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서현이가 국민 분노 깨웠다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4.03.0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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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 폭행으로 사망 120일…아동학대 솜방망이 처벌에 경종

지난해 10월24일 울산 울주군의 한 아파트에서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소풍을 가고 싶다”는 의붓딸을 계모가 무차별 폭행해 여덟 살 이서현양이 사망했다. 갈비뼈 24개 중 16개가 부러졌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렀고, 서현이는 결국 폐 손상과 출혈로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계모 박 아무개씨는 멍 자국을 빼기 위해 숨진 아이를 욕조에 넣고 구조대에 신고했다. 또 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해 소풍 도시락을 식탁 위에 펼쳐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고는 “아이가 목욕하다 욕조에 빠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구조대가 시신 상태를 보고 경찰을 불렀고, 추궁 끝에 박씨는 범행을 자백했다.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울산 서현이 사건’이다.

계모와 함께 사는 동안 서현이는 병원에 수십 번을 들락거렸다. 타박상, 두개골 내 손상, 대퇴골 골절, 피부 감염, 2도 화상, 치아 맹출. 병원에서조차 ‘상세 불명의 원인’이라 판단한 이 많은 진료 기록은 한 아이, 서현이의 것이었다.

계모의 폭행으로 사망한 서현이의 생전 모습. 건강할 때(아래)와는 달리 학대를 받은 후(왼쪽) 눈에 띄게 야윈 것을 알 수 있다. ⓒ 하늘소풍 카페 제공
하지만 서현이가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항상 밝은 모습의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다. 그 웃음 뒤에는 서현이가 겪어온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집은 편안한 안식처도, 믿을 수 있는 공간도 아니었다. 서현이는 화상 흔적을 가리기 위해 면장갑을 끼고 학교에 갔다. 허벅지 뼈가 부러져 절뚝거리면서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러나 아무도 ‘학대’를 의심하지 않았다. 계모 박씨가 학부모회장까지 자처하면서 서현이의 학교생활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극성 엄마’였던 탓이다. 5년의 세월 동안 박씨의 이중적인 그늘에서 서현이를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맞을지 모른다’ 두려움에 입 꾹 닫아

무자비한 계모의 폭행에 시달렸지만 서현이는 반항할 능력도, 피할 체력도 없었다. 그저 소나기 같은 폭력을 몸으로 받아낼 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않은 아이들은 자신의 위험을 외부로 알리기 어렵다. ‘위험을 알리면 또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이들을 괴롭힌다. 서현이도 폭행에 대해 입을 꾹 다물었다.

2010년 서현이가 친부·계모와 함께 경북 포항시에 살던 당시, 어린이집 교사가 포항 아동 보호 전문 기관에 학대 사실을 신고했다. 씻기다 발견한 서현이의 온몸은 상처와 멍투성이였다. 기관의 면담을 거쳤지만 격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아동학대로 판정이 나더라도 격리 여부를 결정하려면 두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수십 개의 질문을 통해 위험 정도를 측정하고, 학대 행위자의 의지와 기타 상황을 고려해 판단을 내린다. 계모 박씨가 잘못을 인정했기 때문에 격리 보호 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관찰’의 커튼 뒤에서 서현이는 지속적인 학대를 받았다. 2011년 인천으로 이사한 후에는 그 관찰마저도 없어졌다. 포항으로부터 이관받은 인천의 아동 보호 기관이 연락을 취했으나 계모가 상담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2012년 2월 울산으로 간 후부터 학대는 더욱 심해졌고, 서현이의 마지막 희망은 그렇게 사라졌다.

서현이가 떠난 지 120일, 한 아이의 죽음은 세상을 어떻게 바꿨을까. 서현이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이 모여 포털 사이트 네이버 카페에 ‘하늘소풍(하늘로 소풍 간 아이를 위한 모임)’을 개설했다. 카페에 참여한 엄마들은 서현이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1인 시위와 서명 운동이 이어졌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자 검찰은 검찰시민위원회 논의를 통해 이 사건을 ‘살인죄’로 기소했다. 2월11일 열린 2차 공판에서는 전국에서 온 수십명의 회원이 “살인자” “사형”을 외치며 계모 박씨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아이 살해해도 ‘학대 치사’ ‘상해 치사’ 기소

지금까지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은 살인죄가 아닌 ‘학대 치사’나 ‘상해 치사’로 기소됐고 형량도 미미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사망한 ‘성민이 사건’의 경우 가해자인 원장에게 업무상 과실 치사로 징역 1년6개월이 선고돼 지탄을 받기도 했다.

지난 2월27일 최종 판결이 난 ‘소금밥 사건’은 계모가 여섯 살 난 딸에게 소금을 섞은 밥을 대접에 담아 먹인 것으로도 모자라 아이의 토사물과 대변까지 먹여 결국 ‘소금 중독으로 인한 전해질 이상’으로 사망케 한 사건이다. 학대 치사로는 유례없이 10년형이 선고됐으나 “이걸로는 부족하다” “애초에 살인으로 기소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서현이의 친모인 심 아무개씨는 2월11일 3차 공판 날 법원 앞에서 삭발식을 했다. 심씨는 “서현이를 죽인 박씨에게 10년 이하의 형량이 구형되면 법원 앞에서 분신이라도 할 것이다. 내가 이런다고 해서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가 돌아오지는 않는다. 다시는 학대로 피해를 입는 아이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한 해 동안 10명의 아이가 아동학대로 목숨을 잃었지만, 학대는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2003년 한 해 3000건이던 아동학대 신고가 2012년에는 1만 건을 넘어섰다.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한 아동복지법이 2012년 8월부터 시행됐지만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과태료를 부과한 적이 없다. 울산시가 ‘서현이 사건’ 이후 피해 아동 사례와 관련된 신고 의무 불이행자에 대해 과태료를 물릴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결국 공염불이 됐다. 학대의 정황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가장 가까이에서 아이를 보호해야 할 배우자 및 동거자들에게도 학대에 대한 처벌이 없다. 책임을 회피하려 “몰랐다”로 일관하는 서현이 친부를 처벌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서현이의 죽음에 연관돼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지만, 학대를 방치한 친부를 법원이 어떻게 처리할지 미지수다. ‘소금밥 사건’의 경우 아이가 소금에 중독돼 사망하는 순간까지도 아이를 방치했으나, 방임행위를 학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친부에게 무죄 판결이 선고됐다.

아동 보호 기관의 강제력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공혜정 하늘소풍 대표는 “아동 보호 기관에 학대 부모들을 교육시키는 권한을 줘야 한다”며 “상담을 거부할 경우 교육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 권고가 아니라 명령 수준이 돼야 아이들이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는 대부분 가정에서 일어난다. 학대 부모가 집 안에서 문고리를 걸어 잠그면 아동 보호 기관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진다.

지난해 12월31일 아동학대 사망 땐 최대 무기징역으로 처벌하는 ‘아동학대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계류 중이던 법안이 ‘서현이 사건’ 이후 국민들의 분노에 못 이겨 통과된 것이다. 오는 3월11일 ‘서현이 사건’의 피고인인 계모 박씨에 대한 검찰 구형이 예정돼 있다.  ‘살인죄’로 기소된 계모 박씨에 대해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 주목된다.

3월4~5일에는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사진전’이 열린다. 학대당한 아이들의 사진을 전시함으로써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기 위해서다. ‘하늘소풍’과 공동으로 사진전을 주관한 염동열 의원은 “아동학대 공소시효를 늘리고, 아이들을 이용해 보험금을 노리는 사기 행각을 가중 처벌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봄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얼굴에 미처 지워지지 않은 멍이 남아 있지는 않을까. 신고의무자들의 신고를 강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손길을 애타게 찾는 아이들이 우리 곁에 많다는 메시지를 서현이는 남기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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