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굴에 무서운 ‘친노’는 없다
  • 이승욱·엄민우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3.2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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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의 수장, 문재인 의원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문 의원은 2012년 대선에서 친노 부활을 위한 전장의 최선봉에 섰다. 그러나 대선 패배의 상흔은 깊었다. ‘비노’에 의해 무장해제 당한 친노는 안철수에게 안방을 내주고 벼랑 끝에 몰리는 처지가 됐다. 화살은 문 의원을 향하고 있다. 친노 내부에서조차 “더 이상 문재인으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에게 반전의 기회는 없는 것일까.

 

“안철수 위원장이 갑작스럽게 민주당과 통합을 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 다들 의아한 반응을 보이더라. 하지만 안 위원장이 측근들의 반대에도 ‘호랑이 굴’로 걸어 들어간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치인 안철수’로서 승부를 봐야 할, 그가 가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 위원장은 2017년 대선에서 마지막 정치적 승부를 걸 것이다. 패하면 미련 없이 정치권을 떠날 것이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3년 남짓이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창당준비위원장과 오랫동안 교감해온 측근 인사는 최근 기자와 만나 통합 선언의 배경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안 위원장이 통합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바로 시간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역시 ‘대권’에 있으며, 그것도 오로지 바로 ‘다음’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지난 2012년 대선 때의 후보 중도 사퇴에 대한 충격이 컸고, 그만큼 차기 대권에 대한 의지가 강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치인 안철수’의 향후 행보가 정치권을 요동치게 할 것이란 전망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안, 2017년 대선에 마지막 정치적 승부 걸 것”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 선언이 있은 직후 ‘안철수 독자 신당론’을 강조해왔던 윤여준 당시 새정치연합 의장은 “호랑이 굴에 사슴이 들어갔다”는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민주당과의 통합으로 안철수 위원장이 민주당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윤 전 의장의 일침에 안 위원장은 “호랑이 굴에 들어갔더니 호랑이가 없더라”고 받아쳤다. 그는 “내가 호랑이띠(1962년생)다.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교수가 아니다”라며 강단을 보이기도 했다.

일단 안철수 위원장의 전략과 셈법은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신당 창당 선언이 있은 후 민주당은 이른바 ‘안철수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다. ‘비노(非노무현)’ 진영을 중심으로 안 위원장 쪽에 서서히 흡수되는 모양새다. 호랑이 굴로 걸어 들어간 안 위원장이 민주당 내 힘의 균형을 뒤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친노(親노무현)’ 등 당내 강경파와 486그룹의 견제를 받으며 위기에 몰렸던 김한길 대표 등 당권파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반면 친노는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안 위원장이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과정부터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하고 있고, 김 대표가 대체적으로 안 위원장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야권의 힘은 안 위원장 쪽으로 쏠리고 있다.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위원장이 2013년 5월20일 고 박영숙 전 안철수 재단 이사장 발인식에서 운구차량을 바라보고 있다. ⓒ 뉴시스
안철수 위원장의 정치 행보를 바라보는 주변 시선은 여전히 엇갈린다. 진보정당의 한 인사는 “안 위원장은 여전히 기업가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 같다”며 “독자 신당 창당을 포기하는 것 역시 막대한 정치자금이 들어가는 것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저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내야 한다는 식이다. 그의 선택은 마치 기업 CEO를 연상시킨다”고 비꼬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안 위원장 측근의 말처럼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절박감에 안 위원장이 쫓겼을 가능성도 커 보인다. 차기 대권 도전을 위해 안 위원장이 정치인으로서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시간은 3년 남짓이다. 안 위원장으로서는 다급할 수밖에 없는 시간표다. 민주당과의 통합 선언 막후 조언자로 알려진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의 말도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해준다. 권 고문은 지난 2월13일 저녁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안 위원장과 만나 “(안 위원장이) 독자 신당을 만들면 여당만 유리해진다. 안 위원장이 민주당에 들어와야 대권 기회가 있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 분열로 새누리당의 재집권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는 것은 안 위원장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안철수 위원장이 통합 선언 후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신당 장악력을 키워 단기간에 신당을 접수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는 민주당 내 비노 당권파 외에도 당내 지분을 공유하고 있는 중진 의원 등을 연이어 만나며 ‘식사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통합 선언의 조력자 역할을 한 권 고문 등 동교동계(김대중계)도 그의 지원군을 자청하고 나서며 교감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비노 측 인사는 통합 선언 직후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언제 친노와 생사를 나눈 적 있나”

“잘 지켜봐라. 이제 당은 서서히 ‘안철수’ 진영과 현 지도부인 김 대표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현직 의원 중 50여 명은 무리 없이 안철수 의원의 정체성을 받아들여 지도부와 함께 ‘친안(親안철수)’ 그룹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3월16일 새정치민주연합 창당발기인대회에서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선출된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위원장(오른쪽). ⓒ 시사저널 이종현
당내에서 중도적 성향을 갖던 의원들도 안 위원장과 ‘코드 맞추기’에 애를 쓰는 모습이 엿보인다. 한쪽에서 이를 씁쓸하게 지켜보는 인물이 바로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다. 제1야당의 대선 후보이자,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의 수장으로 호랑이 같던 기세가 꺾였다. 오히려 호랑이 굴로 들어온 ‘사슴’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이빨 빠진 호랑이 처지로 보인다. ‘노무현의 이름’으로 그를 호위하던 친노는 사실상 붕괴 상태에 이르렀고, 계파색이 옅은 ‘친노 비주류’(범친노)는 그와 거리를 두려고 애쓰고 있다. 그에게는 이른바 ‘친문(親문재인)’이라는 생채기 많은 이름표만 남았다.

그래도 당내 유력 대권 주자로 존재감을 갖고 있었으나, 안 위원장이 같은 지붕 아래 들어와 전면에 나서면서 그는 처지가 곤궁하게 됐다. 그는 지난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파문 이후 당내 주도권을 이미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다. 문 의원에 대한 회의적인 평가는 ‘원조 친노’ 진영 내부에서도 나온다. 노무현 정권 초기 청와대에서 근무한 친노 진영의 한 인사는 “아직 (문 의원이) 갈 길은 많이 남아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 동지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경험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이 친노라는 큰 울타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문 의원은 자신과 동조해서 정치적 의견을 나눌 정도의 친한 정치인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문 의원이 언제 친노와 생사를 같이한 적이 있었는가”라고 반문했다.

문 의원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통합 선언 직후 즉각적으로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당 일각에서는 그의 발 빠른 입장 표명이 “자칫 통합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를 취하다가 비노 쪽으로부터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후 반전 기회 올 것”

문재인 의원이 신당 창당 과정을 일정 기간 관망하겠지만, 어느 순간 재기를 위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강하다. 그 시기를 지방선거 이후로 보는 견해가 많다. 범친노 진영에서 그의 위상은 낮아졌지만, 친안 그룹까지 가세한 신당 내의 미묘한 계파 구도를 볼 때 문 의원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것이란 판단이다. 친노의 결속력과 구심력은 상당 부분 희석됐지만, 친노 주류와 친노 비주류 그리고 비노 진영으로 삼분된 당내 긴장 구도는 신당 창당 이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친노 비주류 진영의 한 민주당 관계자는 “지금은 문 의원이든 친노든 당내 비주류는 몸을 낮춰야 할 상황”이라며 “새롭게 만들어질 새정치민주연합의 정강·정책과 당헌·당규를 공부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공부를 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새 정치’를 모토로 내건 안 위원장과 비노 당권파가 만들어놓은 통합의 판을 깰 수는 없지만, 통합 과정에서 신당의 정체성이 의심스러워질 경우에는 언제든 반격의 날을 세울 것이라는 말이다. 실제 안 위원장은 이미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 삭제 논란으로 역사 인식의 문제점이 거론되는 등 곤욕을 치러야 했다.

안철수 위원장이 중심에 서서 치르게 될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선이 만약 야당의 완패로 귀결될 경우, 친노가 다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당내 노선 투쟁과 선거 책임론이라는 뇌관이 터지면, ‘문재인의 승부수’가 반드시 나올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만난다고 풀어질 앙금 아니다”  


지난 1월 초 당시 새정치추진위원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친노는 아무래도 우리와 함께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재인 의원과 2012년 대선 후보 단일화 당시 생긴 불신과 앙금이 너무 깊다. 그건 친노도 잘 알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향후 안철수 의원과 문재인 의원의 관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고개를 저으며 한 대답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두 달 후, 안철수 진영과 민주당 간 통합 선언이 발표됐다. 안철수 위원장과 문재인 의원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배에 탄 한 식구가 되었다. 한 명이 배에서 내리든, 아니면 힘을 합쳐 같이 가든 결정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통합 선언 후 안 위원장은 당내 주요 인사들과 잇따라 만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면서도 문 의원과는 별다른 접촉을 하지 않았다. 문 의원은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했지만, 안 위원장은 즉답을 피했다. 마치 안 위원장이 문 의원을 일부러 피하는 것처럼 언론에서 부각되자, 최근 두 사람이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고 회동 예고 소식도 나왔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의례적인 만남’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두 사람의 회동 소식에 찬물이라도 끼얹듯 민주당 대선평가위원장을 지냈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3월21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신당이) 친노 프레임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문 의원이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캠프의 국정자문역을 맡았던 한 교수는 안 위원장의 멘토로 알려져 있다.

안 위원장이 문 의원과 갈등의 골을 좁히기란 앞으로도 험난할 전망이다. 주변 인물과 민주당 지도부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화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두 사람 관계 못지않게, 김한길 대표 등 비노 당권파와 문 의원도 불편한 관계인 건 마찬가지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번 지도부의 통합 결정은 당내 친노 주류(친문) 세력을 이참에 완전히 배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친노 측은 이번 지방선거 이후 반격을 노렸을 것이다. 그런데 김한길 대표가 선수를 치는 바람에 상황이 급변해버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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