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30분경 침몰 중” 세월호 참사 최초 신고 시간 미스터리
  • 진도=조해수·김지영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04.3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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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사고에서는 초동 대처가 가장 중요하다. 민첩한 초동 대처를 위해서는 사고 현장에 대한 정확한 상황 판단이 선행돼야만 한다. 그러나 정부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진 지 3주차에 접어든 지금도 세월호의 침몰 원인과 시각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사건 당일 정부 문서에는 최초 신고 시간보다 20여 분 빠른 8시30분께 침몰이 시작됐다는 내용이 버젓이 기재돼 있다. 일각에서는 8시30~40분에 침몰 신고를 했다는 생존자의 증언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시사저널은 8시30분부터 최초 신고가 이뤄진 8시50분까지의 세월호 침몰 시간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눈물도 말라버렸고 분노하기에도 지쳐버렸다. 온 나라를 충격과 비탄에 빠뜨린 4·16 세월호 침몰 참사는 희생자 가족은 물론, 온 국민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다. 사고 발생 직후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의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분노하던 목소리는 초기 대응 과정에서 무능의 극치를 보여준 정부를 향했고, 이제 세월호를 운영하는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오너 유병언씨 일가 및 측근 비리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박근혜 대통령은 4월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세월호 선장은 살인과도 같은 행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 뒤 “침몰 사고와 관련해 사고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과 침몰 과정에서 책임을 방기한 사람들에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발언의 역풍은 거세다. 그 책임에서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그리고 과연 사고의 진실이 모두 밝혀졌는지와 관련해서도 여전히 국민은 정부를 불신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이 동시다발적으로 소유주 유병언씨 일가 및 측근 비리를 파헤치고, 해운조합 등 이른바 ‘해운마피아’ 수사에 집중하고 있는 지금에도 사고의 정확한 원인과 그에 따른 해양경찰 등 정부의 초기 대응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 미스터리를 진도 앞바다에 수장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될 만한 추가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최초 침몰 인지 및 신고 시각을 둘러싼 의혹이 그것이다.

해양조사원 항행경보 “8시30분경 침몰 중”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해양조사원은 세월호 침몰 당일인 4월16일 오전 10시쯤 ‘항행경보 제14-155호’를 긴급 발령한다. ‘16일 오전 ‘8시30분경’ 전남 진도 부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 중이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며, 세월호에는 수학여행 학생 등 승객 476여 명이 탑승 중이니, 인근 해역을 항해 중인 선박과 어선은 조난 구조에 협조하여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8시30분경’이라는 시간이다. 정부는 세월호 침몰 신고가 접수된 가장 빠른 시간이 8시52분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사고 발생 9일째인 4월25일 현재까지도 8시52분의 신고가 최초 시간으로 공식화되고 있다. 그러나 해양조사원 항행경보에 따르면, 정부는 이보다 20여 분이나 빠른 8시30분쯤에 세월호 침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시사저널은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4월21일 해양조사원의 공식 입장을 요구했다. 당시는 사고 발생 6일째에 접어든 날로, 이때까지도 시사저널이 확인한 해양조사원의 항행경보에는 침몰 시간이 ‘8시30분경’으로 분명히 명기돼 있었다.

기자는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항행경보를 직접 내린 담당자 정 아무개씨와 접촉할 수 있었다. 정씨가 밝힌 당시 상황은 이랬다. “원래 사고가 나면 해경·해수부 등 관련 기관에서 사고가 났다고 (해양조사원에) 먼저 알려준다. 그런데 그날은 담당 기관이 정신이 없어서인지 언론 보도가 나간 후에도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9시40~50분쯤에 직접 해수부 상황실에 전화했다. 그때 그렇게 (8시30분경 침몰 중으로) 듣고 올렸다.”

즉 정씨는 해수부를 통해 세월호 침몰 시간을 ‘8시30분경’이라고 공식 확인했다는 것이다. 혹시 정씨의 착각은 아니었을까. 기자가 “이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혹시 (해수부의 전달 내용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니냐”고 재차 물었으나 “(8시30분경이라고) 들었다”고 재확인했다.

기자는 해수부 상황실에 이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해수부 측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이인수 상황실장은 “전화 기록은 이틀만 저장하게 돼 있어 지금 정확한 전화 기록은 없지만, 우리가 8시30분경이라고 말할 리가 1%도 없다”고 밝혔다. “시사저널이 해양조사원 측에서 분명히 확인했다”고 하자 그는 “내가 해양조사원에 전화해볼 테니 (나중에) 다시 한 번 해양조사원에 확인해봐라”고 말했다.

해수부에서 해양조사원으로 전화가 가고 난 뒤 정씨의 입장은 180도 바뀌었다. 당초 실수로 침몰 시간을 잘못 올릴 리는 결코 없다고 말했던 정씨는 돌연 “세월호 침몰 사고를 뉴스를 통해 맨 처음 알게 됐고, 우리(해양조사원)가 자체적으로 사고 발생 시간을 예상했다. 사고 발생 시간보다는 사고 발생 지점이 더 중요하고, 빨리 사고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항행경보를) 조급하게 올렸다”고 말을 바꿨다.

시사저널 취재 이후 ‘8시55분’으로 바뀌어

이 같은 정씨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경에는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대목이 많다. 정씨의 말대로 당시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빚어진 착오라면, 그 이후에라도 항행경보를 정정했어야 옳다. 사고 이후 세월호 침몰 최초 신고 시간이 8시50분대라는 뉴스는 귀가 따갑도록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호가 침몰한 지 엿새가 지나도록 해양조사원의 항행경보는 계속 ‘8시30분경’으로 명기돼 있었다.

진도 여객선 침몰 사흘째인 4월18일 오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해군 수색대원들이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더욱 의심이 드는 대목은 해양조사원 측이 시사저널의 취재가 진행된 직후인 4월21일 오후에야 비로소 항행경보 내 침몰 시각을 ‘8시30분경’에서 ‘8시55분’으로 정정했다는 점이다. 설령 이것이 행정상의 실수가 맞다고 하더라도 엿새 동안이나 잘못된 정보를 방치한 국가 행정기관의 ‘업무 태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세월호 침몰 사고 최초 인지 시각에 대한 의혹은 또 다른 정부 문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진도군청 상황실이 작성해 전라남도 상황실에 보낸 ‘세월호 여객선 침몰 상황보고서’에는 사건 발생 일시가 16일 오전 8시25분이라고 기록돼 있다. 진도군청이 파악한 사건 발생 시간은 해양조사원의 그것과 5분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반면 정부가 밝힌 최초 신고 접수 시간과는 무려 30분 가까이나 차이가 난다. 더구나 진도군청과 해양조사원은 서로 연관이 없는 기관으로, 세월호 사고 당시 어떤 접촉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두 기관은 정부 공식 발표 시간보다 20~30여 분이나 차이 나는 시간대를 세월호 침몰 시각으로 똑같이 보고했다.

진도군청 보고서엔 사고 시각 ‘8시25분’

이와 관련해 진도군청은 “문서 작성 과정에서 직원의 실수가 있었다”고 밝혔다. 해양조사원과 마찬가지로 ‘착오’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안전행정부를 거쳐 중앙재난대책본부까지 보고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구나 사고 발생 시각은 보고서 내용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부분을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보고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만약 해양조사원과 진도군청이 밝힌 침몰 또는 신고 최초 인지 시각이 8시30분경이라고 하면 해경은 늑장 대응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뿐만 아니라 신고나 사고를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놓쳐버렸거나 이후 이를 은폐했다는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다. 실제 사고 당시 해경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9시30분쯤이다. 배가 기울어지고 있을 무렵 선장과 선원이 탈출했다고 하더라도 해경이 좀 더 일찍 현장에 도착했더라면 희생자를 조금이라도 더 줄였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날 8시30분쯤부터 8시50분쯤까지 약 20분간 세월호 선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세월호가 맹골수도에 들어온 시간은 8시30분쯤이었다. 그때 세월호는 제주 도착 시간이 예정 시간보다 1시간 30분 지연된 낮 12시쯤이 될 것이라는 안내방송을 한다. 인천~제주 운항 소요 시간이 13시간 30분인 것을 감안할 때, 4월15일 오후 9시쯤 출발한 세월호는 16일 오전 10시30분에 제주도에 도착해야 한다. 세월호 선박자동식별장치(AIS)에 따르면, 세월호는 16일 오전 7시28분부터 8시까지 최고 속도인 시속 39㎞로 운항 중이었다. 사고 지역 인근 섬 어민들에 따르면 사고 당일은 날씨도 쾌청했다. 따라서 선원들이 8시30분 전에 배의 이상을 감지하고 연착 방송을 한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 당시 선원들의 위치를 살펴보면 이러한 의혹은 더욱 짙어진다. 세월호 승선원 24명 가운데 무전기를 보유하고 있던 ‘선박직’ 15명은 모두 구조됐다. 심지어 배 가장 아래에 있던 기관실 직원까지 모두 구조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9시17분쯤 세월호와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 간에 이뤄진 교신 내용을 보면, “현재 침수 상태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에 세월호는 “지금 50도 이상 좌현으로 기울어져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며…선원도 라이프자켓(구명동의) 입고 대기하라 그랬는데 확인이 안 된다. 선원들도 브리지(조타실)에 모여서 거동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고 답신했다. 선원들은 사고 발생 직후 이미 근무지를 떠나 조타실에 모두 모여 있었던 것이다. 한 승무원은 사고 이후 합동수사본부 조사에서 8시30분쯤 배에서 이상 징후가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당시 세월호 탑승객 중 구조된 생존자의 증언에서도 뒷받침된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8시40분쯤에 배가 급속하게 기울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물차 운전기사인 생존자 허 아무개씨는 “8시30분 전후였던 것으로 분명히 기억한다. 늦어도 8시40분쯤이었을 것이다. 이때 배가 순식간에 45도 각도로 기울었다. 채 5분도 안 될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객실에 있다가 너무 깜짝 놀라 팬티 바람에 갑판으로 뛰어나갔다. 아무도 없기에 구명조끼를 찾으러 다시 (객실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때 휴대전화에 찍힌 시간이 8시52분이었다. (나갔다가 돌아온 시간 등 여러 가지를 감안해볼 때) 배가 기운 것은 8시40분 전이라고 봐야 한다”고 증언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과 교사의 임시 합동분향소가 4월23일 안산 단원구 고잔동 올림픽기념체육관에 마련됐다. ⓒ 시사저널 구윤성
당시 상황을 정리해보면 선원들은 8시30분쯤 배의 이상 징후를 감지했을 가능성이 있고, 8시40분에는 이미 배가 상당한 각도로 기운 상태였다. 그러나 세월호가 구조 요청을 보낸 시각은 8시55분(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과 8시58분(목포 해경)이다. 왜 이렇게 구조 요청이 늦었던 것일까. 심지어 8시52분 전남소방본부에 최초 신고를 한 사람은 승무원이 아닌 안산 단원고 학생이었다. 이와 관련해 허씨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새로운 증언을 했다.

“배가 갑자기 기울면서, 아무튼 그때 8시30~40분쯤인가 해서 112에 구조 요청을 했다. 정신이 없어서 (119가 아닌) 112에 했던 것 같다. 배가 기운 시간이 8시40분쯤이라고 봤을 때, 같이 온 일행들도 동시다발적으로 신고를 했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다. 그 상황에서 누군들 신고를 하지 않겠는가.” 현재 허씨는 사고 여파로 제주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다.

이에 대해 세월호 침몰 사고 범정부사고대책본부 고명석 대변인은 “(8시30~40분경에 신고가 들어갔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얘기다. 대책본부에서 확인해줄 수 있는 길이 없다. (이와 같은 의혹은) 검·경 수사 과정을 거쳐야만 밝혀지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했다. 

8시48분 전 이미 침몰 가능성 제기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면서 침몰을 시작한 시점이 8시40분쯤이라면 세월호 침몰 원인 역시 처음부터 다시 따져봐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정부는 당초 암초에 의한 침몰 가능성을 염두에 두다가, 세월호 AIS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오전 8시48분 ‘급선회’에 의한 외방 경사로 선체가 균형을 잃고 침몰했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정전으로 끊겼던 AIS 부분을 복원한 결과 세월호는 당초 발표했던 115도 급선회가 아닌, 45도로 완만하게 선회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급선회가 침몰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45도 선회는 침몰이 진행되면서 비틀거리는 선체의 중심을 잡기 위해 조타기를 돌린 것이라는 전문가의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즉, 세월호는 선회를 한 8시48분 전에 이미 침몰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8시30분쯤 세월호는 연착 방송을 했고, 해양조사원과 진도군청은 사고 시간을 거의 같은 시간대로 기재했다. 이때쯤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생존자의 증언과 함께 112에 신고했다는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아직 바닷속에 있다. 이번 참사의 배경에 정부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를 좀 더 정확히 밝혀내는 것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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