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존재감만으로도 힘 불끈 솟는다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1.2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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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박지성과 3월 월드컵팀 복귀 담판 히딩크 “더욱 원숙한 플레이 펼치고 있다” 군불

대표팀과 2년 넘게 거리를 뒀던 박지성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박지성은 2011년 1월 열린 아시안컵이 끝난 뒤 이영표와 함께 축구 국가대표 은퇴를 선택했다. 산이 큰 만큼 골이 깊었다. 박지성 은퇴 후 대표팀은 적잖은 혼란을 겪었다. 아직도 그의 자리는 메워지지 않고 있다. 대표팀이 부진하면 팬들은 박지성이 주역이던 시절을 먼저 떠올린다. 월드컵까지 5개월을 남겨두고 홍명보 감독은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를 타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 축구와 월드컵을 기다리는 국민들이 다시 박지성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박지성 복귀 카드는 홍 감독이 긴 시간 준비해온 월드컵 성공을 위한 한 수다. 그는 1월8일 “부임 직후부터 생각해왔다. 박지성을 직접 만나 대표팀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겠다”고 말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경험 많은 수비수가 필요하다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요구에 당시 코치였던 홍명보 감독은 베테랑 최진철의 대표팀 복귀를 이끌어낸 바 있다.

ⓒ SCS/PENTA PRESS
홍 감독 입장에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복귀 제안 시점이었다. 국가대표 은퇴 후에도 박지성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항상 “복귀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때마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동안 “선수의 입장을 존중한다”며 입을 다물고 있던 홍명보 감독은 2014년 해가 떠오르자 공식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월드컵 본선 무대만 나서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지성의 입장은 어떨까. 박지성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인 부친 박성종 JS파운데이션 상임이사는 “그동안 대표팀 관계자, 특히 감독이 직접 지성이에게 의견을 물어본 적은 없다. 홍 감독은 지성이가 존경하는 선배다. 허심탄회한 얘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 역시 박지성과 마찬가지로 대표팀 복귀에 늘 회의적이었지만 감독이 직접 나선다는 얘기엔 지금까지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언론과 여론의 일방적 바람이 아닌, 대표팀 감독의 직접적인 요청에 박지성 측도 다시 한 번 고민하겠다는 뜻을 보인 셈이다.

서른셋 박지성, 월드컵에서 통할까

박지성은 한국 축구사에서 유례없는 선수다. 30대 초반이고 유럽 무대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으며 대표팀에서의 필요성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스스로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많은 것을 이뤘던 박지성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편으로는 현역이기 때문에 대표팀에 복귀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늘 대두됐다.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은퇴식이 열리지 않은 것도 그런 기대가 남아 있어서다.

중요한 것은 박지성이 대표팀을 은퇴한 이유다. 그에 따라 홍명보 감독이 설득할 여지가 달라진다. 공식적으로는 ‘커가는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준다’였지만 실제로는 A매치를 위해 수시로 비행기를 타고 장시간 이동하는 것이 수차례 수술을 했던 무릎에 부담이 됐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당시 소속 팀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현재 은퇴)도 “더 좋은 컨디션으로 팀에 집중해달라”는 요청을 한 바 있다. 만일 박지성이 국가대표 은퇴를 택한 이유가 후자라면 홍명보 감독이 충분히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선수가 부담을 느끼는 부분을 최소화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홍명보 감독이 생각하는 박지성의 합류 시기는 월드컵 본선 직전이다. 국내에서 소집해 평가전을 치르고 브라질로 넘어가 적응 훈련과 최종 평가전을 치르면 곧바로 대회에 돌입한다. 월드컵을 위한 그 한 달가량의 시기는 유럽 축구가 시즌을 마치고 휴식을 갖는 때와 맞물린다.

한편으론 박지성의 경기력이 과연 현 시점에서 대표팀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냐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국가대표 은퇴 당시와 비교했을 때 박지성은 분명 정점에서는 내려온 상황이다. 당시 만 30세였던 그는 이제 33세다. 30대에 접어들면 대다수 선수에게 경기력 저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2011년은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여전히 주전급 선수로 활약하던 때다. 하지만 2011-2012시즌 들어 팀 내 입지가 줄어들었고 결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퀸즈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해 치른 2012-2013시즌에는 박지성의 커리어에 암흑기라 할 정도로 큰 추락을 경험했다. 프리미어리그 사상 첫 외국인 주장이라는 영광된 타이틀을 안고 시즌을 시작했지만 팀은 와해됐고 부진을 거듭하다 결국 강등을 경험했다. 시즌 도중 감독 교체를 경험한 박지성은 주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다행히 지난해 여름 자신이 유럽 생활을 시작했던 친정팀 PSV 에인트호번으로 임대를 떠난 박지성은 과거 자신의 동료였던 필립 코쿠 감독의 절대적인 믿음 속에서 경기력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아약스와의 라이벌전에서 박지성은 이름값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많은 사람이 그의 부활을 기대했다. 그러나 9월 말 AZ알크마르전에서 상대 수비의 반칙에 발목을 다쳤고 2개월가량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12월 초 복귀한 박지성은 현재 스페인에서 진행 중인 팀의 전지훈련에 참가하며 후반기를 준비 중이다.

현 시점에서 박지성의 경기력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최근 홍명보 감독을 보좌할 새로운 코치로 대표팀에 합류한 네덜란드 출신의 안톤 두 차티니어 코치는 “여전히 높은 수준의 선수다. 대표팀에 오기 전 아약스의 기술이사를 만났는데 왜 박지성을 대표팀에 데려가지 않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국을 방문해 무릎 수술을 받은 거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는 전적으로 선수 의지에 달렸다는 전제 아래 “두 차례 따로 만남을 가졌고 경기도 직접 봤다. 더욱 원숙한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지성에 기대하는 가장 큰 효과는 개인의 경기력을 넘어 팀 전체를 일으키는 것이다. 현재 대표팀엔 절대적인 구심점이 없다. 홍명보 감독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는 인상을 줄 정도다. 홍명보 감독 취임 후 하대성·구자철·이청용이 대표팀 주장을 맡았지만 선수에게 확실한 동기를 심어주고 팀 전체를 하나로 뭉쳐서 이끌고 가기엔 부족했다. 단순히 주장 완장이 주는 상징이 아니라 경기력·인성·이름값에서 존경을 받을 선수가 필요하다. 박주영이 그에 해당하는 경우였지만 소속 팀 아스널에서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며 홍명보 감독도 그를 부르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2006년의 지단처럼…박지성 기대 효과

만일 박지성이 대표팀에 합류한다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대표팀의 핵심 선수는 하나같이 박지성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인정하고 그의 복귀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남아공월드컵 당시 박지성은 행동하는 리더십으로 역대 최고의 주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모범적인 행동은 후배들이 따라야 하는 교본이자 원칙이 됐기 때문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의 대표팀 복귀 효과를 톡톡히 봤다. 스타가 즐비했지만 구심점이 없어 흔들리던 프랑스는 지단의 복귀로 팀이 하나가 됐고 스페인·브라질·포르투갈을 꺾고 결승에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세대교체라는 과제 속에서 베테랑이 물러나지만 결국 큰 무대에서는 그들의 경험과 영향력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예다. 물론 현 상황에서 박지성에게 무조건적으로 주전을 담보할 수는 없다. 현재 대표팀의 허리에는 이청용·기성용·구자철·손흥민·이근호·김보경 등 박지성보다 젊고 강한 선수가 있다. 벤치에 앉아 있는 베테랑은 자칫 그에 대한 불만으로 팀을 와해시키기도 한다. 베테랑의 존재가 갖는 양날의 칼이다. 하지만 헌신의 아이콘인 박지성이라면 그런 부분조차 상쇄될 것이란 전망이다. 하나 된 팀을 가장 강조하는 홍명보 감독으로서도 많은 베테랑 중 유독 박지성을 부르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은퇴를 번복하고 대표팀에 복귀했다가 오히려 기대에 못 미치면 박지성에게 역풍이 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홍명보 감독은 만에 하나 비난이 쏟아질 경우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입장도 보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은퇴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선수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던 홍명보 감독은 박지성의 고민과 걱정을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이다. 선수 입장을 전적으로 존중하겠다는 대원칙을 세운 홍명보 감독은 박지성의 의사를 직접 타진한다. 지난 세 차례의 월드컵에서 매 대회 골을 기록하며 성공을 견인한 박지성이 과연 자신의 네 번째 월드컵으로 가는 문을 열게 될까. 3월로 예정된 홍명보 감독과 박지성의 만남에 많은 이의 촉각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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