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은 뭘 했나
  • 윤길주 편집국장 ()
  • 승인 2014.02.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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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 전 청장의 대선 개입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지난해 4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수사 당시 김용판 전 청장의 수사 방해가 있었다고 폭로한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현 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은 “충격적인 결과”라고 했습니다. 권 과장이야 자신이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셈이 됐으니 당연한 반응으로 보입니다.

1심 판결 후폭풍이 거셉니다. SNS와 인터넷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편이 갈려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법원이 현 정권에 면죄부를 주었다”고 비난합니다. 한편에서는 “사법부를 정쟁에 끌어들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민주당은 핵 펀치를 맞은 듯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당 지도부는 국가기관 대선 개입과 관련한 특검 도입을 주장하지만 맥이 빠진 모습입니다. 차 지나간 뒤에 야단법석을 떨며 자중지란에 빠진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새누리당은 안중에도 없는 듯 “꿈도 꾸지 말라”며 여유만만입니다.

큰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있을 때마다 정치권에서 치고받는 것을 일상으로 봐온 터라 새삼스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 사안을 놓고 이렇게 상반된 행태를 보이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고 국민은 갈가리 찢겨 있다는 징표입니다.

정파적 이해에 따라 사법부를 시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국회가 스스로 3권 분립 제도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법원의 판단에 대해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떠드는 사례를 무수히 봤습니다.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이에 관한 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김용판 무죄’가 나오기까지 검사들은 뭘 했나.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무기력을 따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당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이 ‘외압’을 놓고 충돌할 때부터 국가기관 대선 개입 수사는 “볼 장 다 봤다”는 얘기가 나돌았습니다. 채동욱 검찰총장 낙마→윤석열 수사팀장 수사팀 배제·징계→좌천 인사 등이 일사천리로 이뤄지자 법무부·검찰의 ‘의도’를 의심하는 이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재판 과정을 봐도 검사들이 유죄를 이끌어내기 위해 전력투구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여러 차례 공소장이 변경되고 검찰의 논리는 재판부에 의해 번번이 깨졌습니다. 최근에는 정치권 실세들이 국정원 인사와 대선 직전 통화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그 실세들의 이름을 빼고 법원에 증거로 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중요한 간접 증거를 검찰 스스로 묵살한 셈입니다. 외압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재판은 이제 1심이 끝났습니다. 재판부도 밝혔다시피 실체적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수사팀은 항소심 재판에서 공소 유지를 위해 혀를 깨무는 각오를 해야 할 것입니다. 수사에 윗선이 개입해서도, 그런 인상을 풍겨서도 안 됩니다. 결과가 어찌 나오든 그것만이 땅에 떨어진 검찰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길입니다. 김용판 전 청장의 말처럼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진리를 검찰이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그것이 법의 정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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