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은 최후까지 배에서 나오면 안 돼”
  • 우루과이=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4.3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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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남해 ‘엔젤호 충돌’ 사고 때 승객 123명 모두 탈출시킨 고상권 전 선장

지금부터 33년 전인 1981년 6월16일 오후 5시16분. 남해 가덕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엔젤 5호와 엔젤 6호가 충돌했다. 사고는 오후 4시30분 충무(지금의 통영)를 출발한 엔젤 5호가 같은 날 오후 4시32분 부산을 출발한 엔젤 6호의 선수 왼쪽 부분을 들이받아 일어났다. 두 배에는 승무원 21명, 승객 123명이 타고 있었다. 두 여객선은 크게 파손됐다.

해상에서 충돌해 두 배가 완전히 물속으로 가라앉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8분. 하지만 배에 타고 있던 144명 중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충돌 여파로 승객 37명이 중경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엔젤 6호 고상권 선장은 승객을 모두 대피시킨 것을 확인한 후에야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1993년 발생한 서해훼리호 침몰과 비교하는 보도가 많지만, 그보다 더욱 극명하게 대비되는 엔젤호의 모습을 우리는 33년 전 남해안에서 볼 수 있다.

우루과이 현지에서 시사저널 인터뷰에 응한 전 엔젤호 선장 고상권씨(왼쪽). 1981년 6월17일 엔젤호 충돌 사고 중경상자 임시 응급진료소에 달려온 환자 가족들이 삽시간에 거리를 메웠다. ⓒ 시사저널 김회권·연합뉴스
시사저널이 당시 최후까지 엔젤호를 지켰던 선장 고상권씨를 만난 곳은 지구 반대편인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다. 사고 당시 그는 30대의 젊은 나이였으나 어느덧 환갑이 넘어 있었다. 교민이 150명에 불과한 이곳 한인식당 사장이 바로 고씨의 현재 모습이다. 세월호 사건에 관한 그의 말에는 슬픔과 분노, 뱃사람으로서의 부끄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1981년 당시엔 엔젤호가 유명한 여객선이었다고 들었다.

당시 ‘한려개발’이란 회사에서 홍콩과 마카오를 오가던 10년 정도 된 중고 선박을 사와 부산과 여수 사이 한려수도 해상공원을 오가는 노선을 운항했다. 엔젤 5호와 엔젤 6호 두 대였는데 그때 여객선으로는 가장 화려한 배였다. 내가 엔젤 6호 선장이 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엔젤호 충돌은 어떻게 발생했나.

여름철에 접어들면 남해에는 부분적으로 농무라고 부르는 짙은 안개가 낀다. 당시 남해안 항해는 섬을 보고 주로 움직였다. 레이더를 볼 여유가 없었다. 농무가 낄 때는 주변 선박과 섬을 일일이 확인하며 다녀야 했다. 두 명의 선장이 격일제로 근무했다. 내 일정이 끝나고 나보다 선임인 선장과 교대를 해야 했는데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다음 날 일을 대신 해달라고 부탁하더라. 충무에 정박한 엔젤호의 출항지는 부산이었다. 부산에서 충무를 거쳐 삼천포와 여수를 들러 다시 충무에 가서 정박하면 끝이었다. 부산에서 출항할 때는 안개가 없었는데 가덕도를 지나니 안개가 자욱하게 꼈다. 10년 이상 된 중고선이라 항해 장비가 낙후돼 있었다. 그런 상황이면 실제로는 배를 출항시키면 안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선장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안개가 있든 없든 무조건 제 시간에 가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었는데 엔젤 5호가 우리를 확인하지 못하고 배 옆구리를 받았다.

당시 충돌한 양쪽 배에 120명 정도가 탔는데 사망자는 없었다. 이번 세월호 사건과 너무 비교된다.

사고가 나는 순간에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가 침수되더라. 내가 방송으로 말했다. “여러분들 생명은 내가 무조건 구하겠다. 선장 말을 잘 들어달라.” 그리고 모든 승객에게 일단 배 위로 다 올라오라고 했다. 그렇게 승객들을 다 올려보낸 뒤, 노인·여성·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남자들은 맨 마지막에 구명정으로 옮겼다. 다 탈출시키고 배가 거의 잠겨갈 때까지 나만 배에 남았다.

혼자 남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승객들을 대피시킨 후에는 너무 큰 사고를 냈다는 자책 때문에 ‘내가 살면 뭐 하겠나. 그냥 여기서 생을 마감하자’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탈출한 사람 수를 확인해보니 다행히 아무도 안 죽었더라. 그래서 ‘사망자가 없으니 한번 해보자’고 생각하고 구명조끼도 없이 무작정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쳐 나왔다.

당시 처벌이 사고 규모에 비해 경미했다고 들었다.

충돌 사고는 바로 다음 날 진해경찰서로 이첩됐다. 그때부터 신문기자들이 몰려오고 난리가 났다. 당시 내 죄명이 선박 매몰 및 과실치상, 두 가지였다. 그런데 병원에 누워 있는 환자들이 “선장은 최선을 다했다”고 탄원서를 냈다. 그래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징역은 피했지만 다른 처벌을 받아야 했다. 일단 우리는 법원의 판결과는 별도로 해난심판을 또 받는다. 해난심판에서 해기사 자격정지 30개월을 먹었다. 게다가 그 사고 때문에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거기서 죄수복을 입고 기어가기를 반복했더니 몸 앞뒤로 껍질이 두 번 벗겨지더라. 그 아픈 상처는 지금도 남아 있다.

세월호 사고가 가슴 아팠을 것 같다. 왜 저렇게 됐다고 보나.

선박의 언밸런스가 사고 원인이었을 것으로 본다. 오뚝이는 밑이 무겁기 때문에 넘어져도 다시 선다. 반대로 중심이 위에 있으면 넘어진다. 오뚝이처럼 되면 복원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복원력을 갖추기 위해 모든 선박은 밸런스탱크에 물을 넣는다. 그런데 내 생각에 세월호는 밸런스탱크를 채우는 작업을 항상 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중심이 하부보다 위에 있게 된다. 배가 변침을 조금만 해도 중심이 휙 도는 상태였을 것이다.

왜 중심 잡는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선장이 안일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세월호는 연안 항해를 한다. 연안은 깊어봐야 수심이 40~50m 정도에 불과하다. 보통 선박들은 대륙붕 항해를 걱정하지 않는다. 파도가 세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박의 중심은 전체 화물이나 배 톤수 등을 고려해 계산하면 다 나오는데 신경을 안 쓴 거다. 선장이 제일 신경 쓰는 게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는 트림이다. 이걸 못 잡으면 배가 균형을 유지할 수 없다.

세월호 항해사가 급하게 변침을 한 이유를 두고 많은 말이 나온다.

변침을 급격하게 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항해사는 앞으로 30분 후에 어디서 변침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앞으로 얼마 후에 바꾸면 되겠다는 게 다 나오는데 그걸 제대로 이행 못한 것이다.

이번 사고 선박의 선장은 대체된 선장이었다고 한다. 그게 문제였을까.

대체 선장도 선장은 선장이다. 앞 선장에게 선박의 컨디션을 다 인수받아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안 한 것 같다. 항상 가는 코스니까. 변침할 때도 항해사는 선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5마일 앞에서 배를 변침한다”는 보고를 하고 선장이 지시를 해야 한다. 출항한 뒤 어디서 몇 도로 변침하는지, 혹시나 바람이 불어 파도가 높다 싶으면 거기에 가감해서 변침을 정해야 한다. 항해사가 하게 돼 있고 어렵지 않다. 요즘은 위성에서 찍어주는 게 아주 정확하다. 옛날과 다르다. 몇 초마다 배의 위치가 나온다. 실수할 수가 없다. 이런 환경에서 저런 사고를 냈다는 건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다.

과거에 비슷한 일을 직접 겪어봤기에 고국에서 들려온 이번 사고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질 것 같다.

여객선 선장은 귀중한 인명과 재산을 출항지부터 목적지까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그걸 못했다는 건 선장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무를 제대로 안 지켰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다. 불안정한 지역에 가면 선장이 선교에 있어야 한다. 모든 상황이 끝날 때까지 선장은 선교를 지켜야 한다.

선장과 선원이 미리 빠져나가면서 피해가 더 커진 것 같다.

세월호의 선장이 어떻게 일을 처리한 건지 여기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90분의 시간이 있었는데 승객을 수장시킨 건 정말 잘못한 것이다. 우선은 선실에 가서 무조건 승객들을 갑판 위로 다 올려보내야 했다. 선실에서 학생들이 올라가는 것은 2~3분이면 된다. 설령 물에 빠져 죽는다고 해도 일단은 그래야 된다. 선장이 배를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 아닌가. 구명조끼를 지급하고, 급하면 그냥 물에 뛰어내리게 해야 했다. 그러면 목숨은 건질 수 있는데 선장이 미리 내려버리니까 그 단순한 걸 못한 것이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선장은 마지막까지 (배에서) 나오면 안 된다. 차라리 거기서 죽어야 된다.  승무원들 불러서 너희는 지금 못 나간다 말하고, 승객들을 갑판 위로 다 올리라고 고함질러야 했다. 승객이 아닌 승무원이 희생되는 게 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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