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남자에 대륙이 홀딱 빠졌다
  • 모종혁│중국통신원 ()
  • 승인 2014.04.0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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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그대> 주인공 김수현 최고 스타로…한국 드라마 인기 비해 수입은 적어

#1. 3월23일 저녁 중국 상하이 시 서남부에 위치한 다우타이(大舞臺) 공연장. 낮부터 수천 명의 팬이 한국에서 온 한 남자 연예인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4000여 명의 관객은 인터넷을 통해 예매한 표를 갖고 느긋이 검색대를 통과했지만, 표를 미처 구하지 못한 1000여 명은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이들을 노린 암표상들이 활개 쳐 800~1200위안(약 14만~21만원) 하는 표가 현장에서 1만~2만5000위안(175만~437만원)에 거래됐다. 상하이 최대 방송사인 둥팡(東方)TV는 저녁 종합뉴스를 내보내던 중 다우타이를 생중계로 연결했다. 관객들의 입장 소식과 전날 상하이를 찾은 이 연예인의 동향을 2분 동안 소개했다. 예정 시간을 조금 넘긴 7시10분,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내자 다우타이는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중국 전역에서 몰려온 팬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성 속에 등장한 인물은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의 ‘도민준(都敏俊) xi(씨)’ 김수현이었다.

#2. 3월25일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시 자저우(加州) 화원호텔 입구에는 300여 명의 팬이 ‘긴 다리 오빠(長腿歐巴)’를 보기 위해 서성댔다. 비행기로 2시간 반 거리의 상하이에서 온 20대 여성 팬은 참관인 입장권을 들고 호텔 안으로 들어가려다 경비원의 제지를 받았다. 암표상에게 3000위안(약 52만원)을 주고 산 표가 가짜였기 때문이다. 오후 4시부터 20분간 진행된 기자회견이 끝난 후 그들이 기다리던 ‘오빠’ 이민호는 뒷문을 통해 사라졌다. 적지 않은 여성 팬은 허탈감에 풀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 SBS 제공
<대장금> 이후 2세대들의 중국 한류 열풍

지난 한 주 중국 대륙은 한류(韓流) 쌍별로 들썩였다. 그 첫 시위를 당긴 이는 김수현이다. 아시아 6개국 9개 도시 순회 투어의 첫 방문지로 찾은 나라는 대만이었다. 3월21일 아침 일찍부터 타이베이(臺北) 타오위안(桃園) 공항은 1000명 넘는 팬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전 11시 김수현이 출국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공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다음 날 상하이 푸둥(浦東) 공항에도 엄청난 팬들이 몰려들었다. 오후 3시부터 도착한 팬들은 밤 8시가 되자 500여 명으로 불어나 입국장에 진을 쳤다. 비행기가 1시간여 연착됐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예정 시간을 넘긴 10시가 되어도 김수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팬들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삼삼오오 자리를 떴다. 푸둥 공항 측이 사고를 염려해 VIP 통로를 통해 김수현을 입국시켰던 것이다.

3월24일 저녁 필리핀에서 중국으로 온 이민호도 청두 공항을 시끌벅적한 시장통으로 바꿔놓았다. 이민호는 2박 3일 일정으로 청두에 머무르면서 중국 브랜드 ‘아이상(愛?) 감자’ 프로모션을 극비리에 진행했다. 하지만 이민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수백 명의 극성팬들 때문에 묵는 호텔과 기자회견장, CF 촬영장 등이 수시로 바뀌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 팔로어가 2000만명을 넘어섰고, 지금도 하루 20만~30만명씩 늘어나고 있다.

김수현과 이민호에 대한 엄청난 팬덤은 중국에서 부는 제2의 한류 열풍을 상징한다. 지난해 10월 <상속자들>로 시작해 <별그대>로 폭발한 한국 드라마에 대한 인기는 소수에 국한됐던 ‘한쥐미(韓劇迷·한국 드라마 마니아)’를 일반 대중에까지 확장시켰다. 이는 2005년 후난(湖南)TV를 통해 방영된 <대장금> 이후 9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3월13일 폐막한 중국의 최대 정치 행사 양회(兩會)는 이 같은 현실을 극명히 보여줬다. 3월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한 회의에서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위원회 서기는 <별그대>를 언급하며 “한국 드라마가 중국을 점령했다. 나도 가끔 한국 드라마를 본다”고 말했다. 왕 서기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최고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정치 지도자가 공개 석상에서 한국 드라마를 언급한 것은 2005년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 이래 처음이다. 후 전 주석은 2008년 한국 방문 당시 환영 연회에 이영애를 특별 초청해 눈길을 끌었다.

3월19일 조선일보에 실린 아시아 팬클럽의 전면광고(오른쪽). 왼쪽은 전면광고를 다룬 기사. ⓒ 조선일보 제공
김수현의 강의실, 요우커들로 북적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문화예술 분야 토론에서 <별그대>는 최대 화젯거리였다. 중국 인기 배우 장궈리(張國立)는 “우리는 <별그대>와 같은 드라마를 찍어낼 수 없다”며 중국 현실을 한탄했다. 중국 최고의 영화감독 펑샤오강(馮小剛)도 “영화의 경우 심의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까다롭다”고 중국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펑 감독은 ‘13억 중국인이 빠짐없이 본다’는 국영 CCTV의 <춘제롄환완후이(春節聯歡晩會)>의 총감독이기도 하다.

<별그대>는 중국인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주인공 전지현이 입고 나온 옷과 액세서리는 방송 다음 날 중국 최대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淘寶)에 선보여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극 중 전지현이 “눈 오는 날에는 치맥인데…”라는 대사를 하자, 치킨과 맥주가 날개 돋친 듯 판매됐다.

드라마에 등장한 책 <구운몽>과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은 대도시 서점에 등장해 순식간에 매진됐다. 남녀 주인공이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메신저 라인은 중국 내 가입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라인은 2월 초만 해도 애플 앱스토어 순위 100위권에도 들지 못했지만, 2월 하순부터 단숨에 10위권 안에 진입했다. 특히 메신저 다운로드 순위로는 2위를 기록해 중국 최대 메신저인 위챗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따로 PPL(간접광고)을 하지 않은 농심도 극 중 주인공들이 라면을 먹는 장면 덕에 뜻밖의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중국을 휩쓰는 <별그대> 열풍은 한국에도 불어닥치고 있다. <별그대>의 무대가 된 인천대 캠퍼스는 날마다 찾아오는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로 북적인다. 김수현이 수업한 계단식 강의실과 전지현의 손을 잡고 탈출한 주차장은 중국 팬들에게 성지나 다름없다. 김수현이 전지현에게 사랑 고백과 함께 키스를 한 테마파크 쁘띠프랑스는 요우커가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장소로 등극했다. 쁘띠프랑스 측은 “<별그대> 방영 후 평일 관람객은 300명에서 2000명, 주말 관람객은 1000명에서 5000명으로 늘어났는데 이 중 60%가 요우커”라고 밝혔다.

중국 팬들의 가공할 파워는 3월19일 조선일보를 통해 증명됐다. ‘<별그대> 아시아팬클럽’의 이름으로 강명구 서울대 교수에게 항의하는 전면광고가 실린 것. 이 광고에서 팬클럽은 지난해 여름 <방송문화연구>에 실린 강 교수의 논문이 중국의 한류 팬들을 ‘학력과 소득 수준이 낮고 논리성이 없으며 감정만 폭발하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비하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측이 공시한 전면광고 단가는 약 7200만원이다. 팬클럽은 자신들의 소득 수준을 신문 광고를 통해 과시한 것이다.

57조 시장에서 ‘한류’ 수익 1300억 불과

우리 드라마와 스타가 중국 대륙에서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과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고 있지만, 정작 중국에서 얻는 직접적인 성과는 미미하다. 한류 콘텐츠의 대(對)중화권 수출은 2009년 5810만 달러에서 2010년 7495만 달러, 2011년 1억1189만 달러, 2012년 1억2293만 달러 등 지난 4년 동안 연평균 28.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2년 TV·라디오 산업의 총매출액이 3268억 위안(약 57조1900억원)에 달하는 중국 시장에서 아주 조금씩 이익을 거둬가는 수준일 뿐이다.

<대장금> 인기 이후 중국 정부는 외국 드라마의 수입을 제한하고 황금시간대 방영을 금지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한국 드라마를 견제해왔다. 최근 히트를 한 <상속자들>과 <별그대>는 이런 당국의 규제를 피해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인 유쿠(優酷)와 아이치이(愛奇藝)에 판권이 팔려 방영됐다. 이런 우회 판매 전략은 성공을 거뒀지만 <별그대>는 회당 2470만원, 총 5억1800만원에 판매돼 큰 수익을 거두진 못했다. 이는 중국 드라마의 온라인 방영 판권 액수의 3분의 1~4분의 1 수준이다.

이에 반해 판권을 산 아이치이는 3월26일 현재 9억5440만 클릭 수를 기록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전무후무할 클릭 수로 동종 업계 6위에서 3위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또한 샤넬, 크리스찬디올, 에스티로더, 삼성, 완다(萬達)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광고도 유치했다. 129조원 규모로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로 올라선 중국 문화 콘텐츠 시장. 급성장하는 중국 시장에서 수익을 거두려면 저작권에 대한 낮은 인식, 불투명한 유통 시장 등과 더불어 중국 정부의 견제도 돌파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인간성 충만하고 따뜻한 감동 준다”  
중국 전문가들이 보는 한국 드라마 인기 비결

“한국 드라마의 핵심과 정신은 바로 전통문화의 승화다.”

전인대 회의석상에서 왕치산 중앙기율위 서기는 한국 드라마가 성공한 이유를 이같이 진단했다. 왕 서기의 ‘점잖은’ 평가와 달리 중국 팬들은 한국 드라마가 “재미있고 유쾌하며 희망 바이러스를 퍼뜨린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신데렐라 스토리, 상투적인 신파, 거친 막장 코드 등 천편일률적인 내용으로 때로는 중국 언론의 조소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일상 속의 다양한 소재를 탄탄한 구성과 편집,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내는 한국 드라마에 매료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 전문가들은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비결을 어떻게 해석할까. 산시(山西)TV가 매일 오후 6시부터 20여 분간 방송하는 ‘라오량(老梁) 이야기쇼’는 지난해 5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대장금>을 중심으로 한국 드라마가 세계 무대에서 성공한 이유를 분석했다. 저명한 언론인이자 MC인 량훙다(梁宏達)는 “한국 드라마는 역사·사회·가정에서 소재를 따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힘이 탁월하다”며 “연출자나 배우 못지않게 작가를 존중하고 창작자의 수입을 보장하는 풍토가 성공의 힘이다”고 진단했다.

실제 중국에선 해마다 수많은 드라마가 제작되지만, 대하 사극이나 공산당 혁명, 항일극에 집중 투자하고 과거의 인기극을 끊임없이 복제하고 있다. 한국처럼 스타 파워가 막강해 배우의 입김이 드라마 제작에 절대적이다. 연출자나 배우의 요구로 촬영 현장에서 대본이 고쳐지는 일이 다반사다. 광둥(廣東)성 미술작가협회 주석 쉬친쑹(許欽松)은 3월2일 ‘광저우(廣州)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드라마는 대본이 뛰어나다”며 “중국은 작가가 대접받지 못하고 존재감마저 잃고 있다”고 개탄했다.

매력적인 주인공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 가슴에 와 닿는 대사도 인기 요인으로 보고 있다. 량훙다는 “<대장금>에서 장금이는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원칙과 정도를 지켜 주변인들까지 감화시킨다”면서 “이에 반해 중국 드라마 주인공들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신하고 권모술수에 능해 현실 생활에 찌든 대중에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작가 류샤오런(劉效仁)도 3월3일 ‘장난(江南)시보’ 기고문에서 “한국 드라마는 어떤 주제든 인간성이 충만하고 세심하며 질서와 사랑이라는 유교적 정신을 잘 담아내 따뜻한 감동을 안겨준다”고 평가했다.

변화하는 사회상과 대중의 요구를 담아내는 능력도 관심 대상이다. 정협 위원이자 영화감독인 자오바오강(趙寶剛)은 “창작과정에서 관성을 탈피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며 “한국은 대본을 써가면서 촬영해 시청자의 반응을 반영하지만 중국은 드라마 전체를 제작한 뒤 방송사에 판매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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