이사회보다 파워가 없기 때문에 반유럽파가 의회를 장악한다 하더라도 EU 해체나 유로화 폐지로 직결될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이다.

현재 상황에서 더 중요한 문제는 유럽 각국의 극우주의자들이 EU를 공동의 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모양새는 극우주의자들이 경제 위기와 유럽 정체성의 위기를 EU의 탓으로 돌리면서 EU를 속죄양으로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국제화를 촉진시켜 결과적으로 유로존 내 국가들의 연쇄적인 경제 위기를 초래했고, 솅겐 조약(유럽 각국이 공통의 출입국 관리 정책을 사용해 국경 시스템을 최소화함으로써 국가 간 통행에 제한이 없게 한다는 조약) 체결과 EU 가입국 확대로 유럽적 정체성에 위기가 찾아온 것 모두가 EU의 책임이다.

하지만 친EU파들은 유럽의 경제 위기와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려면 오히려 더 강한 EU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EU의 힘이 지금보다 더 커져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에는 많은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다. 특히 중국·미국과의 협상에서 같은 눈높이를 유지하려면 강력한 국가 연합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강행한 긴축 재정이 ‘강한 유럽’의 상징으로 굳어진 이 시점에 ‘강한 EU론’은 오히려 더욱 강한 긴축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라 반감만 부추길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유럽을 둘러싼 논의는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EU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나’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독일의 라디오 방송국인 ‘도이칠란트 풍크’는 논설에서 “시민들이 EU의 역할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EU의 결정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필연적으로 EU 회의론에 빠지게 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르 푸앙’은 좀 더 원론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극단주의가 위기론을 자양분 삼아 자라기 때문에 아예 위기론이 나오지 못하도록 경제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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