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김한길·안철수에 기습당하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3.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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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당권파 통합 선언으로 야권 지각변동

‘김정은의 속마음, 박근혜의 창조경제, 안철수의 새 정치’. 한때 인터넷에 우스갯소리로 떠돌던 ‘도무지 알 수 없는 3가지’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돼 농담처럼 회자됐다. 바로 ‘민주당의 미래’다. 그만큼 민주당은 미래를 점치기 힘들 정도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던 민주당이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과의 깜짝 통합 발표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시작은 괜찮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새누리당과 박빙으로 나타난다. 민주당의 표정은 모처럼 ‘밝음’이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새누리당 지지율에 육박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어색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위)이 2월2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한길 대표 옆을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지방선거 후 분란 일어날 수도”

하지만 모두가 마냥 웃을 수는 없다. 새정치연합의 김성식 위원장은 이미 신당을 같이할 뜻이 없음을 밝혔고, 윤여준 의장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대권 야망을 품은 ‘잠룡’들로서는 이번 야권 빅뱅에 따른 구도 변화를 주시하며 주판알을 열심히 튕겨야 한다. 특히 이번 통합을 주도한 민주당 당권파와 안철수 진영에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온 ‘친노’의 대표 주자 문재인 의원이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새로운 통합 야당 탄생으로 촉발될 야권의 지각변동은 좀처럼 점치기 힘든 상황이다.

민주당 내 주요 계파의 ‘수장급’들은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운영위원장의 ‘통합 신당’ 발표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입장을 내놓았다. 발표 당일인 3월2일 문 의원은 측근 윤호중 의원을 통해 “무공천 결정을 적극 지지하고 통합 선언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손학규 고문도 “야권 분열에 대한 유권자들의 걱정을 덜어주는 통합에 환영한다”고 했다. 통합에 대한 민주당 내 두 대권 주자의 입장은 ‘환영’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됐다.

손학규 고문으로서는 이번 통합이 ‘환영할 만하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중도적 성향의 손 고문은 안철수 위원장, 김한길 대표와 큰 노선 충돌 없이 손잡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비노’ 진영으로 분류되는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손 고문으로서는 미래가 불투명했던 기존 구도보다는 판이 커지는 게 좋은데, 그런 의미에서 이번 통합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라고 말했다. 손 고문은 현재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지만 원내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세력을 갖고 있다. 한 사회단체 인사에 따르면, 손 고문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은 파괴력 있는 의제를 개발하며 그의 ‘화려한 귀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손 고문도 결국 색채가 비슷한 안철수 의원과 대권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운명이다.

친노 측 대권 주자 문재인 의원의 경우 손 고문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겉으로는 ‘환영’했지만 속내는 복잡할 것이라는 게 민주당 안팎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앞서의 민주당 관계자는 “당이 자중지란의 전조가 있던 상황이었다. 선거 전에 당이 어떻게 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했는데 이번 통합으로 그런 우려를 씻었다”며 “문 의원으로서는 어깃장 놓을 분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해서 일단 ‘오케이’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라고 전했다.

친노 측이 통합 신당과 함께 가는 데 걸림돌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가치관’과 ‘대권 경쟁’이다. 당권파인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위원장이 만들어낸 신당은 중도적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지배적이다. 우선 이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 색채가 강한 ‘친노’ 진영과 충돌이 예상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친노)과 안철수는 궁극적으로 같이 갈 수 없다. 생각 자체가 다르다. 안철수·김한길·손학규가 손을 잡으면 (친노가) 당권을 잡기도 여의치 않고 분란이나 분당이 일어날 소지도 있다. 지방선거까지는 조용하겠지만, 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면 7월 재보선 즈음에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대권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면 친노라도 통합 신당과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은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손학규 고문도 민청련계이고, 안철수 진영에도 운동권이 상당수 있다. 조율만 잘하면 충분히 섞여갈 수 있다”며 “문제는 대권 욕심이다. 정권교체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섞이는 데 어려움이 없겠지만 대권 꿈을 꾸고 있다면 곤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 ⓒ 연합뉴스
“친노, 나가지 않고 당권 위해 싸울 것”

문재인 의원은 이미 대권 도전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문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뛰었던 사람들도 ‘2012년 못 이룬 꿈’을 잊지 않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 소속이었던 한 정치권 인사는 “아직까지도 당시 캠프에 몸담았던 사람 중 몇 명이 정기적으로 모이고 지금도 무슨 일이 있으면 단체 문자를 돌린다. 당시 캠프 때 같이 일했던 사람 중 상당수가 민주당 이곳저곳에 몸담고 있다. 어디에도 없지만, 반면 또 모든 곳에 있는 것이 친노”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내가 아는 친노는 당을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유시민의 실패 사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단 당 안에서 당권을 잡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친노가 어떤 식의 움직임을 보일지는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6·4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친노 세력이 당권을 되찾기 위해 반격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명분이 없기 때문에 친노 의원들이 탈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고 안철수 의원이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시끄러워질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문재인 의원이 쟁쟁한 대권 주자들과 겨뤄 당권 경쟁에서 경쟁력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는 이번 통합과 관련한 ‘친노 배제론’을 경계하고 있다. 자칫 통합 분위기에 ‘재 뿌리기’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박광온 민주당 대변인은 신당이 친노 진영을 배제하려 한다는 언론 보도들에 대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수준”이라고 성토했다. 유독 보수 진영에서 친노 배제론을 집중적으로 내놓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현재 눈에 띄는 친노 배제 움직임은 없다. 그럼에도 이런 보도가 나오는 데는 뭔가 음모가 있다는 게 민주당 측 시각이다. 그러나 친노가 신당에서 잡음 없이 같이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민주당 내부에서도 물음표를 던지는 이가 꽤 많다.

친노의 운명은 키를 쥔 문재인 의원이 대권 주자로서 안철수·박원순·손학규 같은 경쟁자들을 넘어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또 다른 대권 잠룡 안희정 충남도지사나 곧 귀국하게 될 ‘리틀 노무현’ 김두관 전 지사를 중심으로 친노가 뭉치거나 다른 캠프로 흡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에 오랜 기간 몸담아온 한 고위 당직자는 향후 친노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동교동계 실세 보좌진 출신 현직 의원들 중에서 지금 자기가 동교동계였다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큰 권력이 없어지면 결국 사람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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