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이야기로 놀라움 안겨줘야”
  • 강성운 독일 통신원·정리 김회권 기자 ()
  • 승인 2013.12.3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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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되리 슈피겔 편집장대리 인터뷰

시사주간지의 위기를 말하지만 슈피겔(der spiegel)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독일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 중 하나로 꼽힌다. 전 세계적으로 매주 100만부 정도가 배포된다. 슈피겔에 권위를 부여한 것은 부수보다 기사의 질이다. ‘슈피겔’은 독일어로 ‘거울’이라는 뜻이다.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슈피겔이 없었더라면 독일의 민주주의는 달라졌을 것이다’라는 평이 빈말이 아닐 정도로, 권력과 스캔들을 향한 비판적인 탐사보도로 유명하다.

정치 이슈에 강하다 보니 고학력·중장년·남성 독자층이 두텁다. 시사저널이 세계 유수의 시사주간지들 가운데서도 특히 슈피겔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시사저널의 독자층이나 추구하는 방향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2002년부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 통화를 감청했다는 폭로를 시작으로 2013년 한 해 동안 전 세계를 뒤덮은 이슈를 촉발시킨 곳이 슈피겔이었다. 슈피겔은 오늘날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시사주간지의 위기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둔 2013년 12월20일, 마르틴 되리 편집장대리와 인터뷰를 가졌다. 슈피겔은 편집장과 방대한 업무를 분담하는 편집장대리를 편집국에 두 명 두고 있다. 되리는 그중 한 명이다. 1987년 슈피겔에 입사한 그는 유명 작가이기도 하다. 2002년 자신의 외할머니가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자녀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책으로 엮었다. <상처입은 영혼의 편지-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유대인 여의사 릴리가 남긴 삶의 기록>(한국판)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19개국 언어로 번역돼 출판됐고 슈피겔의 경쟁지인 ‘디 차이트’조차 “안네 프랑크의 일기에 비견되는 중요한 책”이라고 격찬했다. 저음으로 깔리는 중후한 목소리에 마치 슈피겔의 텍스트를 읽는 듯한 기민한 답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슈피겔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 Maurice Weiss / Der Spiegel
최근 미디어 환경 변화로 한국에서는 시사주간지 시장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독일은 어떤가.

우리도 유사한 상황을 관찰할 수 있다. 슈피겔은 여전히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우리도 판매 부수와 광고 수익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익이 높은 편이라서 슈피겔의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지는 않는다.

슈피겔의 정기 구독자 수는 좀체 줄어들지 않는 듯하다.

정기 구독자 수는 10년 전과 같은 수준이지만 가판과 서점에서 슈피겔을 사는 독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걸 놓쳐선 안 된다. 원인으로는 역시 인터넷이 지목된다. 아마 한국도 비슷할 것이다. 무료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돈을 주고 뉴스매거진을 사볼 필요를 못 느낀다.

인터넷에서 헤드라인만 훑는 방식으로 뉴스를 접하면 저널리즘의 질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무료 저널리즘은 유료 저널리즘만큼 질이 높지 않다. 무료로 뉴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뉴스를 작성하는 데 적은 비용이 투입된다는 것을 뜻한다. 저널리스트(기자)가 조사하고, 현장을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데 투자를 안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슈피겔도 무료로 슈피겔 온라인을 운영하지만 온라인판 작업 환경은 인쇄 매체인 주간 슈피겔만큼 좋지 않다.

‘주간 슈피겔’과 ‘슈피겔 온라인’에서 일하는 기자가 다른가.

월급부터 차이가 난다. 인쇄 매체 기자는 온라인 기자보다 돈을 더 많이 받는다. 슈피겔은 광고 수익뿐 아니라 판매 수익도 거두지만, 온라인 사이트는 오직 광고 수익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쇄 매체인 슈피겔은 어떤 기준으로 기사 아이템을 선정하나. 만약 어떤 사건이 갑자기 터졌을 경우 어떻게 다루나.

우리는 슈피겔 온라인이 있어서 최신 뉴스는 온라인에만 싣는 쪽으로 결정할 때가 많다. 그러나 주간 슈피겔에도 최신 뉴스를 담기 위해 노력한다. 토요일에 발매되는 슈피겔의 마감 시각은 목요일 오후 1시다. 그런데 이번 주(12월 셋째 주)에는 마감 시각을 두 시간 미루기로 했다. 러시아에서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러시아 석유 기업 유코스의 대표였지만 푸틴에 의해 정치범으로 구속됨)의 석방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돌아가던 인쇄기를 멈췄고 비용이 더 들었지만 잡지 제작 과정을 늦췄다. 대신 호도르코프스키의 뉴스를 싣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최신 뉴스를 지면에 싣기 위해 노력한다. 동시에 슈피겔 기사의 질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한다.

2013년 11월 초 슈피겔은 ‘스노든에게 망명을 허하라’라는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실었다. 언론 매체인 슈피겔이 일종의 정치적 압박을 행사한 사례였다.

매우 좋은 사례를 들어주었다. 슈피겔이 보통은 이런 식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묘사하고 비판하지만 정치적인 게임에 직접 뛰어들진 않는다. 하지만 에드워드 스노든의 경우, 편집진은 그가 미국 국가정보국(NSA)의 감시 활동을 밝혀내는 중대한 업적을 이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를 보호하고 도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때문에 예외적으로 우리의 역할을 바꿔 그에게 독일 망명을 허용하라는 주장을 폈다. 우리는 논의를 촉발하고자 했고 실제로 논의가 이뤄졌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슈피겔은 유독 정치 이슈에 집중하는 인상이다. 독자층을 좀 더 넓힐 계획은 없나.

없다. 슈피겔은 평균 이상의 학력자가 주 독자층인 잡지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슈피겔 독자는 타 잡지에 비해 대졸자 비율이 높다. 지금보다 낮은 학력의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슈피겔을 더 쉽고 단순하고 황색 신문처럼 만들 생각은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여성 독자층을 넓히는 것이다. 여성 독자가 너무 적다.

여성 독자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여성 독자에게 어떻게 어필할지 매일 고민한다. 최근에는 여성의 사회 활동, 여성 해방, 여성 커리어 등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오늘 아침 편집회의에서도 이런 주제들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그려낼 수 있을지 길게 논의했다. 전에는 이런 주제를 잘 다루지 않았다.

슈피겔은 탐사보도의 대명사처럼 여겨진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특별한 시스템이나 노하우가 있나.

우리가 가진 자산은 ‘특별한 경험’이다. 우리는 수십 년간 탐사보도를 하고 있고, 많은 경험을 가진 동료들이 있다. 다른 매체에 비해 정부 부처에 출입하거나 정치인·기업인·문화계를 전담하는 취재진이 많다. 우리는 독일 전역에 걸쳐 큰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어 어떤 일이 터지면 남들보다 먼저 알 수 있다. 기술이나 마법으로 이뤄낸 일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결과가 질 높은 탐사보도를 가능하게 했다.

슈피겔에는 ‘아카이브’라는 기록실이 있다고 들었다. 아카이브는 탐사보도에 어떤 역할을 하나.

매우 중요하다. 슈피겔 아카이브는 무엇이 새롭고 무엇이 새롭지 않은지, 배경을 밝혀내는 데 도움이 된다. 아카이브 자료가 새로 알게 된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경우도 있고, (새로운 사실에) 의문을 갖게 하기도 한다. 아카이브에서 일하는 사람만 70명이다. 이들의 업무는 저널리스트들의 취재를 보조하는 것이다. 슈피겔 아키비스트(기록 관리 및 자료 조사자)들은 직접 밖으로 나가 취재를 하지 않는다. 인터넷 조사만 해줘도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카이브에만 70명이 일한다면 전체 편집국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오프라인 편집국에는 210명이 있다. 슈피겔 온라인 편집국은 150명이다. 인쇄판 슈피겔과 슈피겔 온라인은 서로 다른 제품을 만들지만 두 매체 소속 기자들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70명의 기록 관리자를 둔 곳은 세계적으로도 유일하다. 저널리스트를 위해 조사를 전담하는 아키비스트를 70명이나 두는 언론사는 슈피겔밖에 없다. 이들은 기사에 실린 팩트를 체크하고 기사 작성을 위해 팩트를 조사한다. 슈피겔이 기사를 작성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출판되는 모든 텍스트는 기록실의 검토를 거치며, 기사를 작성하기 위한 정보가 처음 만들어지는 곳도 기록실이다.

다른 언론 매체 환경과 비교해보면 꽤 호사스럽게 들린다.

다른 이들도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호사가 아닌, 우리 기사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 조건으로 본다.

슈피겔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는 데 보통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나.

평균 일주일가량이다. 그러나 1시간 만에 급하게 쓰는 경우도 있고, 길게는 6주 동안 한 아이템을 취재해 기사를 쓰기도 한다.

2014년에 20주년을 맞는 슈피겔 온라인은 월 페이지뷰가 10억회에 달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 DPA연합
슈피겔 온라인과 주간지 슈피겔은 어떻게 다른가.

슈피겔 온라인은 별도의 팀이다. 기사의 품질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르다. 슈피겔 온라인 기자들은 훨씬 더 빨리 기사를 작성하고 취재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는다. 대신 주간 슈피겔 기자들은 전 세계를 누빈다. 작업 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텍스트도 슈피겔 온라인은 보통 뉴스처럼 간결하게 쓰고, 언어의 측면에서 슈피겔처럼 철저하게 다듬지 않는다. 슈피겔은 다른 매체보다 나은 표현, 독창적이고 우아한 표현, 위트 있는 표현을 찾고자 노력한다.

슈피겔 온라인은 언론으로서 제대로 기능한다고 보나.

물론이다. 독자가 다르고, 기대하는 것이 다르다. 슈피겔 온라인의 필진은 매체 특성에 정확히 들어맞는 텍스트를 생산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온라인 매체가 저널리즘의 수준을 저하시켰다는 지적이 있다. 온라인 매체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재정이 탄탄해야 한다. 취재를 제대로 하려면 충분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온라인 저널리즘의 품질도 좋아질 것이다. 온라인 매체에 종사하는 저널리스트들도 인쇄 매체의 저널리스트와 똑같이 재능 있고 영리하기 때문이다.

슈피겔 온라인은 지금의 조건을 어떻게 마련했나.

긴 과정이었다. 2014년 슈피겔 온라인은 20주년을 맞는다. 처음 슈피겔 온라인에는 한두 명의 기자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150명이 일하고 있다. 해마다 조금씩 성장한 결과다. 어려운 해도 있었고 퇴보한 해도 있었지만 슈피겔 온라인은 독일에서 수익을 내고 있는 몇 안 되는 온라인 매체 중 하나가 되었다. 처음에는 슈피겔에서 많은 투자를 해야 했지만 현재 슈피겔 온라인은 오로지 광고만으로 매년 수천만 유로의 수익을 내고 있다. 이런 수익을 내게 된 것은 불과 6~7년 전부터다.

시사주간지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다면 내가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다만 매우 좋은 저널리즘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 확실하다. 타협하지 않고 기사의 품질을 고수해야 하며 독자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놀라움을 안겨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승산이 있다. 지면에 기사가 실리는지, 온라인으로 발행되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저널리즘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몇 년간 저널리즘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미래에도 종이로 만든 슈피겔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판매 부수는 줄어들겠지만. 슈피겔 온라인이 좋은 기사를 싣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익을 내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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