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안보 오른팔’이 깁스를 했다”
  • 서상현 매일신문 기자 ()
  • 승인 2014.03.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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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만 치는 국정원 보면 절로 한숨…여권에서도 책임론 거론

6·4 지방선거 정국의 한복판에서 국정원의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 후폭풍이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호재를 만난 야권은 신당 창당 수순을 밟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남재준 국정원장 퇴진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지금은 (야권이) 잽(jab)을 날리는 정도지만, 신당이 모습을 드러내면 이슈 몰이를 위해 훅과 어퍼컷을 날리기 시작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대표 트레이드마크인 ‘안보’ 상처 내기를 통해 이번 정부에 보내는 신뢰의 근간을 통째로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안이 크고 복잡하다.” 여권에서는 한결같이 이번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이 이런저런 문제들과 엮이는 난제라고 생각하는 모양새다.

먼저 여권 내부의 계파 간 갈등과 마찰이 더욱 극명하게 표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초노령연금 후퇴, 미적지근한 개헌 논의, 경제정책 부실, 정당 공천 폐지 철회 등 사안별로 맞서왔던 주류(친박)와 비주류(비박)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여권의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친박계 중진 의원실 관계자 얘기다. “박 대통령은 정쟁 성격의 현안에 대해서는 되도록 말을 삼갔다. 야권이 아무리 요구해도 침묵하며 사태를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특검 도입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검찰 조사를 통한 진상 규명은 강조했다. 이번 유감 표명은 적절했고, 새누리당에서도 산발적이었던 대응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입단속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박 대통령도 사안의 폭발성과 확장성을 알고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3월12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정몽준 의원(가운데)과 이재오 의원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조작’에 대한 반감 여론 쉬 안 꺼질 것

3월10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검찰은 이번 사건을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고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비주류의 한목소리만이 아니다. 주류도 비주류도 아닌, 다수의 중립 지대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의 부끄러운 국기문란 사건”이라는 말들이 들리고 있다. 공직자 출신의 한 국회의원은 기자에게 이런 말을 들려줬다.

“안보기관·치안기관 출신 의원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는 간첩을 못 잡는 것이냐, 간첩이 없는 것이냐’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돌아온 답은 ‘사냥개가 없어서 잡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번 사건을 보니 그때 그 말이 떠올랐다. 국정원 비호에만 나설 것이 아니라 이참에 국정원의 정상적 개혁에 대대적으로 나서야 할 것으로 본다. 이런 뜻을 비단 나만 가진 것은 아니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도 최근 “증거 조작 의혹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통해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정보기관에 의한 국기문란인데, (남 원장에 대해) 당내 분위기가 많이 안 좋다”고 했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남 원장 해임론에 힘을 실은 셈이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이런 당내 분위기를 두고 “주류 대 비주류 간 공방이 그간 눈에 띄지 않은 것은 비주류의 공격과 주류의 방어가 다소 공식화돼 있었기 때문이다. 비주류가 치고 나오면 ‘비주류니까 저렇다’는 인식이 강했던 것”이라며 “하지만 유 의원이나 다른 의원들의 분위기를 전해 들으면 이번 사건은 좀 다르다. ‘조작’에 대한 반감 여론이 쉬이 꺼질 것 같지 않다는 위기의식에 공감하는 의원들이 생겼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다음은 박 대통령의 안보 이미지에 상처가 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민주당 문재인 후보보다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은 항목은 외교·안보 분야였다. 하지만 국가 정보기관이 위조된 문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현 국정원의 수사 수준이 국민에게 까발려진 셈이다. 새누리당 한 초선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 확보 문서가 재판에 등장할 때까지 몇 번의 단계를 거쳤겠는가. 그런데 이런 게이트키핑(gatekeeping)이 단 한 곳에서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과거 10년(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뜻하는 것 같다) 동안 간첩 잡는 테크니션들이 사라졌다는 말을 한다. 국정원에는 스크린 기능이 없고, 테크니션은 부재하고, 권력에 독립적이지 못하다. 이 난국 속에서 ‘한건주의’가 팽배한 군 장성들이 대거 안보 분야를 장악하고 있으니 이런 웃지 못할 미스(mistake)가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박 대통령의 안보 오른팔이 깁스를 하게 된 것과 같다.”

그 다음은 사건의 확장성이다. 새누리당 지도부에서는 이번 사건의 성격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국정원의 수사에 ‘조작’ 이미지가 가미되면서 대북 안보의 칼이 무뎌지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시한다. 과연 이 정부의 안보기관을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돼 지방선거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간 수면 아래 있던 국정원 개혁 문제, 거의 2년간 정치권을 덮쳤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문제 등이 다시 부각될 가능성도 커졌다.

3월11일 열린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홍문종 사무총장(가운데)이 윤상현 수석부대표(오른쪽)와 함께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국정원이 당했다’는 변명은 오히려 역효과”

전략통으로 통하는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고정 지지율 때문에 현재 여권과 야권은 45% 대 45%의 든든한 아군을 보유 중이다. 문제는 그 중간에 있는 10%의 생각이 선거전 상황과 맞물려 어떻게 움직이느냐다”며 “남 원장이 사퇴할 땐 수도권 젊은 층의 저쪽(야권)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고, 그런 확장도 차단할 수 있다. 아직 (선거전까지) 석 달이나 남았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추가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여권에서는 남 원장 사퇴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박 대통령이 남 원장을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인적 쇄신’은 최후의 카드여서 사태의 추이를 보고 박 대통령이 꺼내들 수도 있다고 말한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대통령이 엄정 수사와 함께 그에 상응하는 사후 조치, 문책을 강조한 만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사전 문책론을 펴기보다는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린 후 그 책임 소재에 따라 엄격히 책임을 논하는 게 온당하다”고 밝혔다. 국정원 출신인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은 “국정원을 이렇게 흔들어대면 북한이 가장 좋아한다. 국정원이 간첩을 조작한 게 아니라 작은 서류 하나가 조작됐다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당했다’는 쪽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앞서의 여권 전략통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분리 대응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간첩 행위 부분은 엄중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서류 조작에 대해서는 단호한 엄단을 이야기해야 여당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정원이 당했다’느니, ‘역공작이다’느니 이런 식으로 변명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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