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회장은 상생 외치고 직원들은 협력사 내칠 계획 짜고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2.18 10: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롯데제과 작성 ‘협력업체 21곳 정리 문건’ 단독 입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08년 10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롯데 공정거래협약 선포식’을 열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환율 인상과 원자재 가격 상승 압박에 시달리는 중소 협력업체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금융기관과 연계한 네트워크론을 통해 중소 업체에 1000억원을 지원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롯데그룹 계열사 사장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상생 경영’과 ‘동반 성장’을 외치기 시작했다. 협력업체 방문도 잇따랐다. 신 회장이 협력사와의 동반 성장을 선포한 지 1년가량 흘렀다.

롯데제과는 2010년 9월 영세 외주 협력업체에 대한 대대적 정리 작업에 착수했다. 이러한 사실은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롯데제과 내부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협력업체 운영 개선(案)’이라는 제목이 붙은 문건으로 2009년 9월22일 생산기획팀에서 작성했다. A4용지 10장 분량으로 단계별 협력업체 정리 시나리오뿐 아니라 예상 문제 및 대응 방안이 포함돼 있다. 비슷한 시기에 신 회장과 롯데그룹 계열사 CEO들이 경쟁적으로 동반 성장을 외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2008년 10월 열린 ‘롯데 공정거래협약 선포식’에서 신동빈 당시 롯데그룹 부회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롯데제과 “부실 협력업체 방치할 수 없지 않나”

시사저널은 이 내부 문건의 작성 경위 등을 롯데제과 측에 물었다. 롯데제과 측은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외주 업체 정리 작업이 실제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문제의 보고서는 결재가 나지 않고 폐기됐다. 검토 과정에서 끝났기 때문에 협력업체 정리도 실제로 진행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내부 문건의 첫 페이지에 매니저와 팀장, 부문장, 사장의 결재란이 있지만 서명은 비어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외주 업체 납품 제품의 품질 문제는 소비자 피해와 직결된다”며 “롯데 브랜드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업체를 평가하고 정리해 품질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 문건을 검토한 결과는 달랐다. 미리 짜인 각본에 따라 협력업체를 부당하게 찍어 내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협력업체의 물량을 끊을 경우 법적 분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까지 마련했다. 문건은 ‘(롯데제과가) 최저임금을 제외한 인상 요인을 (협력업체의) 외주 단가에 반영하지 않았다. 외주 업체와 이미 합의가 진행된 사안도 하도급법상 분쟁 소지가 있다’며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문제 해결을 위해 외주 단가에 대한 당사(롯데제과) 대응안을 사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먼저 단가 문제를 협력업체와 합의한 후 거래 종료를 진행해야 뒤탈이 없다는 것이다.

문건은 ‘경영이나 금전적 피해 등의 사유로 대상 업체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롯데가 정리 검토 및 대상으로 선정한 업체는 모두 21곳이다. 이 중 12개 업체를 우선적으로 정리할 계획이었다. 이 경우 50억원 규모의 제조 원가 절감 효과가 있다고 문건에 나와 있다. 전년 대비 0.4% 수준이다. 정리 대상 업체 중에는 롯데제과 매출 의존도가 100%인 업체도 6곳이나 포함돼 있다. 거래가 종료되면 협력업체 사장은 물론이고, 종업원도 일터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반발해 롯데제과 측에 민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문건은 ‘분쟁 방지 사전 합의서는 민사상 효력이 있다’며 ‘거래 종료 업체별로 각서 및 확인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거래 종료가 불가피했다는 상황을 입증할 객관적 자료도 확보해야 한다’고도 했다.

문건은 심지어 ‘1개 업체 이상 거래 종료 시 담합 반발 가능성이 있다’며 ‘업체 상호 간의 단체 결성을 통한 법적 대응 가능성도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계별로 거래를 종료시켜 협력업체의 집단 반발을 완화시키는 방안을 대비책으로 제시했다.

구체적인 시나리오도 언급돼 있다. 2010년 2월까지 우선적으로 7개 업체를 정리하고, 8월과 12월에 각각 3개와 2개 업체를 정리한다는 내용이다. 설득 가능 업체와 설득 불가능 업체도 나눴다. D실업 등 5개 업체는 설득 가능 업체로 분류됐다. 이들 업체는 물량을 점진적으로 축소한 후 드롭(Drop·정리)시키고, 설득 불가능 업체로 분류된 7곳은 법적 분쟁 대책을 마련한 뒤 일괄 통보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2009년 9월 롯데제과 생산기획팀이 작성한 협력업체 정리 문건. ⓒ 시사저널 이종현
“집단 반발 우려 3단계로 나눠 협력업체 정리”

이런 식으로 롯데제과는 2010년 12월까지 12개 협력업체를 정리할 계획이었다. 롯데제과의 주장처럼 계획이 이행되지 않았다고 해도 ‘갑’의 횡포를 부리려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기간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 주도로 ‘협력사와 동반 성장을 위한 사장단’ 회의를 개최했다. 2013년 5월에는 코스피에 상장된 식음료 기업 중에서 상생 경영을 가장 잘하는 업체로 롯데제과가 선정됐다. 하지만 뒤에서는 원가 절감을 위해 치밀하게 협력업체 정리를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롯데제과는 한국 롯데의 모회사라고 할 수 있다. 그룹 내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조4555억원이다. 유통 부문 지주회사 격인 롯데쇼핑의 20분의 1 수준이다. 2010년에는 식음료 부문 계열사인 롯데칠성음료에도 매출이 역전당했다. 그럼에도 신격호 총괄회장은 2세들에게 지분을 승계하면서 롯데제과 지분만은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롯데제과의 오너 일가 지분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6.83%로 최대 주주다. 그다음은 신동빈 회장(5.34%), 신동주 롯데홀딩스(일본 롯데) 부회장(3.73%), 신영자 롯데문화재단 이사장(2.52%) 순이다.

본지 취재 결과 롯데는 겉으로는 상생 경영과 동반 성장을 내세우면서 뒤에서는 잇속 챙기기에 바빴다. 롯데제과가 협력업체의 외주 단가를 후려친 정황도 내부 문건을 통해 일부 드러났다. 현재 해당 업체들이 입을 닫고 있어 사실 확인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기업 전문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롯데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롯데제과는 보고서를 폐기했다지만 일부 식품 계열사는 롯데제과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외주 업체 정리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