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없는데… 홍명보호 걱정되네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2.1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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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미국에 완패…‘국내파=기량 부족’ 여론 고조

히딩크 감독과의 평행이론일까, 평가전 패배라는 겉모습만 닮은 부진일까. 1월 해외 전지훈련을 통해 축구 대표팀의 완성도를 높이려 했던 홍명보 감독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지훈련 성과를 확인하기 위한 평가전에서 멕시코, 미국에 잇달아 패배하며 여론의 직격탄을 맞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던 히딩크 감독도 이 시기에 평가전에서의 연패로 큰 위기를 겪었다. 12년 전과 달라진 것이라면 국내파에 대한 불신이라는 새로운 암초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의 1월은 대표팀에게 중요한 시간이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부터 이 시기에는 K리그 각 팀의 협조를 얻어 유럽·남미 등으로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기 때문이다. FIFA(국제축구연맹)가 인정하지 않는 장기 합숙이기에 각 팀과 선수는 차출을 거부할 수 있다. K리그 팀 입장에서도 동계 훈련 기간과 겹쳐 팀의 핵심 선수가 빠져나가는 건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월드컵 성공’이라는 대승적 목표 아래 축구계 전체가 희생하고 협력한다.

홍명보 감독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3명의 선수를 소집해 월드컵이 열리는 브라질과 미국을 거치는 3주간의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월드컵 기간 동안 베이스캠프로 활용할 브라질의 포즈 도 이과수에서 체력 훈련을 실시한 홍명보호는 미국으로 건너가 실전 중심으로 2차 훈련을 가졌다. 북중미 축구의 빅3인 코스타리카·멕시코·미국을 상대로 한 평가전이 대표팀을 기다렸다.

1월27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LA 콜리세움에서 홍명보 감독이 훈련 도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멕시코전 0-4, 홍 감독 취임 후 가장 큰 점수 차

브라질 전지훈련의 성과를 확인하겠다던 평가전은 되레 홍명보호에 대한 여론의 역풍을 불러왔다. 코스타리카와의 첫 평가전에선 1-0으로 승리했지만 멕시코에는 0-4, 미국에는 0-2로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멕시코전은 홍명보 감독 취임 후 가장 큰 점수 차 패배였다. 대패 뒤 치른 미국전은 만회의 기회였지만 선수들의 발은 무거웠고 득점을 하지 못한 채 전·후반에 각각 실점을 하며 연패했다. 홍명보 감독이 강조해온 강한 압박과 빠른 스피드, 조직적인 패스 플레이의 한국형 축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실점 장면에서 수비진은 실수를 반복했고 공격 과정은 단조로움의 연속이었다.

이런 부진에 히딩크 감독의 사례를 언급하며 믿음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12년 전 히딩크 감독도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큰 위기를 맞았다. 북중미 골드컵에 참가해 치른 5경기에서 1승 1무 3패를 기록했다. 그나마 1승도 승부차기 승리였다. 뒤 이은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도 패하자 팬은 물론 축구인까지 일어나 히딩크 감독의 방식을 거세게 비난했다.

히딩크 감독은 “체력 훈련과 실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다.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며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파워 프로그램’으로 불린 강도 높은 피지컬 훈련으로 선수를 극한에 몰아넣은 상황에서 테스트했다. 5개월 후 대표팀은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월드컵 4강에 진출했고 히딩크 감독을 향했던 비난은 깨끗이 사라졌다.

이번 전지훈련에서도 대표팀은 LA와 샌안토니오를 오가며 긴 이동 거리, 시차, 전혀 다른 기후까지 극복해야 했다. 홍명보 감독은 “힘든 상황에서 선수들이 얼마나 버틸 것인가를 주목했다”며 히딩크 감독처럼 결과보다는 과정에 무게를 두었다.

히딩크 감독 때의 학습 효과가 있음에도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당시와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12년 전 대표팀은 전지훈련에 대다수 주력 선수를 불러들였다. 부상 중이던 홍명보와 황선홍, 유럽에서 뛰던 해외파인 안정환과 설기현 정도가 빠졌다. 장기 합숙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현재 대표팀은 주력 대부분이 빠졌다. 해외파를 거의 소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일월드컵 이후 대표팀 내의 해외파 비중은 꾸준히 높아져 현재는 스쿼드(팀)의 절반에 달한다. J리그가 중심이던 해외파의 활동 무대는 유럽으로 옮겨갔다. 기성용·이청용·손흥민·홍정호·김영권·구자철 등이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골키퍼와 측면 수비를 제외하면 나머지 포지션은 주전이 모두 해외파로 구성된다. 지난해 10월과 11월 A매치 당시 소집된 해외파는 전체 스쿼드의 65%였다.

자연스레 1월 전지훈련 효과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 1월 전지훈련 멤버의 60%가 월드컵에 참가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는 40% 수준이었다. 이번 전지훈련에 소집된 해외파는 J리그에서 뛰는 김진수와 김민우 둘뿐이었다. 골키퍼 3인방, 오른쪽 측면 수비수 이용, 공격 주요 옵션인 김신욱과 이근호 정도를 제외하면 본선에 갈 정도로 경쟁력이 강한 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월드컵에 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멤버가 20% 수준으로 더 떨어졌다. 실제로 홍명보 감독 자신도 이번 전지훈련을 앞두고 “월드컵에 데려갈 엔트리의 80%가량은 결정됐다”는 말로 이런 상황을 대변했다. 자연스럽게 전지훈련에 참가한 선수의 동기 부여에 문제가 발생했다. 월드컵에 가지 못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어떤 의욕을 갖고 기나긴 훈련에 임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그것이 경기 내용과 결과로 증명됐음을 부정할 수 없다.

2월1일(현지 시각) 미국에서 열린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과 미국 대표팀의 평가전. 미국에 선제골을 허용한 한국팀이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멕시코·미국 아니라 양박(兩朴)에 무너졌다?

홍명보 감독의 추가 실책도 있었다. 그는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를 추진하겠다는 발언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미 3년 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박지성에게 마지막 희생을 요청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전지훈련을 앞두고 미디어와 팬의 관심은 모두 박지성의 반응에 쏠렸다. 박지성은 “대표팀 복귀 가능성은 0%”라고 회신했다. 홍 감독은 “박지성의 의중을 확인하려 했을 뿐 복귀를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홍 감독이 이미 결론이 난 문제를 무리하게 꺼냈다며 실망감을 나타냈다.

박주영의 대표팀 선발에 대한 논란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멕시코·미국과의 평가전을 준비하던 시기는 유럽 축구의 1월 이적 시장 마감과 겹쳤다. 소속팀 아스널에서 기회를 찾지 못하던 박주영이 이적을 택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국 박주영은 임대를 통해 2부 리그의 왓포드로 향했다. 홍명보 감독은 “이적을 했다고 무조건 선발하진 않지만 대표팀엔 잘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전지훈련 기간 동안 온통 유럽에 있는 ‘양박’에만 쏠린 관심이 다른 선수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평가전 연패 이후 분위기도 대표팀에게는 고민거리다. K리그에서 뛰는 선수를 중심으로 꾸려진 대표팀의 실망스러운 경기력에 ‘국내파는 경쟁력이 없다’는 낙인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K리거들은 억울할 법도 하다. 12월 초에 시즌을 마치는 K리그는 1, 2월에 다시 몸을 만들고 경기 감각을 끌어올려 새 시즌을 준비한다. 전지훈련이 열린 1월은 몸 상태와 경기력이 가장 떨어지는 때다. 기량을 100%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여론에 철저히 노출되는 A매치를 거듭하다 보니 평가가 더 나빠졌다. 이로 인해 국내파에 대한 불신이라는 큰 흐름이 생겨났다. ‘국내파로는 안 된다. 믿을 것은 해외파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더 공고해진 모습이다. ‘국내파=기량 부족’이라는 나쁜 공식이 탄생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자국 리그 자체에 대한 평가절하로 이어진다. 선수의 소속팀 입장에서는 정작 새 시즌을 위한 동계 훈련도 빼먹고 대표팀에 보냈는데 사기만 떨어져서 돌아오는 상황을 맞게 됐다. 실제로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해외파가 K리그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유럽으로 진출했는데 그런 사실은 외면된 채 이분법만 적용되고 있다. 기성용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파문 등으로 인해 본격 등장한 국내파와 해외파의 조화라는 문제가 형태를 바꿔 대표팀을 흔들고 있다.

전지훈련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미국전이 끝난 후 홍명보 감독은 “3월에 있을 그리스전은 유럽에 있는 선수를 불러 정예 멤버로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 속에 이미 국내파 다수가 배제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3월5일 열리는 그리스전은 FIFA가 공인한 A매치 데이에 열려 모든 선수의 차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번 전지훈련에 참가했던 선수 중 몇 명이 다시 부름을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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