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론 못살겠다, ‘메뚜기 떼’는 돌아가라”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4.01.1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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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반중국’ 운동 심각…중국은 ‘영국의 개’라고 비난

지난해 12월26일 홍콩특별행정구의 홍콩 섬 센트럴(中環). 남성 6명이 영국 식민지 시대 홍콩 국기를 들고 중국 인민해방군사령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홍콩인 우선’이라는 단체에 소속된 이들은 “군용 부두 건설을 반대한다” “해방군은 홍콩에서 철수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부대 진입을 시도했지만 위병의 제지로 실패했다. 1997년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홍콩인이 군부대 진입을 시도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올해도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1월3일 40대 남성이 주둔군 사령부 정문을 통해 부대로 돌진했다. 위병에게 체포된 남성은 곧바로 홍콩 경찰에 넘겨졌다. 1월5일에는 50대 여성 한 명이 사령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체포됐다. 진입 시도와 시위가 잇따르자 홍콩 경찰은 사령부 주변 경계·검색을 강화했다.

새해 첫날인 1월1일 홍콩 시민 6000여 명이 빅토리아 공원에서 센트럴까지 행진하며 정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AP 연합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이다”

최근 홍콩 내 반중(反中)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중국을 싫어하고 반대하는 움직임은 줄곧 있었지만, “중국에서 독립하자”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온 건 매우 이례적이다. ‘홍콩인의, 홍콩인에 의한, 홍콩인을 위한 나라를 건국하자’고 외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홍콩인들도 증가해 심각성이 더하다.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정치단체는 ‘홍콩자치운동’ ‘조리농무란화계(調理農務蘭花系)’ ‘홍콩인 우선’ 등 3곳이다. 이들 단체는 각기 다른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지만, 모두 중국의 홍콩 통치를 반대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단체는 ‘홍콩자치운동’이다. 2011년 5월 결성돼 현재 수천 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 의회 의원, 대학교수 등 유명 인사도 포함됐다. 홍콩 독립에는 반대하면서도 완전한 자치와 자유방임을 요구한다.

‘조리농무란화계’는 영국과 중국 그리고 중국의 ‘꼭두각시’인 홍콩 정부 모두를 반대하는 급진적인 단체다. 광둥(廣東)어의 욕을 단체명으로 채택한 이들은 ‘홍콩인만의 정권 수립’을 목표로 한다.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10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했고, 수백 명이 수시로 거리에 나와 시위를 벌일 정도로 응집력이 강하다. 중국이 홍콩을 통치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의 기본 틀인 ‘홍콩기본법’과 홍콩 정부의 타도를 외쳐왔다. 최근에는 홍콩 의회인 입법회에 회원을 진출시키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홍콩인 우선’은 1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사회단체 ‘나는 홍콩인’에서 2012년 분리돼 결성됐다. 지난해 7월 주둔군 사령부 앞에서 중국 군기(軍旗)를 불태우는 의식을 치러 주목받았다. 현재 회원은 수백 명에 불과하지만 서구식 자유방임을 주장하며 세력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대다수 홍콩인은 그동안 이들 정치단체의 주장에 큰 관심이 없었다. 반면 홍콩은 아시아에서 한국과 더불어 NGO(비정부 기구)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정치단체들이 생활에 기반을 둔 사회운동으로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홍콩인 우선’도 홍콩 정부가 신하이빈(新海濱) 지역에 군용 부두 등 군사 시설을 만들려고 하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처럼 정치단체들이 생활 밀착형 이슈로 기반을 넓혀가게 된 배경에는 홍콩인의 뿌리 깊은 반중(反中)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5월 홍콩 대학이 시민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5.6%가 ‘중국인에게 반감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2007년부터 관련 조사를 실시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2012년 6월 같은 대학이 실시한 정체성 조사에서도 46%가 자신을 ‘오직 홍콩인으로만 여긴다’고 답했다. 1997년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다. ‘오직 중국인으로만 생각한다’는 응답자는 18%에 불과했다.

홍콩 반환 16주년이었던 지난해 7월1일에는 홍콩 도심에서 무려 43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행진이 열렸다. 소나기가 쏟아진 악천후 속에서도 시위 참가자들은 대오를 이탈하지 않고 대대적인 정치 개혁 단행을 요구했다.

홍콩인들은 홍콩 정부 수장인 행정장관에게도 등을 돌리고 있다. 2012년 7월 취임한 렁춘잉(梁振英) 장관은 60%대 지지율로 임기를 시작했지만, 지난해 12월 지지율은 42%로 떨어졌다. 자택에 불법 구조물을 세운 사실이 드러났고 휘하 각료가 주택 사기와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렁 장관은 불법 구조물을 철거하고 공개 사과했지만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지 못했다. 심지어 렁 장관을 ‘신뢰할 수 없고 교활한 늑대’에 비유하며, 반정부 집회에서 봉제 늑대 인형을 던지는 일이 요즘 크게 번지고 있다.

홍콩인들이 지닌 사회·경제적 불만은 더욱 심각하다. 중국인이 대거 이주하면서 부동산 가격은 급등했고, 병원·학교 등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지난 10년간 홍콩에 정착한 중국인은 50만명이다. 전체 홍콩 인구 700만명의 7%에 달한다. 이주한 중국인의 사재기 탓에 2009년 이후 지난해 3월까지 홍콩 부동산 가격은 120%나 올랐다. 또 다른 골칫거리는 원정 출산을 하러 온 중국 산모들이다. 이들이 공립뿐만 아니라 사립 병원까지 점령하면서 정작 홍콩 산모가 출산할 병원을 찾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해 1월부터 공립 병원들이 중국 산모를 받지 않기로 하면서 분란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홍콩에서 낳은 중국 아이들이 홍콩 학교에 다니려고 다시 건너오면서 새로운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한 학급당 평균 28명이던 학생 수가 5~10명 정도 증가했다. 이 때문에 교육의 질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홍콩에 오면 홍콩 문화 존중하라”

이주민뿐만 아니라 관광객도 원성의 대상이다. 2003년부터 중국인의 홍콩 자유 여행이 허용된 이후 2012년 12월까지 1억명의 중국인이 홍콩을 찾았는데, 이는 단체 관광객을 포함하지 않은 숫자다. 중국 관광객이 뿌리는 돈으로 홍콩 내수는 활기를 찾았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싹쓸이식 쇼핑, 공중질서 문란 등 반사회적 행태에 홍콩인들의 염증이 커졌다. 2012년 2월 홍콩 일간지 ‘빈과(?果)일보’에 난 광고는 홍콩인의 불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거대한 메뚜기가 바위산 위에서 홍콩 시내를 내려다보는 설정으로, 중국인을 메뚜기 떼에 비유했다. 광고 하단의 카피는 이랬다. ‘홍콩에 오면 홍콩의 문화를 존중하라.’ 당시 광고는 한 네티즌이 인터넷으로 모금을 해 실었는데,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돼 10만 홍콩 달러(약 1370만원)가 모금됐다.

이런 홍콩 내 반중 분위기에 대해 중국인도 반발하고 있다. 2012년 1월 쿵칭둥(孔慶東) 베이징 대학 교수는 한 TV토론회에서 “홍콩의 법치 제도는 영국 식민주의의 잔재”라며 “홍콩인은 말 잘 듣는 개”라고 비난했다. 군부대 진입 시도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중국 네티즌들은 “위병은 침입자에게 총격을 가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홍콩이 완전한 자치를 누리거나 독립을 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홍콩인과 중국인 사이에 깊어가는 감정의 골을 치유하지 않으면 일국양제는 허울뿐인 통합으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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