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박·정’ 보고 투자했다간 쪽박 찬다
  • 조성훈│머니투데이 자본시장팀장 ()
  • 승인 2014.04.0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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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 테마주 15개 종목…신중하게 접근해야

6·4 지방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2012년 대선 당시 일었던 테마주 광풍이 재연되고 있다. 지방선거 테마주로 분류된 기업들은 실적과 관계없이 관련 후보의 지지율이나 특정 정치 행보에 좌우되며 하루에 10%가 넘는 급등락세를 보인다.

지방선거 관련주는 15개 종목 정도다. 2012년 대선을 뜨겁게 달궜던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테마주가 대표적이다. 대선 이후 한풀 꺾였던 안 의원의 행보에 다시 급등락을 반복하는 양상이다. 특히 3월2일 신당 창당 합의문을 발표하자 다음 날부터 주식시장에서 관련주들이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 대표적인 게 다믈멀티미디어와 써니전자인데 3월3일 가격제한폭까지 뛰었다. 같은 날 안랩이 8.77%, 링네트도 4.99% 상승했지만 이튿날 차익 실현 물량이 쏟아지며 큰 폭으로 떨어졌다.

왼쪽부터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정몽준 의원. ⓒ 시사저널 박은숙·최준필·이종현
안 공동대표가 처음으로 원내교섭단체 대표 자격으로 국회에서 연설한 4월2일에도 관련주가 일제히 상승했다. 써니전자는 6.47%로 큰 폭의 오름세를 보였고, 안랩·다믈멀티미디어· 링네트도 1%대 상승세를 기록했다.

서울시장 출마에 나선 정몽준 의원과 관련해서도 테마주가 형성되면서 주가가 요동치고 있다. 그가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이 회사가 2대 주주인 산업물 폐기업체 코엔텍, 현대건설 출신 이내흔씨가 대표인 현대통신 등이 정몽준 테마주로 꼽힌다.

선거철 ‘들썩’이는 정치 테마주

박원순 서울시장 관련주인 모헨즈는 대표가 아름다운재단 활동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손오공과 파라텍은 각 회사 대표가 과거 남경필 경기도지사 예비후보와 특정 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는 이유에서 테마주로 꼽힌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경우 박성수 이랜드 회장과 학연·지연이 겹치는 이월드가 관련주로 꼽힌다.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는 대한제강 창업주 고 오우영 회장의 넷째 아들이라는 점에서 대한제강도 테마주로 분류된다.

증시 전문가들은 정치 테마주로 분류된 종목들 상당수는 실제 연관관계가 모호하고 실적과 무관하게 투자가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거품이 꺼지면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손실만 안기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른바 이명박·박근혜·이회창·정동영 등 대선 후보들의 테마주들이나, 2012년 박근혜·안철수·문재인 테마주들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2012년 말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테마주’로 꼽혔던 우리들생명과학과 우리들제약은 각각 3640원과 3400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했지만 불과 1년 후인 지난해 12월20일 각각 388원, 407원으로 폭락했다. 하락률 89.3%, 88%로 최고가에 투자했다고 가정할 경우 대부분 투자 원금조차 찾지 못하고 쪽박을 찬 것이다.

테마주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재선 당시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 기업의 주가나 일부 건강보험, 녹색 에너지 등 정책 수혜주들이 상승세를 보였지만 열풍이라고 보긴 어려웠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 폐해가 심각하다. 막연한 기대감에다 한 방을 노린 ‘묻지마식’ 투자 관행, 이를 악용한 시세 조종 세력까지 가세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소식을 주고받고 거래까지 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IT·트레이딩 인프라도 이를 부추긴다.

테마주들은 대부분 연결 고리가 부실한 경우가 많다. 2007년 대선 당시에도 상장사 대표나 친인척이 대선 후보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면 무턱대고 주가가 오르는 과열 양상을 보였다. 가령 안철수 테마주로 분류된 써니전자는 송태종 전 대표가 안랩 출신이긴 하지만 그는 이미 지난해 초 제약업체 코미팜으로 이직했다. 송 전 대표가 “현재 안 의원과는 연락도 안 되는 사이”라고 당국에 밝혔을 정도다.

이뿐이 아니다. 정치 테마주에는 시세 조종 세력이 개입하는 사례가 많다. 2012년 1월 발족한 금융감독원 테마주 특별조사반이 조사한 결과 147개 대선 테마주 중 무려 49개(33.3%) 종목에서 불공정 거래 혐의가 적발됐다. 금융 당국이 테마주에 유의할 것을 주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테마주의 말로는 비참하다. 대부분 주가가 급등한 후 급락하면서 고점에서 뛰어든 개미 투자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금융감독원이 2012년 6월부터 지난해 12월20일까지 정치 테마주로 알려진 147개(유가증권 38개, 코스닥 109개) 종목의 수익률 흐름을 분석한 결과, 루머에 근거한 주가 상승은 결국 거품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문재인·안철수 등 유력 후보 경선과 출마 선언이 이어진 같은 해 9월께 최고 62.2%까지 상승했던 정치 테마주 수익률은 대선 전날 0.1%까지 폭락했다.

대선이 끝난 뒤인 지난해 3~5월에도 안철수 의원 등 특정 정치인의 정치활동과 연계된 루머가 나돌면서 주가가 요동쳤지만 소재가 사라진 지난해 하반기 이후에는 수익률이 4%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코스닥 지수의 상승률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테마주 판치는 것은 후진적”

“일부 투자자들이 한 방을 노리고 가격 변동성이 큰 소형 종목에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보곤 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의 말이다. 주식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단기 수익 추구 성향의 투자자들이 자연스레 주가 변동 폭이 큰 테마주의 유혹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실적 부진에 빠진 증권사나 일부 증권 커뮤니티에서도 테마주 열풍에 편승해 매매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한 증시 전문가는 “장기 투자보다는 폭탄 돌리기식 단기적 투기 거래에 매몰된 투자자들이나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돈놀이에만 열을 올리는 기업들, 투자자들에게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수수료 수익만 챙기려는 증권업계가 테마주 열풍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선거를 앞두고 테마주가 극성을 부리면서 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 등 금융 당국은 최근 정치 테마주와 관련한 시세 조종 세력의 준동에 대비한 모니터링에 나선 상태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테마주가 판치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후진적이고 경박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테마가 아니라 말 그대로 뜬소문·루머일 뿐이고, 설사 이익을 보더라도 잠시이며 궁극적으로는 쪽박을 차게 되는 만큼 개인투자자들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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