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에선 정보 많은 엄마가 권력자
  • 이규대 기자·이혜리 인턴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12.1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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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부대’가 학원가 움직이는 큰손…커뮤니티 형성해 막강 파워 행사

50대 초반인 이미애씨(여)는 1994년부터 대치동에서 살았다. 2000년대 중반까지 대치동 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했다. 이씨의 자녀는 2008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2000년대 초·중반에 자녀의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학부모이자 학원 관계자로 근 20년간 대치동을 관찰해온 셈이다.

이씨에게 자녀의 대학 입시는 ‘아이러니’였다. 다름 아닌 사교육 현장에 몸을 담고 있는데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준비할 수 없었다. 겉으로 보는 것과 실제는 달랐다. ‘대치동 엄마’와 ‘대치동 강사’의 정체성은 완전히 별개였다. 이씨는 ‘대치동 엄마’로 거듭나야 했다. 그 과정에서 외부인은 알기 힘든 이곳 학부모들의 문화를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심 없이 얘기해줄 사람이 절실했다.” 이씨가 대치동에 떠도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다른 엄마들을 만나며 든 심정이다. ‘직장맘’이었던 이씨는 대치동 엄마들이 끼리끼리 결속하는 커뮤니티에 속할 수 없었다. 그런 이씨는 주변 엄마들에게 ‘경쟁자’에 불과했다. 사업적인 목적으로 접근하거나 ‘기브 앤 테이크’ 식으로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12월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인근 카페에서 학부모들이 자녀를 기다리며 앉아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자녀 어렸을 때부터 커뮤니티로 결속

대치동 엄마들이 대치동 학원가의 ‘진짜 주인’이다. 이들이 구성하는 커뮤니티가 대치동을 움직인다. 학원 및 강사에 대한 평가, 입시 관련 정보 등이 입에서 입으로 떠돈다. 흐르는 정보는 돈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학원가 분위기와 질서를 결정짓는다.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카페·식당 등에서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는 엄마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룹을 지어 모인다.

커뮤니티는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결속되는 경우가 많다. 일찍부터 친분 관계를 형성하며 ‘자녀의 명문대 합격’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전업주부가 아니면 이런 커뮤니티를 유지해나가기 힘들다. 남편의 안정적인 수입을 바탕으로 자녀 교육에 온통 신경을 쏟을 수 있는 엄마만이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다. 학교 학부모 모임도 일부 커뮤니티 기능을 수행하기는 한다. 하지만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어울린 커뮤니티에 비해 결속력이 약하다.

커뮤니티에는 으레 분위기를 주도하는 엄마들이 있다. 이씨는 그런 엄마들이 크게 세 종류라는 걸 관찰 결과 알아냈다. 입담이 좋은 엄마,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 엄마, 애들 대학 잘 보낸 엄마다. ‘말발’ ‘공부 잘하는 자녀’ ‘명문대 진학 성공’ 중 하나 이상을 가진 엄마가 커뮤니티의 권력자가 된다.

이런 엄마는 대치동 입시 정보 유통망에서 ‘허브’ 역할을 수행한다. 사교육 서비스의 수요자인 엄마들과 공급자인 학원을 매개하는 역할도 자주 한다. 일부 학원은 이런 엄마들과 금전적·인간적 유대 관계를 맺어 고소득을 올리기도 한다.

대치동 엄마들은 사회생활 경험이 별로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서로 정보를 교류하는 엄마들끼리의 모임이 이들에겐 ‘가정 밖’ 사회생활의 전부인 셈이다. 대치동 엄마들과 하루 종일 대화하고 밥을 먹고 술도 마신다. ‘대치동 엄마’라는 정체성이 곧 그들의 사회적 자아로 굳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자녀 입시가 곧 ‘비즈니스’인 셈이다.

커뮤니티에서 분위기를 주도하는 엄마들이 특히 그렇다. 자녀가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대치동 사교육 세계에 남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씨의 말이다. “대치동 엄마들의 커뮤니티는 그들에게 단순한 친목 모임이나 자녀 입시 준비 모임이 아니다. 정보를 통해 권력을 쥐고 그 영향력을 다른 엄마들에게 행사하는 일종의 사회 활동 공간이다. 그 권력의 단맛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들 중에는 학부모 시절 쌓은 지식과 관계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대치동 사교육에 뛰어드는 이가 많다. 크게 세 가지 경우다. 학원을 직접 차리거나, 학원의 관리·상담실장이 되거나, 입시 전문 컨설턴트가 되거나. 입시 관련 활동이 진짜 ‘비즈니스’로 거듭나는 것이다.

대치동 사교육에 직접 뛰어드는 경우 많아

이씨는 지금 대치동 학원의 3분의 1 내지는 절반 정도가 ‘대치동 엄마’ 출신이 세운 것이라고 체감한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낸 사람의 말이라면 엄청난 설득력을 갖는 것이 대치동 학원가다. 즉각적으로 수강생을 끌어올 수 있는 인맥도 갖췄다. 또래 부모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주도해오던 ‘말발’도 있다. 그리 유명하지 않았던 강사를 순식간에 스타 강사로 만드는 일도 어렵지 않다고 한다.

대치동 학생을 떠맡아 입시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입시 컨설턴트도 상당수 배출된다. 역시 자녀 입시에 성공한 사람의 말이 권력으로 통하는 대치동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자녀를 국내외 명문대에 합격시킨 비결을 나름대로 정리해 다른 학생들에게 적용하는 식이다.

“○○○도 몰라요?” 이씨를 주눅 들게 만들었던 대치동 엄마들 특유의 어법이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다른 엄마들은 이미 알고 있을 거라는 불안감, 내 불찰이 자녀의 명문대 입학을 가로막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도 몰라요?”라고 묻고 난 뒤 자신의 정보력을 과시하는 대치동 엄마들의 행동 이면에는 이런 심리가 깔려 있다고 한다.

“대치동 엄마들도 다른 엄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녀 입시는 그들 역시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앞으로 무엇이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런데 주변 대치동 엄마들은 다들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정보들을 쏟아낸다. 자기도 그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대치동 엄마들이 특유의 커뮤니티 문화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녀가 입시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대치동 엄마는 크게 상심할 수밖에 없다.” 대치동 엄마들 역시 한국의 교육 문제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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