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아, 다시 한 번 널 믿어본다”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3.0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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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칼’ 박주영, 홍명보호 반전 카드 될지 관심

어쩌다 박주영이라는 이름이 논란의 한가운데 섰을까. 2004년 만 19세의 나이에 ‘천재’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박주영은 박지성 이후 세대를 이끄는 선두 주자로 손색이 없었다. 한국 축구의 희망, 새 가능성 등 모든 게 함축돼 있었던 아이콘을 둘러싼 지금 상황은 그를 대표팀에 뽑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팽팽한 양립이다. 그리고 홍명보 감독은 월드컵을 위한 마지막 테스트의 장에 드디어 박주영이라는 양날의 칼을 뽑아 들었다.

박주영의 최근 3년은 우여곡절의 연속이다. 2011년 8월 ‘장밋빛 희망’인 줄 알았던 아스널 이적은 그의 축구 인생 중에서 고난기를 열었다. 프랑스 무대에서 기량을 증명한 박주영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함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양대 명장으로 꼽힌 아르센 벵거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박주영은 2월19일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한 3월 그리스와의 평가전 국가대표 명단에 포함됐다. ⓒ 연합뉴스
아스널에서 등번호 9번을 받을 때만 해도 그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주전 스트라이커 로빈 판 페르시(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맹활약을 펼치자 박주영은 제한된 기회만 얻었다. 데뷔전이었던 볼턴과의 리그컵 4라운드에서 멋진 결승골을 넣었지만 그 후에는 프리미어리그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각각 1경기 출전하는 데 그쳤다. 아스널에서 성공을 기대했던 박주영도, 그를 응원했던 팬도 냉혹한 현실을 경험해야 했다.

2012년 3월에는 병역 문제와도 얽히며 ‘축구밖에 모르던 성실한 청년’이라는 이미지도 손상됐다. 박주영은 유럽 무대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AS 모나코 시절 팀을 지원하는 모나코 왕실로부터 10년 장기 체류 자격을 획득했다. ‘영주권 제도가 없는 국가(모나코 해당)에서 5년 이상 장기 체류 자격을 얻은 경우 만 37세까지 국외 여행 기간 연장 허가로 병역을 연기할 수 있다’는 병역법에 의해 박주영은 2022년까지 병역을 연기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박주영이 유럽에서의 선수 생활 연장을 위해 법을 악용했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병역 연기 의혹으로 논란이 이는 상황에서 박주영은 당시 최강희 감독이 이끌던 국가대표팀 소집에도 불응해 파장은 더욱 커졌다. 대한축구협회가 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박주영에게 해명 기자회견을 강요한 것이 발단이었으나 협회의 연락을 회피한 박주영의 대표팀에 대한 태도도 적잖은 비판을 받았다. 당시 상황을 정리한 것은 홍명보 감독이었다.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던 홍 감독은 동메달 획득이라는 과제 달성을 위해 와일드카드로 박주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직접 박주영을 만난 홍 감독은 선수의 의중을 확인한 후 기자회견에 동석해 “박주영이 정당한 방법으로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내가 책임지겠다”는 말로 해결사를 자처했다. 박주영은 경기 감각 회복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개인 훈련을 시작했다.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박주영은 일본과의 3, 4위전에서 환상적인 선제골을 터뜨리며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합법적으로 병역 문제까지 해결하며 논란을 종결시킬 수 있었다.

아스널 이적 후 기나긴 침체기… 팬심마저 흔들

런던올림픽을 통해 다시 영웅으로 등극한 박주영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셀타비고로 임대를 떠나며 국면 전환을 노렸다. 2012년 9월 홈 데뷔전에서 골을 넣으며 순조롭게 적응하나 싶었지만 중도에 감독 교체라는 변수를 만났고 부상까지 겹치며 다시 한 번 실패를 맛봤다. 2013년 여름 아스널로 복귀한 박주영은 이적이 불가피하다는 대부분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팀에 잔류했다. 2013~14시즌 상반기에 박주영에게 주어진 기회는 리그컵 교체 출전 10분이 전부였다. 결국 박주영은 지난 1월 말 2부 리그인 챔피언십의 왓포드 FC로의 임대 이적을 택했다.

2011년 AS 모나코를 떠난 후 박주영은 소속팀에서 꾸준히 출장한 기록이 없다. 이것이 그의 대표팀 선발을 둘러싼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기량이 출중해도 경기 감각이 부족한 선수를 선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국가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홍명보 감독 역시 지속적으로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지 않는 선수는 경쟁력이 없다”고 말하며 박주영 선발을 미뤄왔다.

그러나 홍 감독의 속내는 그를 뽑을 최적의 타이밍과 명분을 기다린 것이라는 게 축구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2년 런던올림픽을 거치며 박주영에 대한 홍 감독의 신뢰가 각별해진 만큼 그가 회복될 수 있는 시기를 재고 있었다는 것. 그런데 박주영이 좀처럼 상황을 풀지 못하면서 홍 감독은 결국 지난 11월 있었던 러시아·스위스와의 평가전에서도 그를 뽑지 못했다.

결국 홍명보 감독은 명분과 원칙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유럽 클럽 소속인 탓에 1월 전지훈련에도 박주영을 소집할 수 없었던 홍 감독은 그를 월드컵에 데려가기 위해선 3월 그리스전에는 무조건 뽑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김신욱·지동원 등 다른 원톱 자원에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박주영은 여전히 활용 가치가 높다. 그리스전은 월드컵 체제로 5월 말부터 6월 사이 치르는 평가전에 앞서 갖는 마지막 테스트 무대다. 그러나 박주영은 전혀 상황을 전환시키지 못했고 홍 감독은 자신의 원칙에 거스르는 선수 선발을 한 셈이 됐다.

전문가들 “감독이 원하는 선수라면 뽑아야”

이에 대해 축구계 인사들은 “홍명보 감독이 지나치게 원칙을 고수할 필요 없이 원하는 선수라면 선발해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차범근 SBS 해설위원은 “실전 무대에 나서진 못했지만 지속적으로 훈련을 소화했고 엔트리에도 몇 차례 들어갔다. 이것은 박주영이 준비가 됐다는 의미다. 대표팀에 불러서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 국가대표팀 감독인 최강희 감독(전북 현대)은 “지금 우리가 가진 스트라이커 자원 중 월드컵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선수는 박주영·김신욱·이동국 정도다. 감독이 원한다면 여론에 끌려가지 말고 소신껏 뽑아야 한다”고 밝혔다. 고려대 시절 박주영을 지도한 조민국 울산 현대 감독 역시 “기량만 놓고 보면 박주영은 최우선 카드다. 월드컵은 최상의 전력으로 가야 한다. 감독은 선수 선발에 후회를 남기면 안 된다”며 현실적인 선택을 당부했다.

홍명보호는 현재 월드컵으로 가는 여정 중 가장 험난한 시기에 처했다. 지난 1월 가진 브라질·미국 전지훈련 중 치른 평가전에서의 부진으로 대표팀과 홍 감독에 대한 신뢰는 많이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주영은 대표팀에 대한 대중의 의구심에 불을 붙이는 불쏘시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홍 감독은 그리스전을 앞두고 박주영을 선택했다. 그가 국가대표팀 감독에 취임한 이후 첫 소집이다. 왓포드 FC로 임대되면서 경기에 출전할 가능성은 높였지만 지난 한 달 동안 선발 출전은 단 한 차례에 불과했고 특별한 활약도 없었다. 대중의 불신은 점점 확대돼 홍 감독이 박주영을 편애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보낼 정도다. 박주영이 대표팀에서 어떤 활약을 펼치느냐가 홍 감독을 살릴 수도, 벨 수도 있다.

2012년 박주영에 승부수를 던진 홍 감독은 동메달이라는 잭팟을 터뜨렸다. 2년여가 흐른 지금 박주영의 상황은 당시보다 나쁘다. 경기력 회복에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홍명보 감독은 한 번 더 박주영을 믿기로 했다. 최고의 재능을 지녔지만 3년 가까운 시간을 허비한 박주영은 홍명보호를 살리는 반전의 조커가 될 것인가. 3월5일 새벽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는 박주영의 국가대표팀 복귀전이 그 가능성을 알려주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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