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치 마당에서 ‘경남고 리그전’ 펼쳐진다
  • 김현일│대기자 ()
  • 승인 2014.04.16 12: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철현(19회)-서병수(25회) 승자, 오거돈(21회)과 대결 예상

“피겨퀸 김연아가 시구를 하고, 추신수·이대호 등 스타플레이어가 대거 나와 팬 사인회를 갖는다.” 지난 2011년 가을 부산사직구장에서 열린 야구대회 장면이다. 한국시리즈를 방불케 하는 면면들로 보면 대단한 경기가 열린 듯싶지만 실은 ‘동네 야구’ 얘기다. 라이벌 부산고-경남고 동문 경기였다.

부산광역시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이 지역에서 양대 산맥을 이루는 부산고와 경남고다. 각 시·도마다 이른바 한 개씩 명문고가 있지만 인구 400만의 부산은 한국의 제2 도시답게 서울처럼 2개의 양대 명문이 버티고 있다. 고교 평준화 조치로 예전만은 못하다지만 인재 풀의 본산으로서, 쌍끌이 리더로서 명성과 저력은 여전하다. 부산 지역 19대 국회의원 면면도 한 예다. 부산고 출신으로 정의화·이재균·나성린·김정훈 의원 등 4명, 경남고 출신에는 서병수·조경태·문재인 의원 등 3명이 있다. 서병수 의원과 문재인 의원은 동기생이다. 유기준 의원은 경남고 ‘직계’인 경남중학교를 졸업했다.

ⓒ 연합뉴스·뉴시스
안철수 모교 부산고는 열중쉬어 할 판

그런 부산인데 이번 부산시장 선거는 ‘경남고 판’이 됐다. 새누리당 후보로 유력한 권철현 전 의원(19회)과 서병수 의원(25회)이 모두 경남고 출신이다. 새누리당 후보와 맞붙을 상대는 무소속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장관이 될 듯하다. 오거돈 후보는 경남고 21회다. 여당 후보로 박민식 의원도 출사표를 던졌고,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김영춘 전 의원과 참여정부 시절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이해성 전 조폐공사 사장 가운데 한 사람을 공천하기로 했지만, 현재 지역 판세는 권철현·서병수·오거돈 세 후보가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중앙선관위 선거 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에 등록된 기관들의 조사 결과들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YTN이 엠브레인에 의뢰한 조사(신뢰 수준 95%, 표본 오차 ±3.7%포인트)의 새누리당 후보 적합도는 권 후보 26.3%, 서 후보 22.9%, 박 후보 11.4%로 나타났다. 오 후보는 야권 후보 적합도에서 53.1%를 차지하며 김 후보(7.2%)와 이 후보(8.8%)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오 후보는 부산MBC 조사에서도 42.0%를 얻어 김 후보(14.0%)와 이 후보(8.6%)를 압도했다.

YTN 조사의 양자 대결은 ‘오거돈 44.3% 대 권철현 43.9%’ ‘오거돈 45.6% 대 서병수 40.7%’였다. 오차 범위 내에서 오 후보가 약간 앞서는 모양새다. 그러나 부산MBC 조사 결과는 다르다. ‘권철현 49.1% 대 오거돈 39.7%’ ‘서병수 47.7% 대 오거돈 37.9%’로 여당 후보 모두 오 후보를 누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경남고 3인방이 벌이게 될 예·본선 전부가 예측불허라는 뜻이다.

특히 새누리당의 두 경남고 예비후보 간의 다툼은 더욱 치열하다. 여론조사에서 근소하게나마 앞서는 권 후보가 서 후보를 따돌리고 공천을 획득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있었다. 무엇보다 북·강서구 출신 의원으로 10%대의 지지표를 확보하고 있는 박민식 후보가 권 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선거 기간 내내 서 후보와 감정적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박 후보는 “서 후보가 있지도 않은 ‘박심(朴心)’을 팔고 있다”며 날 선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서 후보가 올해 초 “대통령께 ‘부산시장직에 도전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부산은 중요한 곳이니 하셔야지요’라고 했다”고 공개한 것을 가리킨다.

선후배 안 가리고 안팎에서 벌어질 난타전

권 후보는 부산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도 “콘텐츠도 좋고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평을 들어온 터라 기대가 컸다. 그런데 ‘누가 나와도 새누리당 후보가 야권 후보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서면 여당의 공천 경쟁이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권 후보로서는 오 후보에 대한 상대적 우위를 무기로 ‘비박’(非박근혜)이라는 약점을 극복하려던 계획에 결정적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 반대로 친박계 핵심인 서 후보는 우세한 조직을 풀가동해 공천전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앞으로 있을 세 차례의 TV토론과 합동연설회가 동문 선후배를 안 가리는 난타전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예상도 그래서 나온다.

경남과 더불어 PK라는 이니셜로 불리는 부산의 정치 스펙트럼은 보수 성향이었다. 대구·경북(TK)과 함께 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의 주춧돌이다. 부산은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60%, 문재인 후보에게 40% 표를 몰아줬다. 문 후보는 자신의 고향인 부산에서 전국 평균 득표(48.02%)에 못 미치는 표를 얻은 셈이다. 이렇듯 부산에는 나름의 야당표가 있다지만 지금까지 분명한 한계를 보여왔다. 오거돈 후보가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의 러브콜을 극구 마다하면서 ‘죽어도 무소속’을 고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현역 정치인 기준 연고로만 따진다면 새정치연합에 부산은 본거지 수준이다. 유력 대권 주자들인 안철수 대표와 문재인 의원이 각각 부산고와 경남고 출신이니 더욱 그렇다. “지난 대선 때 만약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이 여권 인물이었다면 라이벌 두 고교 동문들이 총궐기했을 것”이라는 말은 부산 지역 정서를 함축적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인지 올 초까지만 해도 여야 후보를 통틀어 선두를 질주하던 오 후보의 행진이 다소 더뎌진 감이 느껴진다.

때맞춰 오 후보에 대한 새누리당 측 공세도 본격화됐다. 서 후보 측의 야전사령부인 ‘낙동강 캠프’는 4월7일 서 후보의 고교 4년 선배인 오 후보를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오 후보가 없는 말을 만들어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서 후보는 고교 6년 선배인 권 후보와는 경선 방식을 놓고 다투기는 했지만 직공은 피했다. 권 후보 역시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르다. 2차 합동연설회장 위치 선정을 놓고도 냉전이 빚어지는 중이다. 열전으로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권 후보와 서 후보의 전투가 끝나면 또 하나의 난전이 기다린다. 2차전이 권 후보 대 오 후보 대결이 될지, 서 후보 대 오 후보 대결이 될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부산시장 선거는 더 흥미롭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