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들 눈이 빛난다, 이젠 평창이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03.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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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컬링 여자 대표팀 인기몰이…섬세한 우리 ‘낭자군’에 딱 맞는 종목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의 깜짝 스타는 컬링이었다. 정확히는 컬링 여자 국가대표팀.

스킵 김지선(27), 이슬비(26), 신미성(36), 김은지(24), 엄민지(23·이상 경기도청)로 이뤄진 컬링 여자 대표팀은 소치올림픽에서 ‘컬스데이’ 또는 ‘컬링돌’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인기와 관심을 모았다.

더 중요한 것은 올림픽 경기 중계를 통해 일반인들이 컬링이라는 경기의 재미를 알게 됐다는 점이다. 대표팀 맏이인 신미성 선수는 “전에는 컬링이 뭐냐고 묻던 사람이 대다수였는데 이제는 내 앞에서 컬링 작전에 대해 토론할 정도로 사람들이 컬링 규칙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컬링 1세대로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런 관심이 있기까지는 여자 대표팀의 선전도 한몫했다. 올림픽 첫 참가에서 우리나라 여자 대표팀이 일본·미국·러시아를 꺾고 3승을 올려 8위에 오른 것은 예상 밖의 선전이었다. 하지만 정영섭 컬링 여자 대표팀 감독은 “애초 목표로 했던 4강에 들지 못했다”며 선수들이 최근의 인기에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을 염려했다. 소치에 참가했던 국가대표팀인 경기도청팀은 3월16~24일 캐나다 세인트존에서 열리는 2014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11일 출국한다. 올림픽을 끝냈다지만 큰 대회를 다시 치러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정 감독은 선수들의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슬비·엄민지·신미성·김은지·김지선 ⓒ 시사저널 최준필
주니어 여자대표팀, 세계 대회에서 은메달

때문에 올림픽 이후 컬링협회 후원사인 신세계가 3월4일 마련한 공식 기자간담회가 유일한 언론 노출 자리였다. 여기서 여자 대표팀 선수들도 올림픽이 끝난 후 급작스레 높아진 컬링에 대한 관심에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전에는 ‘빗자루질’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스위핑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이제 사람들이 컬링에 관심을 갖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엄민지), “내 친구들도 규칙을 몰랐는데 이제는 컴어라운드가 뭔지도 알고…”(김지선). 

신미성 선수는 “국민이 응원해줘 첫 출전에서 3승이라는 성과를 올렸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많이 배워왔다. 멘탈이 무너지지 않도록 더 노력해서 평창에서 좋은 성적을 내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신 선수가 ‘멘탈’을 언급한 것은 컬링이 바둑이나 골프만큼이나 섬세한 경기이면서 소치에서 다 잡은 경기를 역전패당하는 등 아쉬운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영섭 감독은 “소치에서 아까웠던 게임이 많았다. 다 잡았다고 생각한 세계 최강 스웨덴·스위스와의 경기 때 마무리를 잘 못해서 역전을 당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러시아·미국을 이긴 것은 위안”이라고 정 감독은 덧붙였다. 김민지 선수도 “스위스전이 제일 아쉬웠다. 한 번도 못 이겨봐서 꼭 이기고 싶었다”고 했다.

최민석 코치도 스위스전을 꼽았다. 그는 “일본을 이기고 난 다음에 선수들에게 스위스만 이기면 우리가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다고 얘기했다. 스위스전 초반에는 우리가 앞서가다 후반에 샷미스로 게임을 놓친 것이 제일 아쉽다. 스위스를 꼭 잡고 싶었는데….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스위스를 꼭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캐나다·스위스는 인프라에서 우리를 크게 앞선다. 일본엔 컬링 전용구장이 50개 있고, 캐나다에는 무려 1500개나 있다. 우리는 의성컬링장과 태릉컬링장이 전부다. 우리나라 컬링 등록 선수는 남녀 통틀어 700여 명인데 일본은 등록 선수만 1만6000명이나 된다. 대표팀 선수가 뛰는 실업팀 환경도 열악하다. 여자는 경기도청·전북도청·경북체육회, 남자는 강원도청·전북도청·경북체육회 등 각각 3팀이 전부다. 우리나라 컬링 도입 역사가 20년 남짓인 데 비해 일본은 우리보다 10년을 앞선다. 그런 일본을 제치고 국내 컬링이 이번 소치올림픽에서 올린 성적은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컬링인들을 더욱 흥분시키는 것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소치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이번 대회에서 확인했다는 점이다.

정영섭 감독 “이제 시작, 들뜨지 말아야”

게다가 자라나고 있는 선수들이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컬링 세계 제패 가능성이 허황된 꿈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경북체육회와 의성여고 선수가 주축인 주니어 여자 대표팀이 3월5일 스위스에서 막을 내린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4강에 진출해 결승전에서 세계 최강 캐나다에 석패해 은메달을 땄다.

현재 대표팀 코칭스태프를 컬링 도입기 1세대라고 한다면 대표팀의 20대 선수들은 2세대, 주니어 선수들은 3세대라고 할 수 있다. 최민석 대표팀 코치는 “통상적으로 컬링 전성기는 남자는 40대, 여자는 30대 초·중반”이라고 말했다. 한국 컬링은 도입 20여 년 만에 좋은 선수들이 한꺼번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97학번으로 컬링 도입 초창기에 취미로 입문한 최민석 여자 대표팀 코치는 “컬링은 우리나라 선수가 잘할 수밖에 없는 종목”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섬세한 손기술이 필요한 양궁이나 사격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컬링은 구슬치기나 망까기 같은 전통 놀이와 맥이 닿아 있다. 당구의 각과 볼링의 스팟, 골프의 퍼팅감과 그린을 읽는 능력, 장기·바둑의 전략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스포츠다. 이번 올림픽에서 확인했듯 가능성이 큰 종목이다.”

4년 후 평창올림픽 때 강릉 컬링 전용경기장에서 열릴 경기에서 우리 선수는 강릉의 빙질에 누구보다 익숙할 것이고 지금보다 원숙한 경기 운영 능력을 보일 것이다. 쇼트트랙만큼이나 많은 관중 동원과 인기몰이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얼음 제대로 얼리는 사람 어디 없소?” 


일반인에게는 “그런 게 있었어?”라고 놀랄 정도로 생소하지만 컬링 경기에서는 얼음의 질이 무척 중요하다. 특히 스톤이 회전(curl)을 먹느냐 안 먹느냐가 관건이다. 컬링에서 회전이 잘 먹는 특별한 얼음을 제조하는 전문가를 아이스 메이커라고 부른다. 최민석 여자 대표팀 코치는 “국제 대회에 나가면 국내 대회보다 스톤이 회전을 많이 먹는다. 국제 대회를 앞두고 현지 전지훈련을 하다 보니 최근 성적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한 달간의 전지훈련에는 돈의 힘이 컸다. 신세계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10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소치의 빙질과 비슷한 경기장에서 좀 더 길게 연습했더라면 이번 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뒀을 것이란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빙질의 중요성을 감안해 지난해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아이스 메이커를 초청해 국제 수준의 빙질을 집중 경험했다고 한다. 빙질에선 아이스 메이커의 노하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의 입자나 경기장 온도, 습도, 얼음 깎기 정도에 따라 빙질이 천차만별이고 이를 좌우하는 것이 아이스 메이커의 능력이다.

컬링 전용경기장이 늘어나야 한다고 컬링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정영섭 여자 대표팀 감독은 “컬링에선 얼음의 컨디션이 중요하다. 이번에 우승한 캐나다 선수들은 질 좋은 아이스에서 4~5세부터 훈련했다. 우리도 권역별로 컬링 전용경기장에서 연습한다면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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