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자른다고 몸통 숨겨지나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12.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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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찍어내기 프로젝트’ 청와대 개입…조오영 행정관 윗선 주목

“청와대 부분의 의혹들과는 관련이 없는 개인적 일탈 행위라는 점을 말씀드린다.”

12월4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밝힌 청와대 자체 조사 결과 발표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로 지목된 채 아무개군 모자의 가족관계등록부(가족부)를 불법 조회·열람한 연결 고리에 청와대 총무비서실 소속인 조오영 행정관이 연루된 사실은 확인됐지만, 청와대 조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개인의 일탈 행동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 홍보수석은 청와대 밖의 인물인 안전행정부(안행부) 소속 김 아무개 국 장을 ‘불법 열람 요청자’로 지목했다.

검찰은 12월5일 안전행정부 김 아무개 국장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 연합뉴스
공교롭게도 MB 정권 사람들만 줄줄이

애초 조 행정관으로부터 채군 모자 가족부 열람을 요청받은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과 조 행정관에 이어 또 한 명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 것이다.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과 청와대 총무비서실 시설관리 담당 행정관, 안행부 국장(중앙공무원교육원 기획부장) 등 세 공직자가 채군 모자 가족부 열람의 핵심 3인방으로 지목된 셈이다. 대체 이들은 무슨 까닭으로 현직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을 받고 있는 채군의 가족부를 들여다본 것일까.

조오영 행정관은 사정 라인에서 일해본 경험이 전혀 없다. 조 행정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청계천 복원추진본부 조경팀장과 환경사업팀장 등을 지냈다. 이런 인연으로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청와대로 들어가 총무비서실에서 시설팀장을 맡아 일하다가 최근 채군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돼 직위 해제됐다. 그의 이력을 보면 그의 주된 업무가 무엇인지 잘 드러난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조 행정관은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에게 가족부 열람을 부탁하면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연락한 것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통신 기록을 조회해도 통화한 사실만 확인이 가능할 뿐 통화 내용까지는 파악할 수 없다. 그저 시간과 횟수만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자메시지는 해당 휴대전화에서 복원이 가능하다. 만약 조 행정관이 당시 문자가 아닌 통화로 조 국장에게 부탁을 했다면 수사는 오리무중에 빠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와 관련한 일에 문외한인 조 행정관은 왜 뜬금없이 채군 모자의 가족부 열람을 요청한 것일까. 조 행정관은 경북 안동 태생에 안동고를 졸업한 TK(대구·경북) 출신이다. 여기에 서울시 근무 경력까지 더해져 전형적인 MB 정권 인사로 분류된다. 조 행정관의 부탁을 받고 실제 가족부를 열람한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은 ‘MB맨’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측근이다. 두 사람 모두 MB 정권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 사정기관의 관계자는 “MB 정권 인사들이 검찰의 원 전 원장 수사에 불만을 품고 채 전 총장 찍어내기에 나선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MB맨이라는 이유로 조 행정관이 가족부를 열람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의문은 남는다. 총무비서실 소속으로 시설관리 업무를 보는 그가 어떻게 주민등록번호 등 채군의 개인정보를 입수하게 됐느냐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세 번째 인물이 안행부 소속 김 국장이다.

김 국장은 MB 정권 말기인 지난해 10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임명된 후,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후인 올 3월28일까지 근무했다. 이때는 검찰총장 추천위원회가 검찰총장 후보로 채동욱 전 총장을 비롯한 3인을 최종 후보군에 천거(2월7일)하고, 이에 따라 채 전 총장이 검찰총장 내정자로 최종 확정(3월15일)된 시점이다. 채 전 총장에 대한 인사 검증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시점에 김 국장이 민정실에 있었다는 얘기다.

민정실은 채 전 총장에 대한 인사 검증을 하면서, 이때 이미 채군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를 입증할 만한 의미 있는 정황이 드러났다. 윤명화 민주당 서울시의원이 공개한 서울교육청 특별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12일 채군이 다닌 초등학교에서 채군의 학급 혈액형 정보를 17번이나 조회한 정황이 확인됐다. 채 전 총장 혼외 아들 의혹에 대한 조선일보의 첫 보도가 나가기 전에 청와대가 채군 모자의 혈액형을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미 2월께 누군가의 요청에 따라 해당 학교에서 혈액형 조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민정실에 소속돼 있던 김 국장은 채군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만약 김 국장이 이때 얻은 정보를 조 행정관에게 전달했다면 ‘정보 출처’에 대한 설명도 가능해진다. 여기에다 김 국장은 경북 영천 출신으로 포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영포(영일·포항)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또 조 행정관과는 먼 친척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조 행정관과 함께 ‘개인적 일탈 행위’를 할 수 있는 인물로 김 국장만 한 사람은 없는 셈이다.

“청와대 조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개인의 일탈 행동”이라고 발표하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 ⓒ 연합뉴스
“조 행정관 함구하면 결국 흐지부지될 것”

하지만 김 국장은 해당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청와대 역시 “조 행정관과 김 국장이 6월11일 잦은 통화를 했다”는 점만 근거로 댈 뿐, 그 이상의 물증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조 행정관과 김 국장 두 사람이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면서 채군 개인정보 유출 의혹에서 결과적으로 박근혜정부는 사라지고 이명박 정부 사람들만 남게 됐다. 현 정부에서 채군의 개인정보가 유출됐지만, 비난은 전 정부가 받게 되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혹시 청와대가 ‘윗선’을 보호하기 위해 정교한 시나리오를 짠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가족부를 열람하게 되면 반드시 로그 기록이 남는다. 이를 추적하면 연결 고리가 밝혀질 가능성이 있다. 만약 청와대가 (민정 라인이 아닌) 비선 라인을 통해 채군의 가족부를 열람하기로 했다면 차후에 열람 요청 사실이 드러나도 ‘꼬리 자르기’가 편한 사람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김 국장을 ‘배후’로 지목했기 때문에 검찰 역시 김 국장을 조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검찰 관계자는 “확인 가능한 증거라고 해봐야 (김 국장이) 조 행정관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정도다. 설령 김 국장이 조 행정관에게 가족부 열람을 부탁한 것이 사실일지라도 문자메시지를 이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 행정관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결국 진실 공방만 계속하다 유야무야 끝날 가능성이 크다. 윗선은 밝혀지지 않고 조 행정관만 가벼운 처벌을 받는 선에서 마무리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키는 조 행정관이 쥐고 있다. 그가 입을 닫으면 결국 의혹만 난무한 채 끝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터진 MB 정권 민간인 사찰 사건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당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의 폭로로 검찰 수사가 청와대 ‘윗선’으로 향하자,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은 기자회견을 자처해 “내가 몸통이다”라며 모든 의혹을 혼자 떠안았다. 이번 사건이 자칫 ‘제2의 민간인 사찰’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검찰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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