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문고리 권력’에 쏠리는 눈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01.0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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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정호성·안봉근 3인방 견제 요구 목소리 새누리당에서도 점차 불만 커져

“청와대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청와대에도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가진 당의 새 지도부가 필요하다.”

시사저널이 새해 벽두인 1월1~3일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수 설문조사에서 의원들은 유독 청와대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한 영남 지역 의원은 “극소수만이 (당·청 간)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그 과정이 공개적이고 투명하면 좋겠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고 하소연했다. 여기서 언급된 극소수의 사람이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들을 의미한다. 이들 최측근의 뿌리에는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이 있다.

청와대 총무비서관·제1부속비서관·제2부속비서관.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과 접촉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은 청와대 비서실장도 경호실장도 아닌, 바로 이들 최측근 3개 부서의 비서관들이다. 청와대의 모든 안살림과 관리를 담당하는 총무비서관과 대통령의 의전 수행을 담당하는 제1부속비서관, 그리고 영부인 등 가족의 의전 수행을 담당하는 제2부속비서관은 업무 성격상 대통령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역대 대통령들마다 이 자리에는 ‘집사’ 성격의 오래된 측근들을 앉혔다. 그렇다 보니 항상 이 자리에서 비리와 관련된 사건이 줄을 이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이 3개 자리에 누가 앉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혹시나’ 했지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친박계 의원들로부터 ‘문고리 권력’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보좌관 출신 3인방이 예상대로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제1·제2 부속비서관으로 나란히 입성했다. 이 인사가 알려지자 친박계 한 핵심 의원은 당시 “어쩐지 역대 정권의 불행했던 역사가 다시 반복될 듯하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총무비서관은 인사와 재무를 관장하기 때문에 청와대 내 모든 권력이 집중돼 있는 곳이다. 대통령과 독대도 자주 하는 탓에 청와대 밖 국정에도 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박근혜정부 초기 ‘밀봉·불통 인사’ 논란이 일 때부터 주목받았다. 이 비서관이 새 정부의 조각 등 각종 인사에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리기도 했다. 이 비서관은 혼외 아들 논란으로 불명예 퇴진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개인정보 유출 의혹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혼외 아들로 지목된 채 아무개 군의 가족관계등록부 불법 조회·유출을 지시한 인물이 바로 총무비서실 소속 조오영 행정관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가는 길목 장악

제1부속비서관과 제2부속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일정과 독대·면담 시간 등을 관장한다. 장관조차도 부속비서관의 허락 없이는 대통령을 만날 수 없다.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를 관리하는 것도 부속비서관의 역할이다. 3인방 중 막내인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을 놓고 ‘그림자 권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 받은 비공식적인 민원들을 처리하는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지난 15년간 박 대통령의 ‘보디가드’ 역할을 했다. 박 대통령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항상 그가 따라다니다 보니, 과거 당 대표나 비대위원장 시절에는 김무성 의원 등 친박계 핵심 인사들과 종종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요즘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이들은 ‘십상시’(청와대 핵심 보직에 배치된 보좌진 출신 비서관 또는 행정관)로 확대됐다. 여기에 새누리당을 장악한 ‘종박’(박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 추종) 의원들이 합세하면서 인의 장막이 형성됐다고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지적했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주요 인사 누구누구가 비서관 3인방과 친하다는 얘기를 여권 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청와대의 ‘왕수석’으로 통하는 이정현 홍보수석이 이들과 친하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돌았다. 한때 박 대통령의 ‘그림자 권력’으로 언론에 회자됐던 정윤회씨가 이들 3인방의 배후라는 얘기도 확산됐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김기춘 비서실장 취임 이후 3인방의 행보가 눈에 띄게 조용해지면서 ‘김 실장이 3인방을 장악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안다. 김 실장은 김 실장대로, 이정현 수석은 이 수석대로, 3인방은 3인방대로 각각의 공간에서 자기 역할을 한다고 한다. 다만 서로 부딪치려 하지 않을 뿐”이라고 전했다. 3인방은 ‘왕실장’의 통제권 밖이라는 얘기다.

문고리 권력에 대한 여권 내 불만은 박근혜정부 초기 ‘논공행상’ 때부터 터져 나왔다. 박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자체가 원천적으로 막혔고, 그 중간에 이들 3인방이 자리하고 있다는 불만이 이른바 ‘개국공신’들 사이에서 나왔다. 인사 문제에서 시작된 불통 논란은 국정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누리당 내에 “대통령의 목소리를 아예 들을 수가 없다. ‘문고리’를 통하기가 쉽지 않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친박계에서 전략가로 통하는 한 인사는 “3인방이 전횡을 일삼는다기보다는 박 대통령 스타일 자체가 그렇다 보니, 이런 주군의 스타일에 맞춰 행동해야 하는 3인방이 욕을 다 뒤집어쓰는 경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청와대 비서진 개편설이 나돌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 “이번 기회에 문고리 3개 부서의 수장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고리 권력의 확장판인 십상시 중에서 6월 지방선거에 나서려는 이들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 비서진 중 몇몇이 지방선거 출마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집권 2년 차 ‘3인방’의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역대 ‘문고리 권력’의 초라한 뒤안길 


지난해 9월 초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이명박(MB) 정권 인사들 몇몇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MB 정권 최고 실세 중 한 명이었던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부인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라했다. 김 전 실장은 당시 저축은행 비리 사건에 연루돼 영월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장례식장에는 귀휴를 얻어 간신히 참석할 수 있었다.

한때 대통령 곁에서 실세로 군림했던 문고리 권력들은 권력무상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김영삼(YS) 정권에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지낸 장학로 전 실장은 기업인·공무원·정치인 등으로부터 27억원을 받은 혐의로 1996년 전격 구속됐다. 이는 YS 정권 레임덕의 신호탄이 됐다. 당시 15대 총선을 앞두고 있던 여당에는 비상이 걸렸고, 청와대를 원망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YS의 영원한 집사로 불리던 홍인길 총무수석도 한보그룹 로비 혐의로 구속을 면치 못했다.

김대중(DJ) 정권에서도 문고리 권력과 관련한 구설이 끊이질 않았다. 실제 동교동 자택의 집사 역할을 했던 이수동 아태재단 상임이사가 DJ 정권 마지막 해인 2002년 이용호 G&G그룹 회장으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당시 DJ는 아들의 비리 혐의까지 더해지며 집권 말기 급격한 레임덕에 빠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집권 첫해인 2003년부터 당시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청주의 한 나이트클럽 업자로부터 향응을 받아 논란을 일으켰고, 두 달 뒤에는 노 대통령의 친구인 최도술 당시 총무비서관이 SK로부터 11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노무현 정권에 큰 흠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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