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제국’ 바르사 왕조 몰락하나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4.2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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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르셀로나, 챔피언스리그·코파델레이에서 연속 패배

지난 4월9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비센테 칼데론에서 열린 2013~14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FC 바르셀로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고전 끝에 0-1로 졌다. 1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던 바르셀로나는 1무1패로 아틀레티코에 밀려 탈락하고 말았다. 1년 전 이맘때 4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패했던 그들은 이제 4강에도 오르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16일에는 코파델레이(국왕컵)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패배했다. 스페인 언론은 “메시는 걸어다녔고 바르셀로나는 약해졌다”고 평가했다.

과르디올라 감독 이적, 붕괴의 시작

지난 5년간 세계 축구계의 교본은 바르셀로나였다. 모든 감독과 선수는 입을 모아 바르셀로나의 축구를 지향한다고 했다.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를 치는 모습, 빠른 패스 움직임을 빗댄 것)로 묘사되는 바르셀로나의 패스 축구와 높은 기술 수준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지난 5년간 들어올린 공식 대회에서의 트로피만 15개였다.

4월16일 국왕컵 결승전에서 패한 바르사의 메시와 사비가 고개를 숙이고 걸어나오고 있다. ⓒ REUTERS
올 시즌엔 챔피언스리그와 코파델레이(국왕컵)는 이미 물 건너갔다. 남은 것은 지난 5년간 4번이나 우승한 프리메라리가지만 그마저도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 모든 것이 바르사 왕조의 몰락을 알리는 전조다.

바르셀로나 축구의 근간은 ‘크루이프즘(Cruyffsm)’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천재 플레이메이커이자 명감독인 요한 크루이프의 철학에 철저히 기반을 둔다. 크루이프는 네덜란드 대표팀 선수 시절 창시한 토털 사커를 기반으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며 공격과 기술의 가치를 앞세우는 ‘아름다운 축구’를 강조했다. 그는 “이기더라도 아름답지 않다면 그것은 축구가 아니다”고 말했다.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수비에 중점을 두는 축구를 ‘안티 풋볼’이라고 표현하며 멸시할 정도였다. 그런 크루이프의 정신을 이어받은 수제자가 펩 과르디올라였다. 지능적인 미드필더로 1990년대에 활약한 과르디올라는 크루이프 감독이 이끈 드림팀 멤버였다. 카탈루냐 출신으로 선수 생활 말년에 이탈리아와 멕시코에서 뛴 것을 제외하면 바르셀로나에서만 뛴 상징적인 인물이다.

과르디올라는 2008년 여름 만 37세에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부임했다. 부임한 첫 시즌에 프리메라리가·챔피언스리그·코파델레이를 차지하며 트레블(3관왕)을 달성했다. 리오넬 메시,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를 앞세워 스승 크루이프가 강조한 아름다운 축구를 구현했다. 2011·2012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나기 전까지 무려 14개의 트로피를 안겼다.

그런 그를 바르셀로나는 떠나보내야 했다. 수뇌부와의 정치적 갈등이 결정적이었다. 과르디올라를 감독으로 이끈 후견인 호안 라포르타 회장은 2010년 여름 실각했다. 그러자 과르디올라는 기존 계약을 마치고는 2012년 여름 미련 없이 팀을 떠났다.

바르셀로나는 과르디올라의 수석코치였던 티토 빌라노바를 감독으로 앉혀 연속성을 이어가려 했지만 빌라노바는 귀밑샘 종양으로 감독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2013년 여름 바르셀로나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헤라르도 마르티노 감독을 기용했다. 유럽에서 실적이 전무하던 마르티노 감독 선임에는 메시와 그의 아버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루머가 파다했다. 마르티노 감독은 선수단을 확실히 장악하지 못했다. 바르셀로나는 메시에게만 의존하는 원맨 팀이 됐고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경쟁자에게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반면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 부임한 과르디올라는 이미 분데스리가 우승을 확정짓고 챔피언스리그에서 4강에 오르며 바르셀로나에 이어 다시 한 번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FIFA, 선수 영입 1년 금지 징계

축구계에서 한 팀의 전성기는 보통 5년 정도라고 얘기한다. 지난여름 바르셀로나는 브라질 국가대표 에이스인 네이마르를 영입해 메시에 대한 집중 견제를 풀고자 했다. 한편으로는 수비의 주축인 카를레스 푸욜이 퇴단을 선언했다.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평가받아온 사비도 노쇠화가 두드러진다. 메시와 이니에스타는 건재하지만 그들과 함께할 새로운 스타가 필요한 시점이다. 바르셀로나 역시 세대교체가 필요한 때임을 인정하고 유럽과 남미의 유망한 선수를 주목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올여름 바르셀로나는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 최근 내려진 국제축구연맹(FIFA)의 징계 때문이다. FIFA는 4월2일 “바르셀로나가 18세 이하의 미성년자 선수 이적과 관련한 사항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45만 스위스프랑의 벌금과 선수 영입 1년 금지 제재를 내렸다. 당장 푸욜과 발데스의 공백을 메워야 하는 상황에서 바르셀로나는 새로운 선수를 단 한 명도 영입할 수 없게 됐다. 오직 선수 유출만이 있게 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추가로 팀을 떠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선수가 있어 전력 하락이 예고된 상황이다.

FIFA의 징계 이전에도 바르셀로나는 선수 영입 문제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지난여름 네이마르 이적과 관련해 비리 의혹이 터진 것이다. 당초 바르셀로나는 네이마르 영입 당시 이적료 5700만 유로를 지불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추가로 4000만 유로를 네이마르 측에 지급해 실제로는 2배 이상의 이적료를 지급한 것이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산드로 로셀 회장이 이적료를 횡령했다는 의혹이 나왔고 결국 로셀 회장은 자진 사임했다.

팀 내외부에서의 잇단 스캔들에 경기력 부진까지 겹치며 바르셀로나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프리메라리가에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에 밀려 3위를 기록 중이다. 최근 최약체 그라나다에도 패했다. 축구 역사상 최강의 팀이라던 바르셀로나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확인시켜주는 듯하다.


바르사로 간 이승우·장결희·백승호도 시련 


바르셀로나를 향한 FIFA의 징계는 한국 축구의 미래로 기대를 모으는 유망주에게도 타격이다. 라마시아(농장)로 불리는 세계 최고의 유스 시스템을 보유한 바르셀로나는 전 세계에 있는 유능한 어린 선수를 불러 모아 바르셀로나의 축구 방식과 철학을 가르친다.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메시다. 메시는 아르헨티나에서 어린 나이에 바르셀로나로 합류했고 바르셀로나는 성장호르몬 결핍 장애가 있던 메시의 치료를 책임지며 그를 키워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의 이승우·장결희·백승호도 바르셀로나 유스 시스템의 레이더망에 걸려 라마시아로 입성한 경우다. 이승우는 카탈루냐 지역 언론으로부터 차세대 메시로 불리며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FIFA의 징계는 바로 이런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 선수를 겨냥하고 있다. FIFA는 부모의 보호와 관리가 필요한 미성년자 선수의 경우 무분별한 이적을 막기 위해 다른 나라에 있는 클럽으로 이적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이미 FIFA는 바르셀로나가 보유한 외국인 유망주의 공식 대회 출전을 막은 상황이다. 이승우·장결희는 해외에서 열리는 비공식 대회만 소화하며 감각을 유지해왔다. 바르셀로나 측은 이들 선수와 부모에게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며 팀을 믿고 기다려줄 것을 당부한 상황이다. “라마시아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징계다. 바르셀로나의 시스템을 시기한 다른 클럽의 견제다”라며 항소의 뜻을 밝혔다.

바르셀로나는 이런 힘든 상황에도 최근 막을 내린 UEFA 유스 챔피언스리그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라마시아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한축구협회도 시련을 겪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한국인 유망주에 대한 관리에 돌입했다. 최근 프랑스에서 개막한 몽테규 U-16 챔피언십에 이승우와 장결희를 불러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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