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이에게 폭력의 주홍글씨 새기나
  • 황은숙 |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회장 ()
  • 승인 2014.04.1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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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잇따르는 아동학대 사건은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

최근 몇 건의 어린이 살해 사건이 발생하면서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동학대 사건 중 관심을 모은 사례는 지난해 경북 칠곡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다. 당시 가해자는 피해자의 12세 언니로 알려졌으나, 최근 피해자의 언니가 계모의 학대에 의해 거짓 자백을 했다고 밝혀지면서 공분이 일고 있다. 피해 아동이 계모와 함께 살면서 오랫동안 아동학대를 당해왔지만 그 어느 누구도 피해 아동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 어린아이가 가정에서 계모에 의해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여 있었을 때 가족도, 학교도, 지역사회도 피해 아동을 돕지 못해 안타깝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아동학대가 발생하면 무기징역에서 징역 5년 이상의 형을 받도록 형량을 늘리는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어린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어른들의 미안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아동학대 건수, 10년 전보다 3.7배 증가

사실 아동학대가 발생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에서 2001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을 내놓기 전부터 아동학대는 훈육이라는 명분하에 가정 내에서 무수히 자행되어왔다. 우리는 그 학대를 사랑의 매로 포장해왔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2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에 의하면, 아동학대 건수는 1만943건으로 2002년 2946건보다 3.7배나 증가했다. 아동학대는 가정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안타깝게도 한부모가정에서 많이 발생한다. 한부모가정 중에서는 부자(父子) 가정이 23.1%로 학대가 가장 많았고, 이어 모자(母子) 가정 14.6%, 미혼모·미혼부 가정 순이다. 한부모가정에서 전체 아동학대의 39.6%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엄마·아빠가 모두 있는 친부모 가정의 37.7%보다 높은 수치다.

아동학대가 문제가 되는 것은 학대로 아이들이 신체적인 손상을 입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큰 상처를 입어 건강한 성장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아동학대를 경험한 어린이들은 불안감, 우울감, 열등감, 분노감, 낮은 자존감 등의 상태를 보인다. 특히 학대 부모 밑에서 성장하는 어린이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부모로 인해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크다. 가정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성장하다 보니 학교생활에 부적응하게 되고, 학교폭력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어려서 학대를 경험한 어린이는 학대자에게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이후 성장하게 되면 역으로 부모에게 폐륜적인 행동을 보이며 반사회적인 성향의 성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상담 현장에는 부모로부터 언어적·신체적 폭력을 당해왔던 어린이들이 청소년이 된 이후에 역으로 부모에게 ‘나가서 죽어라’ ‘죽여버리겠다’는 말을 하며 부모를 폭행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폭력이 폭력을 낳아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가슴 아픈 일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아동학대 중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아동 성폭행이다. 친아빠의 성폭행 사건이 간혹 들리기는 하지만 가정 내 아동 성폭행의 주 가해자는 계부다. 이는 아동 폭행이 재혼가정에서도 자주 발생하며 그 심각성이 일반 가정보다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재혼가정에서 발생하는 아동 폭력은 전체 아동 폭력의 7.4%에 이른다. 재혼가정에서의 아동 폭력은 훈육의 이름을 벗어나 무자비한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피멍이 들고 화상을 입고, 성적 폭행을 당한다. 아이들은 부모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재혼가정의 계모·계부의 입장에서 보면 어린이는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대상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래서 화가 나고,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들은 배우자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을 때, 자신보다 자녀를 더 사랑한다고 느낄 때 피해의식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어린아이를 내 맘대로 윽박지르고, 욕하고, 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폭력이다.

아이들이 폭력 없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왜 그렇게 안전한 세상을 아이들에게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일까.

물론 제도적으로 아동 폭력에 대한 처벌과 낮은 형량이 학대를 방치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제라도 제도를 강화해 아동 폭력을 근절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아동 폭력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아동 폭력을 줄이려면 폭력의 근원을 뿌리째 뽑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아동 폭력이 발생할 환경을 변화시켜주지 않으면 폭력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4월11일 ‘칠곡 의붓딸 학대 치사 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숨진 어린이 관련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선고 형량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계모는 나쁜 사람이라는 왜곡된 인식 문제

그렇다면 우리는 아동 폭력을 야기하는 환경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바로 가족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한부모가정과 재혼가정에서 발생하는 폭력만 줄일 수 있어도 외롭고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가정은 편히 쉬고 싶은 안식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부모가정과 재혼가정에서의 폭력이 그들만의 잘못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도 이들 가정의 아동 폭력에 일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이 행복해지려면 먼저 가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사라져야 한다. 한부모가정에서의 아동학대는 한쪽 부모가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겠다는 피해의식에서부터 출발한다. ‘어미 없는 자식’ ‘아비 없는 자식’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부모가정의 부모는 아이들을 더욱 엄하게 다루고 꾸짖는다. 미혼모·미혼부 가정도 마찬가지다. 미혼모·미혼부에 대한 사회의 주홍글씨가 미혼모·미혼부로 하여금 자녀를 거부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 아이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내가 이런 불행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후회와 절망감이 아동학대로 이어진다.

재혼가정 역시 다르지 않다. 재혼가정의 계모·계부는 사회적으로 나쁜 부모로 인식되기 쉽다. 역경을 극복하기까지 한부모가정의 자녀에게 남은 것은 절망과 좌절뿐이다. <콩쥐팥쥐> <신데렐라>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 동화에서부터 계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처럼 왜곡된 인식이 아동학대의 저변에 깔려 있다. 재혼가정은 출발부터 나쁜 계모·계부라는 장애를 만나게 된다. 많은 계모·계부들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의심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 의구심이 부부관계를 악화시키고, 그 갈등은 고스란히 자녀에게로 전달돼 자녀는 화풀이 및 보복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잘못된 인식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한부모가정과 재혼가정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정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나와 다른 형태의 가정이라고 해서 뭔가 문제가 있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가족에 대한 사회의 왜곡된 인식이 피해 가정을 만들고, 그 피해 가정에서 피해 아동이 생겨난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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