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 왕회장 ‘또’ 빠져나갔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4.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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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김승유 전 회장 ‘경징계’…미래저축은행 부당 지원 혐의

“역시 ‘왕(王)회장’의 위력은 대단하다.” 하나금융지주 자회사인 하나캐피탈의 미래저축은행 부당 지원 혐의로 금융 당국에 의해 조사를 받았던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지난 2년 동안 조사한 이른바 ‘하나캐피탈 사건’의 핵심 관계자에 대한 제재 방침을 확정했다. 당초 김 전 회장을 타깃으로 조사가 시작됐으나 결국 김 전 회장만 빠져나간 모양새라 금융권 안팎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금융감독원은 4월17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김종준 하나은행장과 김승유 전 회장에 대한 제재 수위를 확정했다. 이날 김종준 행장은 하나캐피탈 사장 시절인 2011년 당시 퇴출을 앞둔 미래저축은행에 145억원을 투자해 60여 억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로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를 받았다. 반면 김 행장에게 미래저축은행에 대한 투자를 지시한 혐의를 받았던 김 전 회장에 대한 제재 수위는 경징계에 해당하는 ‘주의적 경고 상당’에 그쳤다. 김 전 회장이 직접 투자를 지시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가 불충분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하나캐피탈은 기관경고, 하나금융지주는 기관주의 조치를 받았고 임직원 5명은 감봉 징계를 받았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하나은행 본사 건물과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 시사저널 사진자료·연합뉴스
하나캐피탈 건은 지난해에도 금감원의 제재 심의 대상에 올랐다. 금감원은 지난해 9월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김 전 회장을 제외하고 김종준 행장만 징계 대상에 포함하는 제재 안건을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이례적으로 같은 사안에 대한 재검사에 착수했다. 당시 김종준 행장에 대한 징계 수위는 주의적 경고였다.

결국 2012년 11월 말부터 시작된 하나캐피탈에 대한 검사는 올해까지 2년에 걸친 장기 조사로 바뀌었다. 금융권에서 보기 드문 긴 검사인 데다 김 전 회장이 재직 당시 과도하게 미술품을 구매한 사실과 관련된 의혹과 퇴직 이후 고문료로 받은 금액(4억~5억원)의 적절성 여부 등이 추가 검사 대상에 오르면서 ‘김승유 전 회장에 대한 금감원의 제재 의지가 남다르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조치에서 지난해에 비해 징계 수위가 높아진 것은 분명하나 여전히 ‘변죽만 울린 꼴’”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몸통에겐 인상만 살짝 쓰고 깃털만 뽑았다는 것이다.

금감원의 제재안이 결정되기까지 하나금융지주 측은 김 전 회장을 철저히 비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나금융 측은 “미래저축은행 투자 건은 하나캐피탈의 독자적인 결정”이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하나캐피탈 측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종준 행장은 4월17일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제재심의위에 참석하는 자리에서도 기자들에게 ‘하나캐피탈의 미래저축은행 출자 결정에 대한 김승유 전 회장의 지시는 전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김 전 회장과 하나금융지주 사이에 ‘암묵적인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하나캐피탈 건에 대한 책임을 김 행장이 모두 짊어지는 대신 김 전 회장은 하나금융과 완벽하게 선을 긋기로 했다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2012년 초 회장직 사퇴 이후에도 그룹 내에서 ‘왕회장’으로 불릴 정도로 막후 실세였다. 김 전 회장의 ‘막후 경영’ 의혹은 그가 퇴임 후 고문직을 맡으며 경영자문 명목으로 하나금융 경영 현안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면서 불거졌다. 연간 4억원이 넘는 고액의 고문료가 의혹의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이 4월17일 금감원 제재심의위에 참석하러 가던 도중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뉴스1
“김 전 회장과 하나금융 암묵적 거래”

하지만 올해 들어 김 전 회장은 하나금융에 대해 손을 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거액 고문료 문제로 홍역을 치르면서 그는 지난해 말 스스로 고문직에서 물러났다. 외관상 하나금융과의 접점을 없앴을 뿐만 아니라 하나금융의 내부 체제도 새롭게 다듬었다. 하나금융지주는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 회장 임기를 ‘3+1 체제(3년 재직 후 연임 임기 1년)’에서 ‘3+3체제(3년 재직 후 연임 임기 3년)’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이 조치로 내년 5월로 임기가 끝나는 김정태 회장은 2018년까지 임기 연장이 가능하게 됐다. 그만큼 김정태 회장의 그룹 내 장악력이 커진 것이다. 그동안 김승유 전 회장이 그룹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회장 임기 변경에도 어느 정도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김 행장에 대한 금감원의 중징계 조치로 그의 거취를 놓고 다양한 관측이 나온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징계는 주의, 주의적 경고, 문책경고, 직무정지, 해임권고 등 5단계로 나뉜다.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은 은행 임원에 대해선 향후 3~5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제한된다. 김 행장의 임기는 내년 3월 말에 만료된다. 중징계를 받더라도 임기는 보장되지만 김 행장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날 가능성도 작지 않다.

김 행장에 대한 문책경고 조치는 사실상 ‘은행장직에서 물러나라’는 의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문책경고는 연임이 불가한 것이지만 사실상 ‘나가라’는 조치라고 보면 된다. 중징계라서 (김 행장이) 그만둘 가능성이 크다”며 “실제로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은 행장 재임 시절의 일로 중징계를 받고 나서 자진사퇴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2009년 9월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과거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공격적인 투자와 부실한 리스크 관리 등으로 1조원이 넘는 손실을 입힌 혐의로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김 행장의 사퇴설이 나돌면서 벌써부터 후임 행장 하마평이 무성하다. 하나은행 내에선 김병호 기업영업그룹 총괄부행장, 함영주 충청사업본부 총괄부행장 등과 함께 하나은행이 인수한 미국 브로드웨이내셔널뱅크(BNB) 이사회 의장인 이현주 부행장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특히 김병호 부행장은 김승유 전 회장과 같은 한국투자금융 출신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하나은행 측은 이 같은 관측을 전면으로 부인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4월18일 현재) 김 행장의 거취와 관련해 진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게다가 회장 연임 임기를 두고 거래가 오갔다는 말 또한 금시초문”이라며 “경영의 연속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체제가 바뀐 것이다. 게다가 KB나 신한 등 다른 금융사는 이미 ‘3+3체제’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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