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상대 많은 여성 위험하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12.1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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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30대 발병 늘어…바이러스 감염 막는 게 우선

자궁경부암은 그 원인이 밝혀진 암이다. 바이러스(HPV;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여성의 자궁 입구(경부)에 감염되면서 건강한 세포가 암으로 변한다. 이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백신도 있다. 약 8년 동안 세계 각국은 백신 접종을 시행했고, 자궁경부암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최근 20~30대 젊은 층의 암 발생이 늘어나고 있어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궁암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자궁경부암이 가장 흔해서 자궁암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이 암을 일컫는다. 과거 자궁경부암 환자를 분류해보니 성생활이 문란한 사람, 성관계 상대가 여럿인 사람, 흡연자 등이 많았다. 더 연구를 해보니 이들은 모두 바이러스 감염자라는 공통점이 나왔다. 거의 모든 자궁경부암 환자(99%)에게서 이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이 바이러스를 차단하면 자궁경부암에 걸리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세계 의학계는 이 못된 녀석을 자궁경부암의 원인으로 지정했다.

이 바이러스는 성관계로 옮는다. 성생활을 유지하는 모든 성인이 일생 중 한 번은 감염될 수 있다. 성관계를 하는 상대가 많을수록 감염률은 높아진다. 성생활을 하지 않으면 자궁경부암에 걸릴 가능성은 작아지지만 다른 경로로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다. 매우 드문 경우지만 성기를 만진 손으로 악수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무조건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감염자의 70~80%는 별다른 증상 없이 자연 치유된다. 이들은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한 경우다.

문혜성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한 여성 환자에게 자궁경부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대목동병원 제공
작은 구멍 한 개만 뚫고도 수술 가능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이나 자궁 경부에 미세한 손상이 있는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감염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바이러스는 자궁 경부의 세포로 파고들어 번식하는데 이때 세포에 변형이 생기는 증상(이형증)이 발생한다. 이후 5~20년에 걸쳐 자궁경부암으로 발전한다. 즉, 이형증이라는 암 전 단계 기간이 길어서 이 시기에 바이러스를 발견하면 암을 예방할 수 있다. 의사들이 1년에 한 번은 산부인과에서 정기 검진을 받으라고 권하는 이유다.

진단은 간단하다. 의사가 눈으로 자궁 경부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고 전용 솔로 자궁 경부 세포를 채취한 후 현미경으로 관찰한다. 손쉬운 검사법이지만 혈액이나 점액과 같은 이물질 때문에 50%가량 오차가 생긴다. 이 오차를 줄이기 위해 요즘은 세포를 액체에 풀어서 이물질을 제거한 후 현미경으로 살펴본다. 바이러스 검사도 병행한다.

이런 검사로 암이 의심되면 조직검사를 한다. 조직검사로 암이 확진되면 적합한 치료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 MRI(자기공명영상)나 CT(컴퓨터단층촬영) 등으로 병기(1~4기)를 파악한다. 1~2기 초반까지는 수술할 수 있다. 수술로는 치료가 힘든 2기 말 이상은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동시에 진행한다.

이런 치료법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수술 방법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수술할 때 절개를 많이 해서 흉터가 심했지만 요즘은 복강경(내시경 수술)과 로봇으로 흉터가 거의 남지 않는 수술법이 유행이다. 과거에는 방광 등 주변 조직을 손상시켜 소화에 문제가 생기거나 소변이 마려운 느낌을 갖지 못하는 합병증이 생겼지만, 요즘은 주변 신경과 조직에 손상을 주지 않도록 수술 범위를 좁히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김종혁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최근에는 몸에 한 개의 구멍을 뚫어 수술하는 방법(원 포트 수술)도 개발됐고 앞으로 이 수술이 확대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하랄트 하우젠 박사는 1980년대 그 바이러스의 유형이 130여 종에 이르고 그중 두 유형이 자궁경부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 공로로 1988년 노벨상을 받았다. 바이러스와 자궁경부암의 관계가 확인되자 2006년 예방 백신이 개발됐다. 우리 몸에 가짜 바이러스를 넣어 항체가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백신은 몇 개월 간격으로 세 차례 접종해야 한다.

12월2일 엄마와 딸이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를 찾았다. 엄마 김 아무개씨는 “딸이 이번에 대입 시험을 봤고 시간이 남아서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게 하려고 병원에 왔다”며 “언론 등을 통해 자궁경부암은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백신을 접종하면 자궁경부암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자궁경부암은 성관계로 옮는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므로 첫 성관계 이전에 백신을 접종하면 효과가 100%에 가깝다. 이를 근거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주 접종 대상을 만 9~26세로 정했다. 대한부인종양학회도 성 경험이 없는 청소년기, 특히 15~17세에 접종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시기를 놓친 여성이라도 45세까지는 백신 접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연구를 통해 성 경험이 있어도 90% 정도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고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도 받았다.

백신 주사를 맞으면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될까. 자궁경부암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2~4개 바이러스 유형에 대한 예방 효과는 뛰어나지만 나머지 바이러스 유형에 대한 백신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 세계적인 제약사들은 여러 유형의 바이러스까지 예방하는 백신을 현재 개발 중이다. 따라서 만일에 대비해 자궁경부암 검사는 매년 꾸준히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산부인과 의사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WHO “백신 부작용은 드문 경우”

43개 국가는 자궁경부암 백신을 국가 필수 접종 사업으로 정했다. 가장 먼저 이 사업을 도입한 호주에서는 시행 2년 만에 18세 미만 여성에게서 자궁경부암 전 단계(상피내종양)가 74%나 감소했다. 유럽의 24~45세 여성들에게서도 상피내종양이 94% 예방됐다. 미국에선 도입 후 10대 여성의 바이러스 감염률이 50% 감소했다.

일본은 국가 필수 접종 사업으로 정했다가 최근 백지화한 후 시행 시기를 살피고 있다. 자궁경부암 백신 주사를 맞은 10대 일본 여성에게서 이상 반응(다리 떨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 사건을 조사했고, 6월 일본에서 발생한 이상 반응과 백신 접종의 인과관계가 없다고 최종 발표했다. 이 백신의 이상 반응은 400만~900만번 접종할 때 한 번 발생할 정도로 독감 백신의 부작용보다 드문 경우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근육 경직, 마비, 떨림 등의 증상이 1~5건 보고된 바 있다. 일본 사례가 확인된 후 국가 필수 접종을 철회한 나라는 없다.

백신의 예방 효과로 자궁경부암 발생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암 전 단계인 상피내종양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상피내종양은 방치하면 결국 자궁경부암으로 발전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상피내종양 환자 수는 2007년 2만272명, 2008년 2만2250명, 2009년 2만5129명, 2010년 2만6567명, 2011년 2만7171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립암센터가 8월 이들을 조사했더니 젊은 여성이 많았다. 상피내종양이 40대 이상에서는 거의 늘어나지 않았지만 20~30대에선 그 증가 폭이 컸다. 최근 6년간 35세 미만 젊은 여성 자궁경부암 사망자 수는 2.4배 급증했다.

대한부인종양학회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 19~79세 여성 6만775명을 대상으로 한 자궁경부암 바이러스 감염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3명 중 1명(34.2%)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중 성생활이 상대적으로 활발한 젊은 층인 18~29세에서 49.9%를 기록했다. 주웅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생애 최초 성관계 연령이 과거보다 낮아졌고 성관계 상대자가 여러 명인 데다 흡연 여성도 늘어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며 “신진대사가 좋은 어린 나이에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암 위험이 커지고 암 진행 속도도 빠르다”고 지적했다.

자궁경부암 검사와 백신을 접종하는 인구가 적다는 이유도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2011년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기적인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는 여성은 31.6%에 불과했다. 예방 백신을 실제로  접종한 여성은 19.2%로 5명 중 1명도 되지 않았다. 현재 예방 백신은 가격이 15만원 이상(1회 접종)으로 비싸고 세 차례나 맞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조만간 접종 횟수가 줄어들고 가격도 저렴해져서 많은 사람이 백신 접종을 받게 될 전망이다.

현재까지는 예방 백신이 나와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치료 백신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돼 암이 초기 단계인 경우 치료 백신을 투여해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국내 한 제약사도 지난 3월 주사제가 아닌 경구용 치료 백신 후보 물질을 발견했다. 임상시험을 했더니 이 백신을 투여한 사람의 면역력이 강해져 암세포를 죽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한 국내 기업이 이 기술을 사들여 치료 백신을 개발 중이다. 

다음 호에는 요통 편이 이어집니다.

 


ⓒ 시사저널 구윤성
임신한 여성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태아에게도 영향을 미치는가.

바이러스가 태아에게 감염된 사례가 보고된 바는 없다. 물론 출산할 때 아이가 엄마의 분비물을 흡입해서 인·후두로 바이러스가 갈 수는 있지만 그 확률은 거의 없다.

현재는 백신이 주사제인데 경구용으로 만들 수 없는가.

자궁경부암 바이러스는 자궁 경부에만 모여드는 특징이 있어서 근육 주사제가 효과가 있다. 경구용으로 만들면 장에서 흡수하기 때문에 자궁 경부까지 약 효과가 잘 도달해야 하는데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물론 미래에는 지금보다 쉽게 백신을 접하는 방법이 나올 것이다.

현재 세 차례인 백신 예방 접종 횟수를 한두 차례로 줄일 수는 없는가.

백신 주사를 세 번 맞도록 돼 있지만 두 번만 맞아도 세 번 맞은 것과 같은 만큼의 항체가 형성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 두 번 접종하라는 지침은 없지만 유럽에서는 내년부터 성 경험이 없는 소녀들에게는 두 차례 접종을 권고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일본이 국가 예방 접종 프로그램에서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을 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 10대 소녀가 백신 주사를 맞은 후 다리가 떨리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린 것이 문제가 됐다. 백신 주사를 맞고 그런 모습이 나타났다고 하니 일반인은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일본 정부가 그 백신 접종을 국가 필수 접종 프로그램에서 제외했다. 그런데 조금 과장된 면이 있다. 인과관계를 따져본 WHO는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아마비·홍역·뇌염 예방주사도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그에 비해 자궁경부암 백신 부작용은 매우 드물다.

궁극적으로 자궁경부암은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한 암이 되는가.

그렇게 본다. 백신으로 인해 몸에 항체가 생기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궁경부암은 세포검사법이 도입되면서 많이 줄어들었다. 이 암은 전 단계 기간이 길어서 발견할 가능성도 크다. 세포검사로 암이 되기 전에 예방하지만 그보다 먼저 백신으로 1차 예방이 가능해진 것이다. B형 간염 백신으로 간암 발생을 크게 줄인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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