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에서 ‘죽음의 상인’ 몰려온다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3.12.1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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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무기 수출 5년 새 두 배 급증…한국과 일본에 큰 위협

지난 9월 터키 정부는 장거리 공중미사일 방어 체계 구축 사업 입찰에서 최종 사업자로 중국정밀기계수출입공사(CPMIEC)를 선정했다. 터키가 중국에서 도입하기로 한 것은 훙치(紅旗)-9 방공 시스템이다. 중국 중·장거리 방공 시스템의 핵심 전력으로, 방공 미사일의 대명사인 미국 패트리어트에 버금가는 성능을 지녔다. 총 사업비는 30억 달러(약 3조1840억원)에 달한다.

훙치-9는 탐색·추적·유도 레이더 차량, 발사관 4개를 갖춘 미사일 탑재 차량, 지휘·통제소 등으로 구성된다. 미사일 한 발이 12.9m 크기로 패트리어트와 비슷하지만 가격은 그 3분의 2 수준인 75만 달러에 불과하다.

4년을 끌어온 이번 입찰에는 중국 외에도 미국 레이시온과 록히드마틴, 러시아 로소보론엑스포르트, 프랑스·이탈리아의 컨소시엄 등 세계 유수의 군수 기업이 참여했다. 터키가 같은 나토 회원국인 미국과 유럽 국가 등을 따돌리고 중국 업체를 사업자로 선정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터키 정부는 입찰을 철회하라는 미국과 나토의 압력을 받았지만, 11월 CPMIEC와 최종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중국 주간지 ‘남방주말’은 “훙치-9의 성공은 세계 무기 수출 시장에서 미국·유럽과 자웅을 겨루겠다는 중국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쾌거”라고 보도했다.

최근 전 세계 무기 시장 판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전통적인 수출 대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여전히 부동의 1,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다크호스로 떠오른 중국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

2012년 7월24일, 중국군 창건 기념일을 앞두고 중국 국방부는 차세대 헬기인 Z-9WZ와 장착 미사일을 언론에 공개했다. ⓒ AP 연합
아시아·중동·아프리카에 무기 수출 급증

지난 3월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국제 무기 시장에서 중국이 새로운 수출 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SIPRI가 발간한 ‘2008~12년 전 세계 재래식 무기 주요 수출국과 수입국 현황’에 따르면, 중국은 해당 기간 동안 무기 수출량이 이전 5년간보다 162%나 급증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무기 수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에서 5%로 높아졌다. 순위도 8위에서 5위로 뛰어올라, 1950년 이래 5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는 영국을 제쳤다. 중국보다 앞선 나라는 미국(30%)·러시아(26%)·독일(7%)·프랑스(6%)뿐이다.

중국의 무기 수출이 급증한 것은 아시아와 중동·아프리카 국가들의 수입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중국산 무기를 가장 많이 사들인 고객은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은 중국에서 샤오룽(梟龍·JF-17), 호위함, 탱크 등을 구매했다. 특히 2019년까지 142대를 도입할 샤오룽은 파키스탄이 중국과 공동 연구 및 제작 협약을 체결한 전투기다. 성능은 6500만 달러인 미국의 F-16에 조금 떨어지지만, 대당 가격은 2500만~3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중국은 새로운 무기 수출 시장으로 떠오른 중남미에서도 약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2011년 중국 애비콥터의 기술을 도입해 헬리콥터 ‘Z-11’ 40대를 조립 생산하기로 계약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는 경전투기로 쓸 수 있는 훈련기 카라코람(喀喇昆侖·K-8)을 각각 18대, 6대 도입했다. 에콰도르는 방공 레이더, 페루는 B-2000 탱크를 사들였다.

무기 수출이 활기를 띠면서 중국 방위산업체의 이익도 덩달아 늘어났다. 중국 최대 방위산업체인 중국병기공업그룹(CNGC)의 2012년 순이익은 2010년보다 45% 늘어난 98억 위안(약 1조7064억원)에 달했다. 중국병기장비그룹(CSGC)도 2011년 순이익이 60억 위안(약 1조447억원)이라고 공시했다. 중국 군수업체는 모두 국유로, 대외 수출은 그룹 산하 기업이나 전문 회사가 담당하고 있다.

영국 군사정보회사 IHS 제인스의 가이 앤더슨 애널리스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핵심 기술이 서구 국가보다 10년 뒤처졌지만 매년 수십억 달러를 무기 연구와 기술 개발에 쓰고 있어 곧 서방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제평가전략센터(IASC) 리처드 피셔 박사도 “3세대 전투기인 젠(殲)-10은 4000만 달러 안팎인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개발도상국을 유혹하고 있다”며 중국 방위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무기 수출을 외교 정책의 일환으로 수행하는 점도 특징이다. 중국은 ‘내정 불간섭’을 명분으로 수입국을 가리지 않는다. 잠재적 대립 세력인 나토 회원국 터키에도 자국 무기 시스템을 판매할 정도다. 지난 5월 무기 수출 업체인 바오리(保利)그룹 천훙성(陳洪生) 회장은 월간지 ‘영재(英才)’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무기 수출은 국가의 대외 정책 외교 업무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국가 간 정치·경제 관계 발전을 촉진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중국의 행보에 신경이 곤두선 나라는 일본이다. 지난해 일본의 국방 예산은 622억 달러(약 65조9817억원)로 중국보다는 적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막강한 방위산업을 거느리고 있다. 중국 무기의 상당수도 일본제 부품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자국 방위산업에 채워진 족쇄를 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12월4일 일본판 NSC인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출범시키면서 국가 안전보장 전략 원칙을 수립했다. 10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국가 안전보장 전략을 발표하면서 무기 수출 3원칙의 개정 방침을 명시했다. 무기 수출 3원칙이 무너지면 일본제 무기를 자유로이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한국의 무기 판로 확장에 민감한 반응

중국의 급성장은 한국에 걸림돌이다. 2008?12년에 한국은 전 세계 무기 수출 물량의 1% 정도를 점유해 세계 16위를 차지했다. 물론 수입 물량이 5%로 여전히 무역 불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올해 1?10월 무기 수출액은 26억 달러(약 2조7580억원)를 넘어서, 2006년 2억5000만 달러보다 10배나 증가했다. 11월7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무기 수출국”이라고 보도했다.

과거 한국은 동남아를 중심으로 시장 개척에 나섰으나 최근에는 중동과 중남미로 판로를 넓히고 있다. IHS 제인스 존 그레밧 애널리스트는 “방위산업의 성장세를 이어가려면 동남아를 넘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런 한국의 움직임에 중국은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나섰다. 지난 10월 한국이 필리핀에 경공격기 FA-50을 판매할 움직임을 보이자, 중국은 주한대사관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중국에게도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남방주말’은 “최신형 전투기 가격이 경쟁국의 3분의 2에 불과하고 기술 이전도 적극적이라 개발도상국의 환영을 받는 것”이라며 “편향된 수입 대상국, 낙후된 사후 서비스 등은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때 미국으로부터 ‘쓸모없는 박물관 유품’이라고 조롱받았던 중국 무기. 이제 대륙을 넘어 전 세계 무기 시장을 정복할 채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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