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도 하나의 인생, 방에 가둬놓아서는 안 된다
  • 네덜란드 호그벡=강성운 통신원 ()
  • 승인 2014.03.0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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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로 인해 우리 사회에 그늘이 생기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치매로 인한 자살 또는 살인은 매년 늘어나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안타까운 사연은 훨씬 더 많다. 치매 환자 보호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8%가 직장을 그만두거나 근무 시간을 줄였다는 대한치매학회의 보고는 그 심각성을 말해준다. 치매 환자의 증가 속도에 비해 정부의 대응은 더디고, 관련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에 가장 부합하는 게 치매다. 가족이 치매 환자를 도맡아 보호하고 관리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시사저널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치매 환자의 천국’ 네덜란드의 호그벡 마을을 밀착 취재한 이유다.

ⓒ De Hogeweyk 제공

“무릎 두 번 치고, 왼발 빼고, 무릎 두 번 치고, 오른발 빼고….”

머리를 붉게 염색한 운동치료사가 큰 소리로 율동을 가르쳐주었다. CD플레이어에서는 시르타키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시종 웃음 띤 얼굴로 참가자들과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둥글게 모여 앉은 열두 명의 노인 중 동작을 제대로 따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치매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식 기타 선율이 울려 퍼지는 이곳은 네덜란드 베스프(Weesp)에 위치한 드 호그벡(De Hogeweyk) 마을이다. 온라인에서 ‘치매마을’로 더 많이 알려진 치매 노인 요양시설이다. 지난 4년간 미국의 CNN·뉴욕타임스, 독일의 ZDF·슈피겔, 영국의 BBC·가디언 등 세계 유수 언론이 이곳을 취재했다. 국내에도 지난해 CNN 영상이 소개되며 화제가 된 바 있다. 치매 문제는 이제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시사저널이 한국 언론 최초로 이곳을 직접 찾아가 취재했다.

시사저널이 지난해부터 취재 요청을 했으나, 마을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모든 시스템이 입주자인 치매 노인 중심으로 운영되는 이곳 특성상 그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가 엿보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취재 승인을 받은 날짜는 지난 2월19일. 이날 오전 11시 본지 취재진은 베스프 역에 닿았다.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열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이 마을은 전형적인 베드타운(bedtown)이다. 역 바로 앞에 3층짜리 연립주택이 늘어서 있었다. 오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다만 주차장에 어림잡아 1000대쯤 되는 자전거가 세워져 통근 시간의 분주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호그벡은 베스프 마을 북쪽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겉보기에 특별할 것 없는 적갈색 벽돌 건물이 아파트 단지와 도로변에 접해 있었다. 그러나 건물을 따라 한 바퀴 걷는 동안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다. 가로 세로 각각 80~100m가량 되는 흡사 ‘성벽’과 같은 건물에 출입구가 단 한 군데뿐이라는 것이다. 리셉션 직원은 밖으로 나가려는 입주자가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세 겹의 자동문을 열어주었다.

“치매 노인들도 삶의 재미 느낄 수 있어야”

치매마을에 들어서자 ‘영화 세트장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작은 벽돌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서 있었다. 입구 왼편에는 슈퍼마켓·레스토랑·맥줏집·문화센터가 들어선 2층짜리 상가가, 오른편 광장에는 분수대와 극장, 사무실이 있었다. 정면으로는 폭이 5m쯤 되는 호그벡의 ‘중앙로’가 나 있었다. 미용실, 음악 감상실, 진료실 등이 모여 있는 곳이다. 중앙로 위로 아직 크리스마스 전구 장식이 빛나고 있었다.

극장에서 이본 반 아메롱겐 품질관리·혁신 담당자와 엘로이 반 할 시설관리자가 독일 각지에서 온 저널리스트와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 아메롱겐은 오늘날의 호그벡을 만든 주인공이다. 지금 치매마을이 들어선 자리에는 원래 6층짜리 평범한 요양원이 있었다. 반 아메롱겐은 이 시설의 간호사였다. 1992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했을 때 그녀의 머릿속을 가장 먼저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우리 요양원에 오지 않으셔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에게도 충격적인 반응이었다.

아메롱겐은 요양원 경영진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인 1993년부터 이 요양원은 생활양식(Life Style)이 비슷한 노인들이 공동 거주하는 형태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 재건축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경영진과 직원들은 전혀 새로운 콘셉트의 요양시설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반 할은 2002년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그는 ‘자유와 일상성’을 호그벡의 핵심적 가치로 꼽았다. 반 할은 “호그벡의 모든 것이 ‘치매 노인도 자유로이 생활하고 활동하며 삶의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가치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이 호그벡의 건축물이다. 2002년 설계 입찰에 세 개의 설계사무소가 참여했다. 이 중 네덜란드의 ‘몰레나르 & 볼 & 반 딜렌’이 고층 건물 대신 작은 마을을 짓자는 안을 내놓았다. 입주자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최대한 일상성을 보장하려는 의도가 돋보였다. 1993년에 도입된 ‘생활양식별 주거 공동체’라는 콘셉트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이었다. 6층짜리 건물은 3년간의 공사를 거쳐 지난 2009년 광장과 거리, 골목길이 있는 치매마을로 새롭게 태어났다. 공사비는 총 1920만 유로. 이 가운데 1780만 유로는 국가가 지원했다. 나머지는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극장을 나서자 아무런 제지 없이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는 한 노인이 보였다. 첫 번째 자동문이 열렸다. 그러나 그를 알아본 리셉션 직원이 나머지 두 개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리셉션 직원들은 거주자의 면면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 노인은 곧 극장 앞 광장으로 돌아와 방문객들 곁을 서성거렸다. 이곳 노인들은 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지 않는다.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앉아서 쉴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전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노인들에게 바깥세상은 위험 천지다.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넘어져 크게 다칠 수도 있다. 그러나 호그벡은 개관 후 처음 눈이 내린 날 모든 입주민에게 야외 활동을 권했다. 미리 통행에 지장이 없도록 눈을 치워둔 덕이다. 반 할은 “안전 수칙을 위반한다고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위험도 인생에 속한다. 위험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지, 입주민들을 방에 가둬놓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얘기를 하는 동안 한 입주자가 극장 앞 의자에 앉아 잠시 햇볕을 쬐었다.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환자와 관리사가 채소를 다듬고 있다. ⓒ De Hogeweyk 제공

호그벡에서는 152명의 노인이 6~7명씩 한 집에서 같이 생활한다. 서유럽에 흔한 이른바 ‘주거 공동체’다. 거실과 주방은 공동으로 쓰고 각자의 침실은 따로 있다. 욕실과 화장실은 3명씩 나눠 쓴다. 이러한 주거 공동체가 23가구 있다. 거주자의 70%는 여성이다. 호그벡에서 특이한 점은 입주자들이 ‘생활양식’에 따라 모여 산다는 것이다. 반 아메롱겐은 “서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익숙한 환경에 모여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입주자끼리 스트레스도 덜 받고 서로 간의 갈등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각 가구는 ‘도시적’ ‘전통·수공업적’ ‘가정적’ ‘인도네시아풍’ ‘중·상류층’ ‘문화적’ ‘기독교적’ 등 7개의 생활양식에 맞춰 꾸며졌다. 입주자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작성한 설문지를 토대로 호그벡이 두 개의 생활양식을 추천하면 입주자와 보호자가 두 곳을 둘러본 후 그중 가장 적합한 형태를 선택한다.

15번지는 중·상류층 생활양식을 테마로 만들어진 집이다. 반 할은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늦게 일어나서 늦게 잠자리에 든다”고 설명했다. 호그벡의 모든 입주민은 자신에게 익숙한 생활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며 산다. 정해진 시간에 억지로 함께 식사를 하거나 잠자리에 드는 일은 없다. 가족들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호그벡 밖으로의 외출은 주로 가족과 한다. “지금은 다들 클래식 음악 감상 활동을 하러 갔다”면서도 반 할은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기다린 후에 문을 열었다. 금색 실크 벽지, 샹들리에와 자수가 놓인 소파, 원목 가구로 꾸민 이 집은 보수적이고 격식 있지만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다용도실에 보관된 와인이 눈길을 끌었다. “거실은 70㎡, 집 전체는 320㎡”라는 반 할의 설명 때문인지, 부동산중개인과 집을 보러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거실 창가에는 긴 식탁이 놓여 있었다. 구석의 벽장에는 요양관리사와 간호요원이 사용하는 컴퓨터가 들어 있었다. 상주 간호요원들도 사무실이 아닌 거실 탁자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일을 한다. 낮에는 집집마다 4명의 간호요원과 요양관리사가 교대로 살림과 간호를 맡고 있다. 야간(오후 10시~오전 7시)에는 간호요원 4명과 시스템 관리자 1명이 호그벡 전체를 담당한다. 식사·청소·목욕 등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각 가구마다 보조 인력이 2명씩 추가된다.

입주자 가치관·생활 습관 고려한 아파트

거실 양쪽 복도를 따라가면 침실에 이른다. 방문마다 방 주인의 사진과 이름이 붙어 있었다. 굵게 웨이브 진 단발머리에 금테 안경을 쓰고 니트로 된 카디건에 목걸이로 멋을 낸 한 부인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스미트라는 이름이었다. 가까이에서 플래시를 터뜨린 탓인지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문을 열자 방문 뒤에 걸려 있던 두툼한 회색 샤워 가운이 흔들거렸다. 선반 위에는 은발머리가 엉겨 붙은 빗이 놓여 있었다. 옷장 문에는 바닷속 인어공주와 크리스마스 선물을 열어보는 여자아이 그림이 붙어 있었다. 손녀의 솜씨인 듯했다. 등받이를 세울 수 있는 침대 발치에는 원목 탁자와 꽃병, 등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다.

방문 위쪽에 붙어 있는 상자가 무엇인지 묻자 반 할은 “야간에 입주자의 거동을 살피기 위한 마이크”라고 알려주었다. 복도에는 동작감지기도 설치되어 있다. 밤중에 코고는 소리가 갑자기 멈추거나 방문을 열고 나간 입주자가 돌아오지 않는 등 이상 상황이 감지되면 시스템 관리자가 요양관리사나 간호요원을 보낸다.

15번지 바로 건너편은 ‘모차르트 음악 감상실’이다. 숄을 두르고 모자를 쓴 할머니들이 앉아 있었다. 한 노인이 쿠키를 든 손으로 창밖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운동치료실에서 뜻밖에 낯익은 얼굴을 마주쳤다. 스미트 부인이었다. 동작을 따라 하려 애는 쓰지만 잘 안 되는 눈치였다. 사진에서처럼 당황한 눈빛으로 운동치료사를 바라보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기타 선율은 야속하게도 점점 빨라졌다. 반 할은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호그벡에는 총 35개의 동호회가 있다. 미술, 요리, 카드 게임 등 정적인 활동이 주를 이루지만 인근 도시로 나가서 수영을 할 수도 있다. 전문 강사와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수업을 진행한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은 120여 명. 이들은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치매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입주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교육을 받는다.

마지막으로 한 집을 더 방문하기로 했다. 상가 뒤편에 2번지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나 있었다. 풀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길옆에는 장작이 키 높이만큼 채워진 창고와 작은 통나무 의자가 있었다. 사방이 집과 벽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앞마당에는 큼직한 화분이 벌써 푸르렀다. 벨을 누르자 간호요원이 문을 열며 반겼다. 2번지는 전통적·수공업적 생활양식을 테마로 만들어졌다. 2번지 입주민들은 15번지 입주민들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호그벡의 환자들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 호그벡에는 이런 동호회가 35개나 있다. ⓒ De Hogeweyk 제공

“한국은 치매 노인을 환자로 보고 있는가”

여초(女超) 마을인 호그벡에서 유일하게 남성 입주자가 더 많은 집이었다. 식탁에는 세 명의 노인이 앉아서 저마다 말없이 신문을 보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청회색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한 노인이 다가와 방문객들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독일에서 왔다”는 대답에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다른 노인은 뜻밖의 방문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자기 방을 보여주겠다고 자청했다. 15번지에 사는 스미트 부인의 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열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손주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거실로 나오니 양복을 입은 노인이 반 할에게 “어디서 왔느냐, 네덜란드 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묻고 있었다. 그는 현관 앞까지 따라 나와 “커피라도 마시고 가라”고 했다. 맞은편 집 창가에서도 한 노인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천천히 손을 흔들어주었다.

독일을 비롯해 영국·스위스 등 유럽 각국에서는 이미 호그벡을 모델로 삼은 치매요양소가 계획 중이거나 건립 중이다. 반 할은 “우리의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접근 방식을 배워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나라마다 문화와 가치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반 아메롱겐은 “치매가 공격성을 보이는 방향으로 올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주거 공동체가 적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격성과 우울증은 요양원 생활 자체가 원인인 경우도 있다. 호그벡에도 공격적인 입주자가 있지만 많이 누그러졌다”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요새와 같은 호그벡에도 바깥 사회로부터 변화의 바람은 불어온다. 호그벡은 최근 기독교적 생활양식을 없애고 도시형 생활양식을 적용한 가구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한 채뿐인 기독교 콘셉트의 주거 공동체는 3개월 정도만 기다리면 입주가 가능한 반면, 6채나 되는 도시형 가구에 들어가려면 길게는 1년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시민들에게 호그벡의 이상을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반 할은 물음으로 답했다. “한국에서는 치매 노인을 어떤 존재로 보고 있는가? 환자로 보고 있는가?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주체로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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